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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 경고음 울렸었는데…'헤엄귀순' 눈뜨고 놓친게 맞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6일 군의 CCTV 카메라가 강원도 동해 고성 해안을 통해 귀순한 20대 탈북 남성을 발견해 경고음을 울렸는데도 경계병이 아무런 대응을 안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귀순을 통해 군 당국의 경계태세에 총체적 부실이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육군 초등조치부대원들이 해안에서 원인미상의 물체 발견에 따른 수색·경계 훈련을 하고 있다. [육군]

육군 초등조치부대원들이 해안에서 원인미상의 물체 발견에 따른 수색·경계 훈련을 하고 있다. [육군]

21일 군 당국에 따르면 16일 오전 4시 20분쯤 육군 22사단이 민간인통제선(민통선) 검문소의 CCTV를 통해 탈북자를 인식하기 전까지 모두 4차례 그를 포착했다. 최초 포착은 오전 1시를 지나서였다. 당시 탈북자는 헤엄으로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고성 바닷가로 올라온 뒤였다.

군의 과학화 경계시스템의 CCTV 카메라가 탈북자를 발견했고, 상황실 모니터에 팝업창이 뜨고 알람이 울렸다. 탈북자의 모습은 5초 가량 모니터에 나타났다.

CCTV에 사람으로 보이는 물체가 나타나면 상황실은 바로 상부에 보고하고 5분 대기조가 출동해야 한다. 그러나 당시 군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상황실에서 녹 화면을 되돌려보지도 않았다.

경계병이 탈북자를 눈 뜨고도 놓쳤기 때문이라는 게 군 당국의 판단이다. 경계병은 당시 깨어있는 상태였으며, 정상적으로 근무한 것으로 조사됐다. 군 관계자는 “경계병이 오경보로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며 “바람이 세게 불거나, 새를 포착해도 시스템이 경보를 발령한다”고 말했다.

탈북자는 이후 3시간 동안 7번 도로를 따라 상륙 지점에서 5㎞ 이상 떨어 전 민통선 검문소까지 아무런 제지 없이 걸어갈 수 있었다.

군 당국은 탈북자가 들어온 해안 철책 밑의 배수로를 조사한 결과 차단막이 바닷물에 부식된 상태였다. 차단막이 설치된 지 10년이 넘었다고 한다. 탈북자가 차단막을 손쉽게 망가뜨리고 빠져나갈 수 있었던 이유다.

군 당국은 지난해 7월 인천 강화도에서 20대 탈북자가 배수로로 월북한 사건 이후 모든 해안과 강안 철책의 배수로를 점검해 보강하겠다고 밝혔다. 군 관계자는 “해안 철책 밑 배수로가 지뢰지대와 가깝기 때문에 보강은커녕 점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용현 전 합참 작전본부장은 “지난해부터 크고 작은 경계사건이 잇따라 일어날 때마다 매번 고치겠다고 해놓고도 나아진 게 전혀 없다. 그렇다면 경계태세에 근본적 문제가 있다는 뜻”이라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경계태세를 손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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