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리셋 코리아

세계적 과학자가 연구에 전념하지 못하는 한국

중앙일보

입력 2021.02.22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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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명자 서울국제포럼 회장·한국과총 명예회장

김명자 서울국제포럼 회장·한국과총 명예회장

2020년도 노벨화학상은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교수와 미국 UC버클리의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에게 돌아갔다. 두 여성 과학자는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 연구로 기초과학과 의학 분야의 새 장을 열었다. 2010년대 중반부터 이 분야가 노벨상 0순위라는 소문이 돌면서, 그 후보군에는 두 명의 수상자 이외에 장펑 MIT 교수, 조지 처치 하버드대 교수와 함께 김진수 박사가 오르내렸다.

김진수 박사 1심 무죄 판결 계기로
기초연구 상용화 제도 재정비해야

크리스퍼를 이용한 치료제가 개발되는 날에는 다시 노벨생리의학상이 나올 수 있다는 기술인만큼, 특허 경쟁도 치열했다. 2012년 5월 미국 특허청에 이 기술의 특허를 출원한 다우드나 교수팀의 버클리대와 2012년 12월 특허를 출원한 장펑 교수팀의 브로드연구소(MIT·하버드대 공동 설립) 사이에서 ‘8년 특허 대전’이 벌어졌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전혀 다른 양상의 ‘전쟁’이 치러지고 있었다. 그 발단은 서울대 교수이던 김진수 박사가 2014년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으로 옮기면서 비롯됐다. 2016년 IBS 내부 감사에서 제기된 연구비 부당 집행 혐의에다 김 박사가 설립한 벤처기업 툴젠이 특허 기술 탈취 혐의로 경찰과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됐다. 2018년 ‘세계적 과학자 김진수, 수천억대 특허 빼돌렸다’는 기사까지 나오면서 검찰이 2020년 1월 업무상 배임과 사기 혐의로 기소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해 법원은 지난 4일 1심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김 박사는 2016년 서울대 교수직도 내려놓고 2020년 연구단장에서도 해임돼 IBS 수석연구위원 신분으로 검찰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었다. 그 풍파 속에서 툴젠이 특허 출원한 지 8년만인 2020년 미국 특허청으로부터 툴젠의 특허 등록이 가능하다는 희소식이 날아왔다. 브로드연구소-버클리-툴젠의 3자 사이에서 미국 특허권 소유를 놓고 선 발명자를 가리는 저촉 심사를 개시한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김 박사를 연구단장으로 조기 복귀시켰다. 그러나 5년 사이에 유전체교정연구단의 연구 인력과 연구비는 절반 이하로 축소됐고, 연평균 10편 이상 나오던 논문은 2020년 3편으로 급감했다. 그럼에도 그는 2018년부터 3년 연속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의 ‘논문 피인용 횟수 상위 1% 연구자’로 선정됐다.

노벨상급의 세계적 석학들과 겨루어야 할 이 땅의 과학자의 발목을 잡은 건 무엇일까?  한마디로 표현하면 ‘코리아 패러독스’다. GDP 대비 연구개발 예산은 많이 증가했으나 ‘장롱 특허’를 양산하는 현실을 타개하지 못하는 한 좋은 일자리와 경제 성장에의 기여는 기대 난망이다. 기초연구 결과가 저명 학술지 게재에 그치지 않고 특허 출원, 기술 이전, 벤처기업 설립으로 이어져 상용화와 시장 진입의 선순환이 이루어질 때 이 패러독스는 극복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은 혁신 생태계의 구조적이고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첨단연구 상용화 과정에서 특허 출원과 기술 이전, 창업 관련 법적·제도적 해석의 차이와 연구개발 행정 지원 시스템의 미흡도 한몫했다. 더 늦기 전에 관련법과 규정을 면밀히 검토해, 대학교수의 직무 발명의 보상 기준, 국가연구개발 사업 성과물에 대한 귀속, 특허 유효성과 권리 범위, 특허의 독점 배타권, 생명윤리법상 연구 범위 제한 등의 이슈에 대해 시대적 요구에 맞도록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기초연구 상용화가 활성화될 때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서 얻어진 연구 성과로부터 경제적·사회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고, 제2, 제3의 김진수 사태를 막을 수 있다.

김명자 서울국제포럼 회장·한국과총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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