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에이징

사법부 수장까지…거짓말 만연 병폐 어떻게 해결할까

중앙선데이

입력 2021.02.20 00:21

업데이트 2021.02.20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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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4호 28면

러브에이징

김명수 대법원장의 거짓말 파문이 대검찰청 고발장 접수로 이어졌다. 사실 사람들은 일상에서 크고 작은 거짓말을 흔히 접한다. 하지만 거짓 해명 당사자가 정의의 상징인 사법부의 수장인 데다 정치적 상황과 얽힌 탄핵 판사 관련 사안이라 사회적 파장이 크다.

인간은 유아기부터 거짓말 시작
초등 고학년 땐 비난 고려해 억제
청소년기 감정 숨기는 기술 습득

정치인 표심 얻으려 허언 일삼아
정의 지켜줄 독립집단·제도 필요

거짓말의 사전적 의미는 의도적으로 상대방을 속이는 꾸민 말이다. 순수한 실수, 잘못된 정보를 근거로 한 말, 참과 거짓을 구분 못 하는 정신질환자의 허언 등은 거짓말이 아니다. 즉 거짓말이 성립되려면 ‘고의성’과 ‘자의식’이 있어야 한다.

거짓말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동물적 본능에서 출발하며 고등 동물일수록 권력·재물·성욕·체면 등 다양한 목적을 위해 정교하게 상대를 속인다. 네덜란드 동물행동학자 프란스 드 발은 침팬지 사회도 전반적으로 거짓 행위가 스며있다고 밝힌 바 있다.

사기·무고·위증 등 범죄도 확 늘어

인간의 거짓말은 말을 시작하는 유아기부터 나타난다. 주로 혼나지 않으려고, 또 상상 속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거짓말을 한다. 따라서 이때는 체벌보다 거짓말이 나쁜 일임을 반복 설명해야 한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초등학교 저학년은 거짓말을 해도 표정까지 감추긴 어렵다. 학년이 올라가면 상대방 반응을 살피게 되며, 열 살 무렵엔 고의적 속임수와 사회적 관습(선의의 거짓말)을 구별한다. 고학년은 그럴싸한 거짓말도 할 수는 있지만 비난과 불이익을 고려해 억제력을 키운다. 저학년보다 고학년의 거짓말이 적은 이유다. 청소년 시기는 부모의 위선과 거짓을 직시하고, 성욕처럼 비밀로 하고픈 고민도 생겨 감정을 숨기는 기술적 거짓말을 습득한다. 성인은 직장에서 사실과 다르게 말해야 하는 상황을 접하면서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세련된 거짓말을 익힌다.

이처럼 거짓말은 인간의 사회화 과정과 동반된다. 하지만 공동체가 거짓말에 대해 보상이나 처벌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거짓말 문화는 나라마다 차이가 크다. 예컨대 거짓말을 신의 계명을 어기는 일로 여기는 유대인들은 거짓말쟁이를 몹시 싫어한다. 자녀가 거짓말을 하면 “거짓말쟁이하고는 말을 안 하겠다”며 온 가족이 한동안 그 아이의 모든 말을 무시한다. 이 과정을 경험한 아이는 거짓말로 얻는 이익보다 손해가 훨씬 크다는 점을 인지한다. 또 이웃 역시 비슷한 자녀 교육을 하다 보니 거짓말을 매우 죄악으로 여기는 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물론 유대인들도 『탈무드』를 통해 생명이 위험하거나 평화를 지켜야 할 순간 등 거짓말이 허용되는 상황은 적시한다. 강도가 도망자 위치를 물을 때 거짓말을 할 수 있고, 결혼한 친구의 배우자나 이미 산 물건은 마음에 없는 덕담을 해도 된다는 식이다.

악의적인 거짓말로 권력·재산·사회적 기회 등을 얻는 행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적 비난과 단죄의 대상이다. 물론 욕망을 좇아 교묘한 거짓말로 남을 속이는 사람은 어느 사회건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가 정치인들인데 프랑스의 영웅적 대통령 샤를 드골이 “정치가들은 자신들이 한 말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들의 말을 믿을 때 놀란다”고 묘사했을 정도다.

사실 정치인은 권력이 없을 땐 실업이나 불안정한 생활을 하지만 거짓말을 동원해서라도 표심을 얻어 정권만 잡으면 단숨에 높은 지위를 차지하며 막대한 예산도 집행한다. 물론 세금이라 방만한 운영을 해도 법적 문제가 없으면 책임질 일도 없다. 사기업에서 경영 실패가 개인 파산으로 이어지는 것과 사뭇 대조적이다. 게다가 “인간의 가장 흔한 거짓말은 자신에게 하는 거짓말”이라는 니체의 말처럼 정치인의 거짓 선동에 위로를 받은 유권자는 인간의 자기기만 속성을 십분 발휘해 지속해서 그들을 지지한다. 정치인의 거짓말이 시대를 막론하고 현재진행형인 이유다.

따라서 진실이 통하는 선진 사회가 정착하려면 정치인과 분리돼 정의를 지켜줄 독립된 집단이나 제도가 있어야 한다. 흔히 민주공화국에서는 삼권 분립 원칙을 해결책으로 꼽지만 현실은 다르다. ‘선출된 권력’인 국회의원들은 의회의 헌법적 역할보다 본인에게 부귀영화를 주는 정당의 이익을 대변하기 때문에 행정부 감시 기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유대인들, 거짓말쟁이 가장 싫어해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법학과 팀 우 교수는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지난 미국 대선에서 저소득 백인들의 두터운 지지를 받는 거짓말쟁이 대통령 트럼프의 권력 남용을 막고 공화국을 지켜준 힘은 헌법에 명시되지 않은 ‘불문헌법’을 실천한 세 집단, 즉 연방 검사, 국내 정치에 중립성을 유지한 군대 지도자, 각주의 선거관리 담당 공무원이라고 밝혔다. 공화당 의원들이 선거 결과조차 불복하는 트럼프의 행동을 방치하고 그의 뜻에 맞는 거수기 역할을 한 것과 대조적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거짓말 문화가 만연하다. 대검찰청이 발표한 국내 거짓말 범죄(사기·무고·위증)도 2019년 47만6806건으로 전년 대비 12.9%, 2년 전보다 24.6% 증가했다. 대법원장의 ‘부주의한 답변’은 이런 사회문화적 단면이 반영된 셈이다. 과연 대한민국호가 거짓말공화국으로 서서히 침몰할지, 아니면 민주공화국을 지켜줄 수호천사단이 등장할지, 시민들의 마음에는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고 있다.

황세희 국립중앙의료원 건강증진예방센터장
서울대 의대 졸업 후 서울대병원에서 인턴·레지던트·전임의 과정을 수료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미국 MIT에서 연수했다. 1994년부터 16년간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면서 ‘황세희 박사에게 물어보세요’ ‘황세희의 남자 읽기’ 등 칼럼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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