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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재 요즈마 법인장 “이스라엘·韓 피섞어 제2 나녹스 만들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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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이스라엘의 경제수도 텔아비브에는 구글, 애플, 퀄컴 등 세계적인 기술기업의 연구개발(R&D) 센터 400여 곳이 밀집해 있다. 인구 1000만도 안 되는 작은 나라가 세계적인 창업국가로 발돋움한 배경엔 민관 모태펀드 '요즈마(히브리어로 '창의', '시작') 펀드'가 있다. 요즈마 펀드는 이스라엘 총리실 산하 수석과학관(장관급)을 지낸 이갈 에를리히 회장의 지휘 아래 1990년대 수백 개의 벤처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글로벌 기업의 R&D 센터를 유치했다. 요즈마그룹이 연간 굴리는 운용자산은 약 4조원에 이른다.

[팩플]

글로벌 기술기업들의 R&D 센터들이 모여있는 이스라엘 텔아비브 [사진 요즈마그룹코리아]

글로벌 기술기업들의 R&D 센터들이 모여있는 이스라엘 텔아비브 [사진 요즈마그룹코리아]

그런 요즈마그룹이 2013년 한국 연락사무소를 개설했을 때, 국내 창업계는 유대인 자본의 등장에 내심 큰 기대를 품었다. 2년 뒤 사무소는 한국법인이 됐다. 한국법인장 이원재(37) 대표가 주목을 받은 것도 이즈음이었다. 히브리대 비교종교학 박사 과정을 밟는 어머니를 따라 열두 살부터 이스라엘에서 자랐다는 그의 이력은 국내 벤처캐피탈(VC) 업계에 '이스라엘식 창업 성공비결을 전수해줄' 신선한 바람이었다. 하지만 7년이 지나도록 요즈마그룹이 한국 스타트업에 '대규모 투자'를 했다더라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지난 9일 서울 강남구의 요즈마그룹코리아 사무실에서 이원재 대표를 만났다. 요즈마그룹이 3대 주주, SK텔레콤이 2대 주주인 디지털 영상 의료기기 업체 '나녹스'가 생산 공장 구축을 위해 경기도 용인에 부지 3600평을 매입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날이었다. 나녹스는 지난해 8월 나스닥에 상장한 이스라엘 스타트업이다. 엑스레이 방사선 노출 시간을 30분의 1로 줄이고 촬영비용을 기존의 10% 수준으로 내린 기술을 보유했다. 상장 3주만에 주가가 공모가(18달러) 대비 255% 급등했다가 두달 뒤 주가가 40% 급락했다. 공매도 투자 기관들이 '기술의 실체가 없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 다시 두 달 뒤,지난해 12월 나녹스가 장비를 직접 시연하면서 의혹은 해소됐다.

이원재 요즈마그룹 한국지사 대표가 9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상선 기자

이원재 요즈마그룹 한국지사 대표가 9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상선 기자

"美 기관들 투자…나녹스 의혹 충분히 해소"

나녹스 이야길 안할 수 없다. 지금 상황은.
테슬라의 기술성을 심사했던 아크인베스트먼트(약 7만주),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약 19만주)도 나녹스 주식을 샀다. 공매도 리포트를 냈던 씨트론은 지난 10월 리포트를 삭제했다. 악의적인 공격이었다. 보수적인 미국 기관투자자들이 움직였다는 건 기술력이 입증됐다는 증거다. 이제 나녹스는 한국을 생산기지로 삼아 인력 채용과 스타트업 투자, 시설 확충 등에 4000만 달러를 투입한다. 한국과 이스라엘 기업이 제대로 협력하는 첫 사례다.
디지털 엑스레이 장비 '나녹스아크'를 손보고 있는 나녹스 직원들 [사진 요즈마그룹코리아]

디지털 엑스레이 장비 '나녹스아크'를 손보고 있는 나녹스 직원들 [사진 요즈마그룹코리아]

"한-이스라엘 매칭해 韓 제조기업 지원"

