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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사전재가 없이 박범계 인사 발표, 신현수 감찰 요구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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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통화를 하고 있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왼쪽)과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 연합뉴스·뉴스1

1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통화를 하고 있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왼쪽)과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 연합뉴스·뉴스1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정식 사전 결재를 받지 않고 검사장급 인사를 발표했기 때문에 박범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감찰을 요구했다고 복수의 여권 관계자가 21일 말했다.

이같은 의혹은 20일 일부 언론 보도를 통해서 처음 제기됐지만 청와대는 "대통령의 재가 없이 법무부 인사가 발표됐다는 일부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만 밝혀 주말새 의혹은 증폭됐다. 신 수석이 감찰을 요구했다는 점은 부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문 대통령이 검찰 인사를 재가한 시점과 방식을 계속 숨기고 있는 점도 의문을 낳고 있다.

참여정부·캠프 인사들에 "박범계 감찰 요구" 털어놔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신 수석은 참여정부와 문재인 대선 캠프 법률지원단 등에서 함께 일한 인사 등에게 문 대통령에게 박 장관에 대한 감찰을 요구했었다고 털어놨다고 한다. 신 수석은 박 장관이 지난 7일 문 대통령의 정식 사전 재가 없이 검찰 고위 간부 인사를 발표한 건 대통령의 인사권을 침해한 중대한 비위 행위로 봤다는 것이다. 검찰청법 제34조 1항은 '검사의 임명과 보직은 법무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한다. 이 경우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검사의 보직을 제청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조계도 이날 검찰 인사에 대한 최종 권한이 문 대통령에게 있는 만큼 신 수석이 박 장관이 본인을 '패싱'한 것만으로 감찰 요구를 했을 리 만무하다고 해석했다. 정통한 법률가인 신 수석이 위법하지 않은 사안, 즉 수사로 이어질 수 없는 사안에 대한 감찰을 요구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정통한 관계자는 "법을 잘 아는 신 수석이 자신을 인사에서 배제했다는 이유만으로 장관 감찰을 요구했겠는가. 신 수석은 문 대통령의 인사권 침해를 알고는 문제 삼은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신 수석이 민정수석 패싱을 이유로 감찰을 요구했다고 한다면 패싱을 묵인한 문 대통령을 감찰 대상으로 지목한 것인데 그건 말이 안 된다"라고도 했다.

박 장관은 하지만 '일요일이던 지난 7일 대통령의 구두 재가를 받았는지, 8일 사후 재가를 받은 것인지' 등에 관한 중앙일보 전화와 문자 메시지에 답을 하지 않았다.

여권의 '문재인 패싱'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7회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신현수 청와대민정수석 사의표명(오른쪽 맨끝).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7회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신현수 청와대민정수석 사의표명(오른쪽 맨끝).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검찰 인사와 관련된 사안을 두고 문 대통령의 사전 재가 없이 이뤄졌다는 얘기가 나온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징계 청구하는 과정에서 문 대통령의 재가를 얻었는지 의혹이 제기됐었다. 하지만 검찰총장 징계청구는 법무부 장관의 고유 권한이다. 최종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다 하더라도 사전 재가를 받지 않았다고 해서 위법은 아니다.

이번에는 경우가 다르다. 징계청구와 달리 검찰 인사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7일 법무부가 검찰 고위간부 인사를 발표하기 전에 문 대통령이 직접 인사안 전자결재 또는 하드카피 문서 둘 중 하나에는 반드시 사인했어야 한다. 이 같은 사전 재가 과정이 없었다면 법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대통령의 사전 재가 없이 검찰 인사가 발표된 것이 사실이라면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농단과 다를 바가 없다. 과연 선출된 권력이 청와대를 움직이는지 의구심을 갖게 하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靑 '복귀' 전방위 설득에도 신현수 "저는 이미 동력 상실"

청와대 신현수 민정수석과 김외숙 인사수석이 지난 1월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힌 국무회의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 신현수 민정수석과 김외숙 인사수석이 지난 1월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힌 국무회의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8일부터 휴가를 냈던 신 수석이 휴가가 끝나는 22일 출근한다고 밝혔다. 출근 후 일일상황점검회의나 이어지는 문 대통령과 참모들의 '티타임'에서 신 수석이 거취에 대한 최종 입장을 표명할 것으로 관측된다. 문 대통령 주재로 같은 날 오후 2시에 열리는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 신 수석이 참석할지와 문 대통령의 모두발언에도 관심이 쏠린다.

신 수석이 사퇴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신 수석은 주말 사퇴를 만류하는 인사들에게 "이미 저는 동력을 상실했습니다. 박 장관과는 평생 만나지 않을 것입니다. 법무부와 검찰의 안정적 협력관계는 시작도 못 해보고 깨졌습니다"라는 석줄 짜리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과거 참여정부 인사는 "주말 통화에서 '수석 외에 장관과 총장을 다 아는 분 없지 않냐. 조율하셔야 하시지 않냐'고 말씀을 드렸는 데 완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전했다.

청와대는 막판까지 상황을 지켜본다는 신중한 입장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다양한 경로로 막판까지 신 수석을 설득한다는 방침이라 신 수석이 사퇴를 번복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정유진·하남현 기자 jung.y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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