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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이불·의자로 꾸민 집에서 펼쳐지는 네버엔딩 스토리

중앙일보

입력

놀사와 같이 놀자 12화. 집 놀이

여러 물건으로 집을 만들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상상하며 노는 집 놀이. 덥거나 추워서 밖에 못 나가는 날에 제격이다.

여러 물건으로 집을 만들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상상하며 노는 집 놀이. 덥거나 추워서 밖에 못 나가는 날에 제격이다.

찬바람이 매섭고, 코로나19가 걱정되는 요즘 날마다 두 아들과 씨름입니다. 하루라도 바깥놀이를 안 하면 발바닥에 가시가 돋는지 날마다 나가서 놀자고 성화죠. 그래도 감기기운 있다며 만류하면 엄마가 아픈 건 걱정되는지 바로 집 놀이를 하자며 다른 방법을 찾는 아이들이 참 고맙고 기특하기만 합니다.

여덟살과 여섯살, 두 사내아이가 말하는 ‘집 놀이’는 집에서 하는 놀이가 아니라 집을 지으며 노는 놀이예요. 의자·이불·보자기·끈 등으로 집을 만들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상상하며 노는 거죠. 내가 직접 설계해서 구조물 만들기, 내가 주인공이 되어 꾸려 나가는 끝없는 상상의 세계. 아늑한 나만의 공간. 특별히 놀이랄 것도 없고, ‘요즘 아이들 놀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기도 애매한, 고전과도 같은 놀이지만 이만큼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도 없을 듯싶습니다. 그래서 너무 덥거나 추워서 못 나가는 날이면 자연스레 하게 되는 단골놀이가 되었죠.

아이들이 집 만드는 과정을 한 번 살펴볼까요. 의자란 의자는 모두 가져오고, 높이 세워 기둥을 만들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다 모아 옵니다. 거기에 이불과 보자기, 여러 굵기와 길이의 끈도 필요하죠. 먼저 어떤 집을 지을지 구상을 하고 의자를 배치합니다. 끈으로 의자와 의자를 묶어 집 틀을 튼튼하게 엮어요. 틀이 만들어지면 이불과 보자기로 겉을 꾸미는데 이때도 틀과 이불을 끈으로 동여매 견고하게 만듭니다.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참 야무지게도 하네요. 완성된 집에 들어가 보니 ‘아, 아늑하고 따뜻하다. 나가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죠. 상상 놀이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이날은 크리스반 알스버그의 책 『북극으로 가는 기차』가 이야기의 시작이 됐습니다.

의자를 비롯해 높이 세워 기둥을 만들 수 있는 것, 이불·보자기·끈 등 집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으로 나만의 집을 만들어준다.

의자를 비롯해 높이 세워 기둥을 만들 수 있는 것, 이불·보자기·끈 등 집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으로 나만의 집을 만들어준다.

엄마 “우와! 2층 침대 같네.”
아이들 “침대 기차야.”
엄마 “러시아 횡단열차 같은 거?”
아이들 “북극으로 가는 거야. 산타 할아버지가 있는 북극으로 가는 기차!”
엄마 “아, 그래? 진짜 기대된다. 얼른 가자!”
아이들 “알았어. 엄청 빨리 갈게. 치타 기차로 출발~”
엄마 “와~ 진짜 빠른데? 이번엔 뱀 기차로 가주세요.”
아이들 “알겠습니다. 쉬~ 쉬식~(뱀처럼 기어가는 시늉) 이번엔 개미 기차. 지금 기차랑 우리가 개미만큼 작아진 거야. 자, 이제는 번개 기차! 하늘을 날아간다! 슈우웅~”
엄마 “와! 하늘을 나니까 기분이 너무 좋다~ 근데 배가 좀 고프네.”
아이들 “내가 요리해줄게. 자, 이건 먹어도 먹어도 줄어들지 않는 음식이야. 북극 갈 때까지 계속 먹을 수 있어.”
아이들 “북극에 도착했습니다. 산타 할아버지가 어디 있지?”
엄마 “여기 있지~(빨간 천을 몸에 두르고 산타 할아버지 목소리로 선물을 줍니다)”
아이들 “와~ 신난다! 이제 남극으로 가자~ 배를 타고 남극으로 갈 거야(기차 지붕을 걷어 내고 배로 변신).”
엄마 “그럼 구명조끼 입을까?(집에서 입는 조끼 착용) 여기 안에 계속 누워 있으니까 따뜻하고 솔솔 잠이 와.”
아이들 “그럼 자. 우린 수영 좀 할게.(갑판 위로 올라가 다이빙도 하고 바다에서 수영도 한다).”
엄마 “이제 출발할까?”
아이들 “알았어. 상어로 갈게(이후 해마·바다거북·청새치 등 계속 변신. TV프로그램에서 본 물고기는 다 나옵니다).”
엄마 “청새치? 사람만큼 큰 물고기 그거?”
아이들 “응. 낚시할 때 여러 사람이 당겨도 힘들어. 볼래? 이렇게!”
엄마 “앗! 저기 청새치 있다! 얼른 당겨!”
아이들 “우리가 가서 잡아 올게(바다로 뛰어들어 베개를 잡아 옵니다). 대왕조개도 잡았어~(동그란 쿠션) 청새치 3마리나 잡았어~”
엄마 “와~ 이렇게나 많이 잡았어.”
아이들 “남극에서 먹을 식량이야”.
엄마 “배 터지게 먹겠다. 우리도 밥 먹자!”
아이들 “응. 진짜 재밌다. 엄마랑 하니까 더욱 더 재밌어! 밥 먹고 또 하자.”

기차는 계속 여러 동물로 변신하다 배로도 변하고, 북극에 갔다 남극으로 가는 등 아이들의 상상은 멈출 줄 몰랐습니다.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네버엔딩 스토리는 저녁시간이 되어서야 멈췄죠. 잠깐이지만 아이가 되어 본 시간. 왜 아이들이 그렇게 놀고 싶어 하는지, 스스로 만드는 놀이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몸으로 느낀 시간이었죠. 요즘 아이들은 예전과 다르게 그림책부터 연극·영화 등 다양한 문화를 향유하면서 자라기 때문에 앞에 소개한 집 놀이 같은 정형화되지 않은 놀이를 스스로 만들어 놀기도 합니다. 조금은 다른 요즘 아이들의 놀이가 아닐까 싶네요. 마냥 놀고 싶은 마음, 내가 주체가 되어 놀이를 꾸려나가는 힘은 그 무엇도 이길 수 없죠. 놀이 본능을 용케 붙잡고 있는 아이들이 참 대단하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합니다. 그 놀이 본능을 지켜주고 싶습니다. 삶 속에서.

글=노상은(놀이하는사람들 경기도 고양파주지회), 사진=중앙포토, 정리=한은정 기자 han.eu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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