요즈마그룹이 한국법인을 설립한 지 7년차다. 그룹 규모에 비해 눈에 띄는 성과가 없지 않나.
'전투적으로 투자할 줄 알았는데, 아니네?' 많이 들은 얘기다. 다들 의아해했다. 솔직히 본격적으로 투자를 시작한 지는 2년 됐다. 초반에 에를리히 회장은 '앞으로 몇 년간은 투자하지 말라'했다. 한국을 먼저 공부하고 네트워크부터 쌓으란 지시였다. 실제로 아무리 좋은 회사를 본사에 소개해도 투자 승인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 2018년부터 투자 승인이 났다. 지난 2년간 한국법인은 약 1470억원을 투자했다. 평균 내부수익률(IRR)은 86%, 누적 펀드 수는 23개다.
한국에 맞는 투자 전략을 찾은 건가.
그렇다. 이스라엘의 혁신기술과 한국의 제조기술을 한 바구니에 담아 조인트벤처(JV)를 만들 때 가장 큰 시너지가 난다는 걸, 나녹스를 통해 경험했다. 오는 3월 1000억원 규모의 중견기업 성장펀드도 출범한다. 제조력은 있지만 신재생에너지, 배터리, 인공지능(AI) 등 신기술에 갈증을 느끼는 국내 기업들과 이스라엘 기술기업들을 맺어주는, 올해의 주력사업이다.
이갈 에를리히 요즈마그룹 회장과 이원재 요즈마그룹코리아 대표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요즈마그룹코리아]

이갈 에를리히 요즈마그룹 회장과 이원재 요즈마그룹코리아 대표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요즈마그룹코리아]

"이스라엘은 스타트업 민족, 한국은 스케일업 민족" 

한국 스타트업의 기술만으론 역부족인가.
그렇다기보단, 한국과 이스라엘이 '서로 없는 것'을 채워줄 때 폭발적으로 성장할 거라 판단했다. 이스라엘은 기술을 창업과 연동해 사업화를 할 줄 알지만, 제조기술이 없다. 0에서 10까진 만들지만 100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반면 한국은 R&D에 뛰어나지만 거기까지다. 논문엔 굉장한 기술이 있는데 돈은 못 번다. 그런데 제조력, '메이드 인 코리아'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수준급 기술이다. 이스라엘의 기술을 한국에 바톤터치해보니 10에서 100을 만들 수 있더라. 이스라엘은 스타트업(시작)에, 한국은 스케일업(확대)에 강한 민족이란 거다.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올해 7개 이상의 이스라엘 회사가 한국의 제조기술과 연계하는 등 한국과의 협력을 거쳐 나스닥 기업공개(IPO)를 준비한다. 인공지능(AI)과 모빌리티, 로봇 자동화 등 정보기술(ICT), 바이오·헬스케어와 메디컬 기기, 저탄소와 배터리 관련 그린에너지 분야 회사들이다. 제 2, 3의 나녹스가 나올 수 있다고 본다. 그린에너지에 대해선 그룹 전체가 ESG(기업의 환경(Environment), 사회적 영향(Social), 지배구조(Governance)) 기준을 강화 중이다. 투자 심사단계에서 ESG를 평가하기 위한 정량 지표를 개발하고 있다.
이원재 요즈마그룹 한국지사 대표가 9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상선 기자

이원재 요즈마그룹 한국지사 대표가 9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상선 기자

"韓은 바이오강국…내수 넘어 글로벌 도전해야"

합작벤처(JV) 외에 다른 계획은.
물론 한국 스타트업도 육성한다. 웰마커바이오, 신테카바이오 등 주로 바이오 회사다. 에를리히 회장이 가장 높게 사는 한국의 기술력이 바이오다. 지난 수십 년간 명석한 인재들이 의대로 몰렸기 때문이다. 과거엔 의사·약사가 평생 직업이었지만, 이젠 이들이 창업을 한다. 글로벌 제약사들 역사를 봐도 뛰어난 의료진의 합류는 바이오 창업의 성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열쇠다. 지금까지 요즈마코리아가 바이오 스타트업들 위주로 투자해온 이유다.
마지막으로 국내 창업계에 조언한다면.
이스라엘 기업들은 주위에 널려있는 글로벌 R&D 센터를 통해 빠르게 기술 트렌드를 읽고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보고 창업한다. 한국은 유니콘 기업도 상당수가 내수시장을 보고 시작한 B2C 기업이다. 그러나 한국 시장은 작다. 해외 진출이 어렵다면 피를 섞을만한 현지 파트너를 찾아서라도 글로벌로 나가면 좋겠다. 정부는 글로벌 R&D 센터를 적극 유치하고, 액셀러레이팅 펀드 등을 통해 국제특허를 가진 '스타 기술주'를 육성할 때라고 본다.

김정민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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