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숙지 필요"…정의용 장관, 유엔 인권이사회 불참

중앙일보

입력 2021.02.23 11:37

업데이트 2021.02.24 09:46

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 등을 다루는 유엔 인권이사회 고위급 행사에 전년과 달리 외교부 장관이 아닌 차관을 참석시키기로 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영상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영상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제46차 유엔 인권이사회 고위급 회기는 22일(스위스 제네바 현지시간) 시작해 24일까지 진행된다. 코로나19 상황을 고려, 이번 회의는 화상으로 진행된다.
고위급 회기에선 말 그대로 각국의 고위급 인사들이 참석, 기조연설을 통해 자국의 인권 기조와 철학을 발표한다. 인권이사회가 공지한 일정과 연사를 보면 한국 참석자는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아닌 최종문 2차관으로 돼 있다.  

강경화 장관은 임기 내 직접 참석

고위급 회기 참석자의 급은 각국 사정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보편적 가치인 인권을 논의하는 가장 권위 있는 국제 무대라는 점을 고려, 주로 외교당국의 수장이 참석하는 경우가 많다.
정 장관의 전임자인 강경화 전 장관도 2017년 6월 취임 뒤 2018ㆍ2019ㆍ2020년 모두 직접 제네바에서 열리는 인권이사회에 참석해 연설했다. 주요국들에서도 장관이 직접 나선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22일 이미 연설했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상은 23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24일 연설한다.

지난해 2월 유엔 인권이사회 고위급 회기에 참석해 기조연설하고 있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사진 외교부

지난해 2월 유엔 인권이사회 고위급 회기에 참석해 기조연설하고 있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사진 외교부

다른 외교 일정이 있어서 시간을 맞출 수 없다면 모르겠지만, 이번 행사는 대면도 아닌 화상회의다. 사전에 녹화한 영상을 각국 순서에 맞게 상영하는 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는 굳이 정 장관이 직접 나서지 않고 최 차관이 연사로 나설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취임 초기의 다른 분망한 일정 등 제반사항을 종합적으로 감안한 것"이라며 "인권이사회 고위급 회기는 반드시 장관이 참석하는 것이 아니고, 과거 총 15회 중 장관 참석이 7회이며 나머지 8회는 차관이나 다자외교조정관이 참석했다"고 설명했다. 또 이달 초 부임한 정 장관이 아직 업무 숙지가 더 필요하다는 점이 불참을 결정한 이유로 작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 장관보다 불과 보름 앞서 취임한 블링컨 장관은 이번 인권이사회 고위급 회기에 참여한다. 

결국 또 북ㆍ중 의식했나

특히 정 장관은 현역 시절 인권이사회가 열리는 제네바에서 대표부 대사까지 역임했고(2001~2003년), 입부한 지 50년 된 숙련된 외교관이다. 정 장관은 앞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하면서 외교안보통일 분야를 총괄했다.물론 유엔 인권이사회 자체는 그가 주제네바 대사를 지낸 직후인 2006년 시작됐지만,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OHCHR)은 이미 1990년대에 창설됐다. 업무 숙지가 더 필요하다는 외교부 설명에 많은 외교가 인사들이 갸우뚱하는 이유다.
결국 북한과 중국 등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매해 북한 인권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고, 끔찍한 북한의 인권 상황을 규탄하는 결의안도 채택한다. 주요국 장관들이 고위급 회기 연설에서 직접 북한 인권을 문제삼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이번 행사에서는 위구르 신장 및 홍콩 등 중국에 대한 인권 침해 문제도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남북 관계 개선과 한ㆍ중 관계를 중시하는 정부가 이런 무대에 외교부 장관을 보내는 게 조심스러웠던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정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지난 2019년 강제 북송한 탈북 어부들에 대해 “그런 탈북민은 우리 국민으로 보지 않았다”고 말해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그의 인식을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22일 유엔 군축회의에서 화상으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화상으로 연설했다. 주제네바 미국 대표부 웹사이트 캡처

22일 유엔 군축회의에서 화상으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화상으로 연설했다. 주제네바 미국 대표부 웹사이트 캡처

블링컨 ‘한반도 비핵화’ 아닌 ‘北 비핵화’ 강조

한편 22일(현지시간) 역시 화상으로 진행된 유엔 군축회의(CD)에서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denuclearization of North Korea)에 여전히 집중하고 있으며, 평양의 불법적인 대량살상무기(WMD)와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에 대응하기 위해 동맹, 파트너들과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블링컨 장관이 ‘한반도 비핵화’가 아니라 ‘북한 비핵화’라고 표현한 것은 취임 이후 처음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촛점은 북한의 핵프로그램 제거 및 폐기에 있음을 보여준다.
또 그가 언급한 WMD는 생ㆍ화학무기도 포함한다. ‘장거리 미사일’이 아니라 ‘탄도 미사일’로 표현, 사거리를 특정하지 않은 점도 주목된다. 대북 정책 리뷰 중인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와는 달리 장거리 미사일 뿐만 아니라 ‘단거리 탄도 미사일’까지 포괄적으로 공식 문제삼을 가능성을 열어놨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