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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文공약에 ILO 협약 강행…이대론 박사 전문요원 다 軍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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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ILO 핵심 협약인 '결사의 자유'(87호)와 '단결권·단체교섭권'(98호) 비준안이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의결됐다. 연합뉴스

22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ILO 핵심 협약인 '결사의 자유'(87호)와 '단결권·단체교섭권'(98호) 비준안이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의결됐다. 연합뉴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가 22일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3개의 비준동의안을 의결했다. ILO 협약 29호(강제 노동 금지)와 87·98호(결사의 자유) 등 3개다. ILO 핵심 협약 비준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다. 더불어민주당은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할 방침이다. 현재 상황이라면 비준안 통과가 유력하다.

문제는 ILO 협약 비준 이후의 파장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느냐다. 파장에 따른 대응책은 마련돼 있을까. 그보다 문 대통령의 공약이행에 쫓겨 앞뒤 재지 않고 밀어붙이는 인상이다.

ILO 협약을 비준한 뒤 협약에 반하는 제도가 있거나 행위를 하면 통상 보복과 같은 국제적인 제재에 직면하게 된다. 지금까지 계속 시행해온 제도라도 예외는 인정되지 않는다. 국제연합(UN) 차원의 제재는 물론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국가로부터 수출과 수입 제한, 고율의 관세 부과를 비롯한 각종 무역제재를 받을 수 있다.

한데 국내 법·제도 가운데 상당수가 ILO 협약과 충돌한다. 협약이 비준에 따른 효력을 가지면 곧바로 협약 위반 국가로 전락하고, 낙인찍힐 수 있다는 뜻이다.

심지어 지난해 말 개정한 노조3법에도 협약 위반 소지가 있는 조항이 수두룩하다. 개정된 법은 실업자와 해고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고, 퇴직 공무원과 소방공무원 등도 노조를 결성하고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ILO 협약을 비준하기 위한 정지작업이었다"는 게 정부와 여당의 노조3법 개정 이유였다.

법을 정비했다지만 ILO 협약이 비준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협약이 법적 효력을 갖는다. 신법(新法)우선의 원칙에 따라 ILO 협약이 우선한다. 기껏 정비했다는 노조법 중 ILO 협약과 충돌하는 조항은 법적 효력을 잃고 ILO 협약으로 대체된다는 뜻이다.

개정된 노조3법은 기업별 노조의 임원 자격을 제한한다. 해당 기업에서 해고된 사람이나 실업자가 노조 간부로 활동하며 임금과 단체교섭을 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조치다. 기업 내부의 자율적 노사관계가 외부의 힘이나 압력에 의해 휘둘리지 않기 위해 마련된 조항이다. 그러나 이는 ILO 핵심 협약상 결사의 자유를 방해하는 행위다. ILO 협약이 비준되면 이 조항은 자동 폐기될 운명에 처하고, 해고자나 실업자가 기업별 노조의 간부로 활동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행정기관의 노조 설립 신청 반려도 결사의 자유를 위반할 소지가 크다. 또 노조의 활동 범위를 사용자의 효율적인 사업운용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로 한정한 것도 협약 위반이다. 실업자와 해고자의 노조활동을 방해할 수 있다는 이유다. 종사자(해당 기업의 직원)가 아닌 자의 사업장 출입제한도 마찬가지다.

논란이 되는 이 모든 조항에 대해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우리 정부에 폐지와 개정을 여러 차례 권고했었다. 바꿔 말하면 ILO 협약 위반이라는 것이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동의안 처리와 노조법 재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동의안 처리와 노조법 재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과적으로 ILO 핵심 협약 비준은 노조의 활동력을 크게 높인다. 노동계가 노조3법이 노동계의 요구를 대폭 반영하는 형태로 개정됐음에도 불구하고 ILO 협약 비준을 강하게 요구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경영계는 대체근로 허용과 같은 대항권을 달라고 정부·여당에 줄기차게 요청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대체근로를 금지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ILO는 경영계가 노조에 대항권을 가지는 것을 허용한다. 그러나 노조3법 개정 과정에서 정부·여당은 외면했다.

군 대체복무제도와 교정행정의 틀도 확 바꿔야 한다. 지금의 제도를 그대로 운용하면 협약 위반으로 국제 사회로부터 전방위적인 제재를 당할 수 있다. 협약은 한국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다. 정부와 여당이 핵심 협약 중 하나인 105호 협약(찬양·고무·선동 행위와 공직자의 정치적 견해 표명 등에 대한 처벌 및 강제노동 철폐)을 비준하려다 분단상황과 국가보안법과의 충돌 때문에 없던 일로 한 이유다.

강제노동금지 협약(29호)을 비준하면 징병에 따른 의무복무는 군으로 사실상 국한된다. 따라서 각종 연구시설과 기업에서 근무하는 석·박사급 전문연구요원, 기업에서 일하는 산업기능요원과 같은 군 복무 대체요원은 모두 군대에 가야 하는 운명에 처할 수 있다. ILO 협약상 이들은 저임금으로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어서다. 제값을 주지 않고 군 복무 대체라는 이름으로 노동력을 값싸게 활용하는 행위다. 이로 인해 다른 나라의 제품보다 싼 가격에 제품을 개발하고 만드는 것은 국제 무역상 강제노동에 의한 불공정 행위라는 게 ILO의 입장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현역으로 복무할 것인지, 전문·산업요원으로 근무할 것인지 당사자에게 선택권을 주면 문제가 없다"는 해석을 내놨다. 이에 대한 학계의 의견은 대체적으로 정부의 자의적인 해석일 뿐이라는 반응이다. ILO 협약 위반 판단은 ILO와 회원국이 한다. 우리 정부가 "괜찮다, 아니다"고 주장해봐야 소용이 없다.

이와 관련 ILO는 한국처럼 강제징집하는 터키와 이집트가 필요 인원을 초과한 징집병을 공기업이나 사기업에 배치하자 'ILO 협약 위반'이라고 판정했다. 2007년 8월 한국의 질의에도 같은 답을 회신했다. 2009년과 2012년 ILO 이사회에서 물었을 때도 '군사적 목적과 관련 없는 것은 병역의무로 볼 수 없다'며 위반이라고 했다. ILO의 이런 입장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교도소와 같은 교정시설에서 사회 복귀 적응력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시행 중인 통근 근로도 강제노동금지 협약 위반 행위로 판정받을 수 있다. 출퇴근하는 회사에 소속된 근로자의 임금보다 훨씬 적은 일당, 즉 싼 노동력을 동원해 제품을 만드는 행위여서다. 교도소 안에서 교도작업으로 제품을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만든 제품은 공공기관이나 민간에 납품되고, 일반인에게도 저렴하게 판매된다. 값싼 노동력으로 생산비용을 낮춤으로써 다른 회사와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다. ILO가 강제 노동에 따른 불공정 경제활동으로 보는 이유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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