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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주안의 시선

노인은 ‘고려장’ 아이는 ‘나홀로 집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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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주안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주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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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노인은 세 가지 망상에 시달린다. 전문가인 정지향 이대 서울병원 신경과 교수의 설명이다. 누군가 내 물건을 훔친다는 착각, 배우자가 부정(不貞)을 저지른다는 오해, 그리고 가족이 자신을 팽개쳤다는 ‘버림 망상’이다. 지금 우리나라 요양병원 1657곳에 있는 치매 환자들은 배우자와 자식에게 고려장(高麗葬)을 당했다는 망상에 고통받는다.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요양병원 환자는 가족조차 면회를 금지한 결과다. 정 교수는 “특히 치매 초기나 중기 환자는 가족과 소통이 끊어지면 인지 장애와 우울증이 심해진다”고 말한다.

1년 넘게 가족 못 본 치매 노인 #전문가 “가족 버림 망상 심각해” #당국, 압박만 말고 보호지침 줘야

요양병원의 감염 차단은 중요하다. 그렇다고 병원의 모든 사람을 가두진 않는다. 의사와 간호사는 출퇴근하며 일상생활을 한다. 조리사나 행정직원도 가족과 산다. 요양병원 종사자라고 인간의 기본적인 삶까지 파괴해선 안된다는 상식을 존중한다. 유독 환자들만 1년 넘게 극한 지점에 결박했다. 얼마 전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우리 아버지, 집에서 10분이면 가는 병원에 계셨는데 몇 달간 얼굴도 못 뵈다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면회 금지로 손 한번 못 잡아드리고 보내드렸습니다’라는 글이 실상을 보여준다.

암 투병 남편을 간병하려 요양병원에 들어온 D씨가 설을 앞두고 병원 주차장으로 온 아들의 가족과 병원 창너머로 마주보며 인사한다. D씨가 아들 가족을 휴대전화로 찍었다.[사진 D씨]

암 투병 남편을 간병하려 요양병원에 들어온 D씨가 설을 앞두고 병원 주차장으로 온 아들의 가족과 병원 창너머로 마주보며 인사한다. D씨가 아들 가족을 휴대전화로 찍었다.[사진 D씨]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너싱홈 환자들이 외로움으로 죽어간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9개월 간 가족을 못 만난 환자의 어휘가 약 20단어로 줄어든 사례, 만성 고독이 조기 사망률을 20%가량 증가시킨다는 연구 결과, 환자의 고립이 코로나19 위험보다 심각하다는 전문가 견해를 소개했다. 면회 제한을 완화한 미네소타주와 뉴욕주 상원의원의 노력도 전했다. K 방역을 자부하는 우리에 비해 훨씬 심각한 국가들도 요양시설 환자의 건강을 염려해 가족 면회 방안을 강구한다.

한 요양병원 원장은 “정부가 이곳 환자의 실상에 아무 관심이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며 “매우 비인간적”이라고 했다. 당국의 획일적 조치는 확진자 숫자에만 집착한 귀결이다.

정부가 사람을 숫자로만 생각할 때 벌어지는 현상을 2000년대 초반 목격했다. 당시 경찰이 교통사고 사망자 줄이기에 나서면서 치열한 실적 경쟁이 붙었다. 교통사고 사망자 통계를 낼 때 ‘사고 후 72시간 이내 사망’ ‘사고 후 30일 이내 사망’ 같은 기준이 있다. 이 기준 시간을 넘겨 사망자 수를 줄이려고 갖가지 꼼수를 동원했다. 어떻게든 며칠만 연명해 달라고 병원에 읍소하고 가까운 응급실이 있는데도 오래 살릴 수 있는 대학병원으로 보내자고 구급차에 부탁했다는 촌극이 회자했다. 한 전직 경찰서장은 “교통 간부가 ‘다행스럽게도 사고자가 사흘을 넘겨 사망해 통계에 안 잡혔다’고 보고하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고 회상했다.

입원한 아버지를 간호하는 엄마 A씨가 요양병원에서 못 나오면서 초등생 형제는 생활이 엉망이 됐다. [사진 A씨]

입원한 아버지를 간호하는 엄마 A씨가 요양병원에서 못 나오면서 초등생 형제는 생활이 엉망이 됐다. [사진 A씨]

지금 요양병원에서 벌어지는 비극은 환자야 어찌 되든 코로나19 통계만 관리하면 된다는 사고의 소산이다. 노인만의 아픔이 아니다. 얼마 전 부모가 요양병원에 갇히면서 초등학생 아이 둘만 집에 남겨진 사연이 본지에 보도됐다. 기사를 본 복지 담당자들이 나섰다. 아침에 등교를 챙겨주고 저녁에 최소한의 보살핌을 부탁한다는 엄마의 소원이 이뤄지는 듯했다. 그러나 무산됐다. 돌봄 봉사자가 저녁에 아이를 돕다가 퇴근할 때 엄마가 집에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지원센터 관계자는 “만약 아이들만 두고 나왔다가 큰일이라도 생기면 책임이 발생하기 때문에 가기 어렵다”고 했다. 이렇게 아이들은 계속 방치된다. 엄마는 “일주일에 두번씩 코로나19 검사를 받는데, 저녁에 집에 가서 아이들을 지켜주고 아침에 병원으로 와 남편을 간호하는 걸 왜 막느냐”고 했다.

정부 관계자는 “가족 간병인의 외출을 금지한 적 없다”고 말했다. 요양병원들은 “물정 모르는 얘기”라며 답답해한다. 보건복지부·질병관리청이 공문에 ‘요양병원 치매 노인은 고려장을 지내라’고 적진 않았다. ‘병문안 등 금지’ 지침을 내리고 이를 위반해 감염이 발생하면 ‘추가 방역조치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이라고 경고했을 뿐이다. 현장에선 이를 ‘혈육도 차단하라’는 지시로 해석한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고려장’인 셈이다.

백신이 가족과의 끈을 이어주리란 희망도 요원하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효과 이슈로 65세 이상의 요양병원 환자 접종이 뒤로 밀렸다. 간병하는 가족은 우선 접종 대상도 아니다. 접종을 거부한 대상자도 있다. 숫자만 세는 당국의 마인드가 그대로인 한 요양병원 환자의 고립은 끝날 조짐이 안 보인다. 정부가 치매 환자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가족이 당신을 버린 게 아니라 우리가 차단했다”고 납득시킬 요량이 아니라면, 미국·독일·일본처럼 환자의 병세를 살피고 ‘가족 버림의 망상’을 치유해야 한다.

강주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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