ADVERTISEMENT
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가덕도 신공항과 정의(正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임장혁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임장혁 정치부 차장·변호사

임장혁 정치부 차장·변호사

표에 눈먼 거대 여·야가 합의한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 졸속 처리는 의외의 산통을 겪었다. 지난 19일 밤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자 터진 심상정 정의당 의원의 사자후(獅子吼) 때문이다. “가덕도 알박기 법”이라며 촌철살인한 심 의원은 “모든 절차를 생략하고 신공항 입지를 법으로 정한 전례가 있느냐”고 따졌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례적이긴 하다”며 얼어붙었다.

“가덕도는 이미 사전타당성 조사에서 가장 부적합한 입지로 평가받았는데 예비타당성 조사와 환경영향평가를 없애고 각종 특혜를 법으로 정하는 게 가능하냐. 절차적으로 옳으냐.”

가덕도 신공항 합의는 전대미문의 선거용 도박이다. 1989년 3월 노태우 정부가 교통부 산하에 ‘신공항 건설 추진위원회’를 설치해 영종도를 최종 후보지로 결정하는 데 1년 3개월 이상(1990년 6월14일)이 걸렸다. 건설 촉진 특별법은 1991년 9월에야 제정됐다.

노트북을 열며 2/24

노트북을 열며 2/24

가덕도 신공항은 건설에 비용과 기간이 얼마나 들지, 코로나19로 증발한 항공 수요는 언제 얼마나 회복될지 등에 대한 아무 설명 없이 법에 새겨졌다. 환경영향평가는 한다지만 경제성과 관련한 문제는 눈에 띄지 않도록 ‘사전 타당성 조사 간소화,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라는 보완 장치까지 뒀다. 말꼬투리 하나로 며칠도 싸우는 양 당은 대충 10조원 넘는 혈세를 판돈으로 거는 데 죽이 맞았다.

입법 과정에서 절차의 설계가 국회의 본업임을 알린 사람은 심 의원 하나다. 사자후의 전율이 걷힐 무렵 2019년 8월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둘러싼 싸움을 등진 채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목매고 있을 때다.

국회 본청 로텐더 홀 농성장을 찾아 조 후보자의 사퇴 전망을 묻자 그는 “어떻게든 버텨보려 하겠지만 버틸 수 있겠어요?”라고 반문했다. 이 말을 담은 기사가 나간 뒤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보좌진의 전화에 반나절을 시달렸다. 선거법만 개정된다면 장관 자녀의 입학비리 정도는 눈 감으려던 작심 뒤의 본심이 드러나서일까.

‘데스노트’를 접으며 낀 먹구름은 걷히지 않고 있다. 21대 국회 들어 정체성 정치에 매몰되면서 정의당의 내분은 격화됐다. 김종철 전 대표의 성추행은 추락 저지용 브레이크마저 부쉈다. 6석 정의당의 존재감이 ‘0’에 이른 국회에선 더불어민주당의 폭주와 국민의힘의 무기력이 일상이 됐다.

역설적으로 회생의 실마리를 보여준 건 몰락의 발판을 깐 심 의원이었다. 당파성과 정체성의 과잉을 걷어내고 다시 합리성의 칼을 드는 길이다. 그 칼로 기민하게 양당의 폐부를 찔러야 한다. 일거에 수권 정당으로 거듭나자는 몽상을 거둬야 그 길이 보인다.

임장혁 정치부 차장·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