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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하라" 中 왕이에 美 국무부 실명 비판 "전형적 비난 회피"

중앙일보

입력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로이터=연합뉴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을 향해 대화를 제안하면서 내정 간섭을 하지 말라고 요구한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미국이 강도 높게 비판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후 새롭게 손발을 맞춰가고 있는 미·중 관계가 초반부터 삐걱대고 있다. 향후 4년간 미·중 관계가 어떻게 흘러갈지를 시사한다.

"미국이 잘못 시정하라" 왕이 외교부장 요구에 #美 "비난 회피하는 중국 정부의 전형적인 성향" #"신장·홍콩 민주적 가치 옹호…쿼드로 맞설 것" #화웨이 놓고 "중국 조작 가능성 장비 우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22일(현지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전날 '중국의 핵심이익을 존중하라'는 왕 부장 발언을 놓고 "비난을 회피하려는 중국 정부의 전형적인 성향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중국이 약탈적인 경제 관행, 투명성 결여, 국제적 합의 준수 실패, 보편적인 인권 탄압에 대한 비난을 모두 남 탓으로 돌리고 있다면서다.

질문자는 '중국 최고위 외교관' 발언으로 물었는데, 프라이스 대변인이 "왕 국무위원의 발언을 말하는 것이냐"며 작정하고 실명을 거론했다. 왕 부장은 앞서 21일(현지시간) 베이징 외교부에서 열린 란팅포럼 연설에서 바이든 행정부와의 관계에 대한 중국 입장을 밝히는 내용으로 연설했다.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22일(현지시간) 란팅포럼에서 바이든 행정부를 향해 중국의 입장을 담은 연설을 했다. [AP=연합뉴스]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22일(현지시간) 란팅포럼에서 바이든 행정부를 향해 중국의 입장을 담은 연설을 했다. [AP=연합뉴스]

제목부터 '잘못을 바로잡고 상호존중과 상생 협력 약속하기'인 연설문은 중국 정부가 바이든 행정부에 요구하는 '잘못을 바로잡을' 사항을 담았다. 출범한 지 한 달이 된 바이든 행정부를 상대로 중국 정부가 선제적으로 ‘미국이 시정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왕 부장은 바이든 행정부와 새로운 관계 정립을 위한 대화를 제안하면서 네 가지 요구사항을 말했다. 첫째, 상호 존중과 상대방 국내 문제에 간섭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홍콩과 신장, 티베트 문제에 대한 중국의 주권 훼손을 멈추고 대만 독립을 옹호하는 세력과 "공모"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예의 바른 신사는 남의 접시에 있는 음식에 포크와 나이프를 들이밀지 않는다"는 표현까지 썼다. 둘째로 미국과 진솔한 대화를 할 준비가 돼 있다며 대화를 제안했다.

셋째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산 상품에 부과한 고율 관세와 중국 기업·연구소에 내린 제재를 철회하고, 중국의 기술진보에 대한 비이성적인 탄압을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필요조건이 만들어지면 미국이 원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기후변화, 세계 경제 회복에 관해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넷째로 미국 내 중국인 유학생과 언론기관, 영사관에 부과한 각종 제한을 철폐하라고 요구했다. 중국 통신장비 기업 화웨이의 5세대(5G) 이동통신 장비 사용 금지, 휴스턴 총영사관 폐쇄, 중국인 유학생과 공자학원 등 인적·문화적 교류 억제 등 트럼프 행정부가 내린 대중국 조치를 모두 풀라는 것이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이 22일 정례 브리핑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이 22일 정례 브리핑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는 사실상 미국을 향해 중국에 관한 한 인권, 민주주의 정책을 포기하고 그외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중국 압박도 모두 철회하라는 요구다. 워싱턴 외교가에선 중국이 대놓고 미국을 향해 고압적 태도를 과시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미국 정부는 ‘그럴 리 없다’며 공개 대응했다. 프라이스 대변인은 "신장과 티베트 외 중국 어디에서든 인권 침해가 일어나거나 홍콩에서 자치권이 짓밟힐 때 우리는 민주적 가치를 계속 옹호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중국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방법으로 동맹 및 파트너와 긴밀하게 협력하겠다고 밝히면서 "그게 바로 우리가 쿼드로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도·태평양 지역 동맹뿐 아니라 유럽 동맹과 함께 유리한 위치에서 중국에 접근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은 쿼드가 아주 중요한 모멘텀과 잠재력이 있다 본다"고 평가했다. 이어 "쿼드 파트너와 긴밀히 협력해 해양 안보와 같은 전통적인 분야에 관한 협력을 심화함으로써 쿼드를 기반으로 이 지역 당면 과제와 기회에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에 이어 쿼드를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중요 장치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확인한 것이다. 쿼드는 미국과 일본·인도·호주 4개국 안보 협의체이며, 트럼프 행정부에 이어 바이든 행정부도 한국과 베트남 등을 참여시켜 참가국을 확대하려는 뜻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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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아직 화웨이 배제를 공식 발표하지 않고 있는 데 대한 미국 입장을 질문받고 프라이스 대변인은 "독일을 포함해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동맹이나 파트너라면 이 문제에 함께 맞서야 한다"고 답했다. 독일이 화웨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압박한 것이다.

“중국이 조작 가능한 장비 위험성 깊이 우려” 

트럼프 행정부의 화웨이 배제 정책 역시 바이든 행정부로 이어지고 있다. 프라이스 대변인은 "중국이 일으킨 안보와 기술에 대한 도전에 대해 지금까지 많은 대화가 오갔다"면서 "우리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조작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장비를 네트워크에 설치하는 것의 위험성을 깊이 우려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국은 사생활이나 인권에 대한 개념이 없다고도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아직 중국산 상품에 부과한 고율 관세 철회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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