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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참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거리로 나선 피해자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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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전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등이 모인 '가습기살균제기업책임배·보상추진회' 관계자들이 서울 마포구 이마트 신촌점 앞에서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들의 사과와 합당한 배·보상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가람 기자

20일 오전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등이 모인 '가습기살균제기업책임배·보상추진회' 관계자들이 서울 마포구 이마트 신촌점 앞에서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들의 사과와 합당한 배·보상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가람 기자

“시민 여러분들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제발 잊지 말아주십시오.”

20일 오전 11시40분 서울 마포구 신촌역과 홍대입구역 사이를 가로지르는 신촌로 일대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한 회사에 항의하기 위해 진행한 도보 행진에서다. 이들은 거리로 나서 시민들을 향해 “가습기살균제는 해결된 참사가 아닌 현재 진행 중인 참사”라며 “가해 기업들에 죄가 없다고 한 사법부의 판단을 다시 바꿀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법이 우리 지켜주지 못해 거리로”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등이 모인 '가습기살균제기업책임배·보상추진회' 관계자들이 20일 서울 마포구 신촌로 일대에서 도보 행진을 하고 있다. 이가람 기자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등이 모인 '가습기살균제기업책임배·보상추진회' 관계자들이 20일 서울 마포구 신촌로 일대에서 도보 행진을 하고 있다. 이가람 기자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들이 모인 ‘가습기살균제기업책임배·보상추진회’는 이날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이마트 신촌점과 애경 본사 앞에서 연이어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기업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진행을 맡은 장동엽 참여연대 선임간사는 “지난달 12일 법원이 SK·애경·이마트 등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들에 대해 황당하게도 무죄판결을 내렸다”며 “법이 우리를 지켜주지 못했기 때문에 소비자의 권리를 스스로 보여주고자 다시 한번 거리에 서게 됐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피해자와 가족,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의 유족 등 8명이 참석해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들을 향해 사과와 합당한 배상을 하라고 촉구했다. 피해자 유족인 김태종(66)씨는 “이마트의 PB상품 ‘이플러스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아내는 지난해 8월 중증 폐 질환으로 천국에 갔다”며 “피해자로 접수된 인원이 7000여명이고 환경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망자만 998명임에도 가해기업들은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와 배상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오전 11시30분 이마트 신촌점 앞에서 첫 번째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이곳에서 출발해 30분간 약 1km를 걸어 홍대입구역 인근 애경타워로 행진했다.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신촌로 일대를 걸으며 “SK는 유죄다” “이마트는 살인기업이다” “애경은 책임져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방역 수칙 준수와 만약의 사고를 대비하기 위해 경찰 5~6명이 기자회견과 도보 행진 과정을 지켜봤다.

“‘인체 무해’ 문구 믿지 말아달라”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등이 모인 '가습기살균제기업책임배·보상추진회' 관계자들이 20일 서울 마포구 애경타워 앞에서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들의 사과와 합당한 배·보상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가람 기자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등이 모인 '가습기살균제기업책임배·보상추진회' 관계자들이 20일 서울 마포구 애경타워 앞에서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들의 사과와 합당한 배·보상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가람 기자

애경타워 앞에서 진행된 두 번째 기자회견에선 중증 천식으로 휴대용산소발생기를 착용한 조순미(52)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조씨는 “피해자 대부분이 호흡기에 문제가 있어 도보 행진에 참여하고 싶어도 오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며 “여전히 많은 국민들이 가습기살균제가 얼마나 심각하고 참담한 참사인지 모르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대기업이 만든 제품에 쓰인 ‘인체에 무해하다’라는 문구가 언젠간 나와 가족들의 목숨을 가져갈 수도 있다는 교훈을 잊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배·보상추진위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지난 10년 동안 요구해온 진상규명과 피해 구제, 재발방지대책 마련 등 아직도 제대로 이뤄진 게 없다”며 “참사의 진상규명과 함께 제조·판매사들과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처벌을 촉구하는 활동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피해자들은 앞으로 주말마다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 앞에서 이 같은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할 예정이다.

옥시는 유죄, SK케미컬은 무죄? 판결 논란 

지난 2018년 대법원은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관련해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옥시레킷벤키저(옥시) 등의 제조사와 홈플러스·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관계자들에 대해 유죄를 확정했다. 그러나 지난달 12일 같은 혐의를 받아온 SK케미칼·이마트·애경산업 관계자들은 1심에서 무죄가 선고돼 논란이 일었다.

당시 재판부는 이미 유해성이 확인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PHMG)을 가습기살균제 원료로 사용한 옥시와 달리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이 사용한 원료 성분은 아직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아 실제 폐 질환·천식을 유발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추가 연구결과가 나오면 역사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모르겠지만, 현재까지 나온 증거를 바탕으로 형사사법의 근본적 원칙 범위 내에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내 몸에서 일어난 일이 다 증거”라며 거세게 반발했고 검찰은 즉각 항소했다.

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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