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병상의 코멘터리

레임덕 재촉하는 노브레이크 강경파

중앙일보

입력 2021.02.23 20:24

업데이트 2021.02.23 23:12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황운하·김남국·김용민 등 민주당 의원들과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이 주축인 ‘행동하는 의원 모임 처럼회’(처럼회)는 지난 17일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중대범죄수사청 설치법)을 발의했다. 이날 귀속말을 나누는 황운하 최강욱 의원.뉴시스

황운하·김남국·김용민 등 민주당 의원들과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이 주축인 ‘행동하는 의원 모임 처럼회’(처럼회)는 지난 17일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중대범죄수사청 설치법)을 발의했다. 이날 귀속말을 나누는 황운하 최강욱 의원.뉴시스

문재인 대통령 '검찰개혁 시즌2' 신중하라 지시..박범계 장관 22일 공표
23일 민주당 강경파들 '검찰개혁 시즌2에 대한 저항 돌파하자' 공개반발

1.

‘너 자신을 알라’는 고대그리스 아폴로신전 기둥에 새겨져 있던 경구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명언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사실은 그 이전 그리스인의 지혜였던 셈이죠.

잘나가던 고대그리스인들이 오만(Hubris)에 빠질까봐 스스로에 경고한 것입니다.

2.

Hubris는 그냥 ‘오만’이라고 번역하기엔 좀 복잡합니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지나친 자신감에 우쭐해서..남에게 굴욕을 주면서..스스로는 쾌감을 느끼는 폭력적 행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특히 Hubris를 ‘인간이 신의 영역에 침범하는’ 정도로 지나친 오만이라 생각했습니다. 오만의 끝판왕인 셈이죠.

3.

고대그리스에서 얘기하는 Hubris의 주인공은 바로 페르시아 왕이었습니다.

전제군주 절대왕권을 휘두르는 페르시아왕은 민주주의자 그리스인들이 보기에 오만무도하기 짝이 없습니다. 사실 페르시아 왕은 신으로 받들여졌습니다.

그리스인들이 보기엔 황당했죠.
그런 페르시아를 그리스가 무찔렀으니까요. 그리고 승리에 도취한 Hubris를 스스로 경계한 겁니다.

4.

신전 기둥에‘너 자신을 알라’와 나란히 새겨진 댓구는 ‘매사에 지나치지 말라’입니다.

고대그리스에서도 민주주의는 늘 과격파의 강경드라이브라는 리스크에 시달렸습니다. 고대그리스 민주주의를 꽃피운 페리클레스는 늘 군중에게 이성을 호소하곤 했습니다. 잘나가던 아테네 시민들의 Hubris를 견제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지켰습니다.

5.

현정권 강경파들의 모습에서 Hubris가 보입니다.
대통령의 신중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민주당 의원들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박범계 법무장관은 22일 국회답변에서 검찰개혁 관련 문재인 대통령의 말씀을 공개했습니다.
‘크게 두 가지. 첫째, 올해 시행된 수사권개혁이 안착되어야 한다. 둘째, 범죄수사 대응능력, 반부패수사 역량이 후퇴해선 안된다.’

6.

대통령의 뜻은 분명해 보입니다.

첫째, 지난해 어렵사리 이룬 검찰개혁(검경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이 먼저 안착되어야 한다.

둘째, 범죄를 수사하는 기관의 역량이 떨어지면 안된다.

그러니까 민주당에서 ‘검찰개혁 시즌2’라며 추진하고 있는 ‘검찰 수사권폐지법’(중대범죄수사청 신설)은 서두르지 말라는 뜻입니다.

7.

그런데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당사자인 박범계 장관은 이날 답변에서 자신은 (대통령과) ‘생각이 다르다’고 밝힙니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야 한다. 수사는 (검찰 아닌) 별도 조직이나 경찰이 맡는게 맞다.’

별도조직이란 강경파들이 추진중인 ‘중대범죄수사청’입니다. 즉 법무부 장관이 대통령의 지시와 다른 소신을 국회에서 밝힌 셈입니다.

8.

다음날인 23일 강경파들은 더 강하게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는 행태를 보였습니다.
민주당 검찰개혁특위 간사 박주민 의원은 아침 라디오에서 분명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시즌2는 당이 주도한다. 합의가 다 됐기 때문에 마지막 조율 발표만 남았다. (대통령의 입장에 대해) 공식 비공식이든 전해진바 없다.’

장관이 국회에서 얘기했는데도..들은바 없으니 그냥 간다네요.

9.

이날 다른 강경파 의원들도 공청회를 열고 일제히 반대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중대범죄수사청에 대한 저항이 당내에서조차 만만치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힘을 모아 돌파할 것인가 고민이 필요하다.’(황운하 의원)

문재인의 저항(?)을 돌파하자는 얘기로 들립니다.

10.

이미 지난해 검찰을 3등분한 것만도 유사이래 최대수술입니다.

그마저 서둘러 허점투성이입니다.
경찰수사를 총지휘할 국가수사본부장이 22일에야 정해졌습니다. 공수처는 아직 인사위원회 구성도 안되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검찰의 남은 수사권을 모두 박탈하는 재수술이라니..법과 질서는 도대체 누가 지키는 것인가요.
노브레이크 강경파들이 대통령의 레임덕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
2021.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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