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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중심 유튜브에 ‘소리 열풍’이 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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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앰비언스ASMR

앰비언스ASMR

창문 너머로 아련히 들려오는 새소리가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삭삭 책장 넘어가는 소리는 저 높은 천정에 부딪혀 기분 좋은 울림으로 퍼지고, 종이 위엔 사각사각 연필이 바쁘게 지나간다. 이곳은 학생들이 아침 자습에 열중하고 있는 영국의 마법학교 호그와트 그레이트홀이다. 책상 사이 어디엔가 해리포터도 앉아 있을지 모른다.

편해지는 소리 ‘앰비언스ASMR’ #소설·영화 공간 재현한 소리부터 #‘파리 재즈바’‘비오는 날 카페’도 #소리로 위안 느끼려는 사람 늘어

영화 속 한 장면 같지만 이 모든 건 소리로 전달된다. 작은 크기로 섬세하게 이어지는 소리를 통해 사람들의 머릿속에 조용하지만 강력한 가상공간이 펼쳐지고, 거기에 몰입하는 동안 현실과 다름없이 ‘내가 지금 있는’ 공간이 된다.

익숙한 소리 ‘앰비언스 ASMR’ 인기

동영상 위주였던 소셜미디어(SNS) 유튜브에 ‘소리 열풍’이 불고 있다. 멜로디와 가사가 아름다운 음악도 아니고 압도적인 특수효과음도 아니다. 그저 잔잔하고 반복적인 어찌 보면 일상적이고 익숙한 소리다. 빗소리, 물방울 소리, 새소리, 발자국 소리,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 일명 ‘앰비언스(Ambience·분위기) ASMR’ 콘텐트다.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은 ‘자율 감각 쾌락 반응’이란 뜻으로 좋은 소리를 들으면 심신이 편안해지는 현상이다. ASMR 콘텐트는 주로 음식을 씹고 삼키는 ‘먹방(먹는 방송)’이 많았지만, 유튜브 이용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점점 세분화하는 추세다.

앰비언스 ASMR은 시간과 공간, 현실과 가상의 벽을 넘어 나만의 체험을 극대화시킨다. 실제 인기 콘텐트를 보면 해리포터 시리즈와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소설·영화·애니메이션 속 공간을 재현한 소리를 비롯해, ‘파리의 재즈바’ ‘비오는 날 카페’ ‘중세시대 귀족가문의 저택’ ‘왕실도서관’ ‘깊은 밤 마차여행’ 등 상상력을 자극한다. 듣는 순간 원하는 곳으로 순간 이동하는 셈이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소리효과

특히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소리를 통해 치유와 위안을 느끼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앰비언스 ASMR 콘텐트 댓글에는 “코로나로 인해 가정보육으로 지친 아이 엄마예요. 새벽 시간에 뜨개질하면서 듣고 있네요” “불면증이 있는데 틀어놓고 자면 그나마 괜찮네요” “너무 무기력하고 힘들었는데 이거 들으면서 공부하니까 다 나은 것 같아요” 등의 글이 종종 눈에 띈다.

이런 현상은 세계적으로 비슷하다. 뉴욕타임스는 앰비언스 ASMR 콘텐트가 스스로 건강을 돌보는 ‘자기 치료(Self-medication)’ 미디어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단 소리를 통해 그 세계로 들어서면 갑자기 튀어나오는 소리나 따라가야 할 줄거리가 없어, 불필요한 생각을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비대면 생활속 연결과 소통 역할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 등 비대면 생활 속에 ‘연결과 소통’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실제론 각자 다른 현실 공간에 있지만, 소리를 통해 같은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함께 있다’는 느낌을 댓글로 공유하는 것이다. 유튜브 관계자는 “아름다운 자연, 가보고 싶던 여행지 등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소리를 함께 즐기며 소통하는 이용자들이 눈에 띈다”고 말했다. 이어 “다양한 소리를 섬세하게 섞어 표현한 ASMR 콘텐트는 유튜브에서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고 있다”며 “나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은 2030 세대를 중심으로 점점 더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어떤 유튜브 채널이 있나

낮잠 NZ Ambience

낮잠 NZ Ambience

낮잠 NZ Ambience

바람소리나 템플스테이 사찰 소리, 호수를 가로지르는 나룻배 소리 등 편안한 소리가 주요 콘텐트다. 마치 자연 속에 파묻혀 있는 듯한 소리를 다뤄 편안한 분위기를 제공한다.

Tigger ASMR

Tigger ASMR

Tigger ASMR

영화·드라마·애니메이션·게임 등을 주제로 삼는다. 해리포터 호그와트 ASMR은 실시간 재생 콘텐트로도 제공되는데, 시청자가 출석 체크를 하거나 콘텐트에 몰입해 재치있는 댓글을 남기는 장이 되기도 한다.

asmr soupe

asmr soupe

asmr soupe

따뜻하고 부드러운 ‘수프’같은 콘텐트를 만드는 채널이다. 파리의 레스토랑의 아침 분위기, 테마파크, 공부하기 좋은 카페, 시골 툇마루 소리 등 일상 속 편안한 분위기의 콘텐트를 선보인다.

엔틱 ASMR antique

엔틱 ASMR antique

엔틱 ASMR antique

중세시대, 조선시대부터 재즈가 유행했던 1930년대 등 다양한 시대를 아우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유럽을 여행하는 듯한 호캉스, 윤동주 시인의 작은 책상이나 어린왕자 테마의 ASMR 등 신선한 소재가 많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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