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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지금 청와대에는 위아래도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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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논설위원

고정애 논설위원

지금으로부터 6년여 전 야당 의원이 이런 개탄을 했다.

6년 전엔 민정수석실 난맥 질타 #문 대통령, 박범계 무리수엔 침묵 #민정수석 패싱 용인했나 묵과하나

“지금 청와대에는 위아래도 없고, 공선사후(公先私後)의 기본 개념도 없다. 콩가루 집안이란 말이 있지만, 국가 운영의 심장부가 어떻게 이처럼 비극의 만화경(萬華鏡)일 수 있는가.”

당시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이 국회 운영위에 출석하라는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의 지시를 거부하고 사표를 낸 걸 두고서였다.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사건이긴 했다. 그 무렵 청와대 주변에선 우병우 민정비서관이 김 실장과 직거래하면서 김 수석을 사실상 ‘패싱’했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김 전 수석(2016년 작고)이 남긴 비망록엔 그래도 이런 대목들이 있다. 2014년 7월 1일자다. ‘황교안/ 16기 5명(名)에는 없음/ OOO(K고 2명이라 불가)  OOO(곤란 종합평가) OOO(본인 거부) OOO(보직상)/ 17기 OOO(역량 부족 고사, 완강) OOO(PK, 청와대 근무 전력) OOO(일단 고사, 설득 가능성)’. 3일자엔 단수의 이름과 함께 ‘땅, 군(軍)-청문회 문제 무(無)’라고 나온다.

황교안은 당시 법무장관이고 16기·17기는 사법연수원 기수다. 황·김 두 사람이 대법관 후보자를 논의한 걸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이들 법조인 누구도 후보자가 되진 못했다. ‘헛심’이었던 셈이다. 그래도 법무장관과 민정수석이 어떻게 인사 협의를 하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이다. 실제 민정수석 출신 인사는 “통상 수석과 장관이 중요 보직에 대해 몇 차례 논의하고 법무부가 인사안을 만들어서 민정수석실로 보내면 민정수석이 대통령에게 보고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비해 일요일이던 지난 7일 오후 법무부의 인사 발표는 얼마나 돌출적이었나. 문재인 대통령이 남달리 신임한다는 신현수 민정수석이 물러나겠다고 할 정도였다. 취임 한 달여 만의 사의가 정치적으로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아는데도 신 수석이 결행한 것이고, 청와대가 충격을 줄이기 위해 반려하는 모양새를 취했는데도 신 수석이 완강하니 그 과정이 공개됐을 터이다.

청와대가 “결과적으론 법무부 장관 안이 조율이 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보고가 되고 발표가 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의문이 꼬리를 문다. 우선 보고와 결재 시점이다. 법무부는 당일 낮 12시쯤 기자들에게 ‘오후 1시30분 인사 보도자료 배포된다’고 알렸다. 신 수석이 뒤늦게 이를 알고 발표를 늦추려고 했지만 법무부가 예정대로 했다. 대통령의 결재가 난 사안이라면 신 수석이 늦추려 했겠는가. 신 수석이 이에 대한 감찰과 조사를 요구했다는 게 사실이라면, 문 대통령도 ‘패싱’당했다고 봤기 때문 아닌가. 청와대는 그런데도 신 수석의 감찰 요구에 대해선 가타부타 언급 없이 ‘대통령 재가 없이 법무부 인사 발표가 났다’는 보도에 대해서만 부인했다.

‘보고가 됐다’는데 누가 했나. 이광철 민정비서관은 어느 정도 개입돼 있는가. 청와대 사정을 잘 아는 인사는 “전임 민정수석 때도 이 비서관이 검찰 인사를 좌지우지했다고 들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의 빈약한 설명대로라도 혼란을 자초한 건 박범계 법무장관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박 장관에게 어떤 식으로든 경고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문 대통령이 사전에 용인했나, 아니면 묵과하기로 한 건가.

문 대통령은 신 수석에게 “검찰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거듭 약속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론 말뿐이게 됐다. 얼마 전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메신저를 보내 “흔들리지 말고 임기를 지키면서 소임을 다하라”고 했다지만 대통령 주변에선 윤 총장 밀어내기 광풍이 불었던 것과 유사하다. 어느 쪽이 진짜 문 대통령인가.

6년 전보다 더한 ‘만화경’이다. 당시 야당 의원은 “국가 기강이 쑥대밭이 됐다”며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다. 최장수 민정수석 출신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던 문재인 대통령이다. 이번엔 무어라 할 텐가. 또 침묵할 것인가.

고정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