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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홍시는 먼저 떠나며 미안해 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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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4호 20면

반려동물과 이별한 사람을 위한 책

반려동물과 이별한 사람을 위한 책

반려동물과
이별한 사람을 위한 책
이학범 지음
김건종 감수
포르체

홍시 잃고 유기견 입양 작가 황현진 #반려견 죽음은 가족 잃은 슬픔 #충분히 애도해야 상실 감당

근 20여 년 전, 우리 가족이 몰티즈 ‘홍시’를 키우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내 주변에는 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반려동물이란 말보다 애완동물이란 말이 즐겨 사용되던 시절이었다. 명절마다 찾아오는 친척들은 제사음식을 만드는 데 개가 돌아다니는 걸 흉흉하게 여겼으며, 때때로 들르는 손님들은 반가워 꼬리를 흔드는 홍시를 보며 대개는 어쩔 줄 몰라 했다.

홍시가 16년을 살고 죽었을 때, 내 지인들 중 몇몇은 “잘 됐다”라는 말로 나를 위로했다. 방광암 진단을 받은 후 처음 1년 6개월은 그럭저럭 잘 지냈다. 진단에 비해 아픈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죽 그러했던 것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산책을 가자고 졸랐고 간식을 달라고 떼를 썼다.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 건 2017년 4월이었다. 홍시는 의식을 잃었고 다시 깨어났을 때는 스스로 걷지 못했다. 곡기를 끊었고 옷장 속이나 침대 아래 같은 어두운 곳으로 기어들어갔다. 나는 외출을 줄였다.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신장 때문에 하루에 세 번씩 홍시의 몸에 직접 수액을 주사했다. 병원비로 나가는 돈도 만만치 않았다. 안락사를 권유받았지만 선뜻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솔직히 그에 동의하는 일은 내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본 지인들이었기에 홍시의 죽음을 두고 “잘 됐다”라고 말하는 마음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짐승은 짐승답게 키워야 한다’는 말을 이미 여러 번 들은 뒤였다. 많은 사람들이 동물에게도 희로애락을 느끼는 마음이 있다는 걸 모르는 듯했다. 홍시는 우리 가족의 곁을 먼저 떠나야 해서 슬퍼했고, 많이 미안해했다. 홍시의 그 마음이 과연 짐승다운 마음이었을까?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1500만 명을 헤아린다. 더이상 애완동물이 아니라 반려동물이다. [중앙포토]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1500만 명을 헤아린다. 더이상 애완동물이 아니라 반려동물이다. [중앙포토]

홍시를 잃고 내가 겪는 슬픔과 분노, 죄책감은 점점 더 깊어지고 커져만 갔다. 우리 가족을 사랑하는 데 최선을 다했던 홍시의 삶이 모두에게 존중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가장 괴로웠다. 몇몇은 내 선택을 나무라기도 했다. 안락사를 시켰더라면 홍시가 그토록 오랫동안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됐을 거라는 말은 두고두고 나를 아프게 했다. 나는 나날이 말라가는 홍시의 몸에 대략 360번의 바늘을 찔렀다.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미어져서 밤마다 울었다. 울다 지쳐 잠이 들면 꿈인지 환영인지 홍시가 옆에 누웠다. 살았을 때 그러했던 것처럼 콧등으로 이불을 들쳐내고 내 곁에 눕는 홍시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펫로스 증후군이었다.

『반려동물과 이별한 사람을 위한 책』의 저자가 말하기를, 반려동물의 죽음은 가족을 잃는 슬픔과 맞먹는다. 그런데도 반려동물의 죽음으로 인해서 내가 겪는 슬픔과 절망은 충분한 이해와 공감을 받기가 어렵다. 오히려 나처럼 슬픔을 키우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즈음 나는 유기동물의 수가 나날이 급증하고 있다는 뉴스에 무척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홍시와 함께한 세월 동안 내가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모든 생명을 사랑하고 존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멸종 위기에 처해 있거나 가혹한 환경 속에서 관광지의 호객을 위해 이용되거나 동물원의 좁은 우리에 갇혀 이상행동을 하는 동물들의 삶을 연민하고 걱정하는 마음은 홍시의 죽음이 아니라 홍시의 삶이 내게 일으킨 변화였다. 그리고 그 마음은 사람에 대한 사랑과 믿음으로 서서히 번져갔다.

여전히 동물을 유기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속상한 일이지만, 유기된 동물들을 돌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다행한 일이다. 유기동물보호소에서 만난 두릅이와 나는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다. 두릅이를 보고 있노라면 종종 홍시가 떠오른다. 한동안 나는 홍시의 아팠던 모습만 기억했는데, 덕분에 까맣게 잊고 있었던 홍시의 어린 시절을 되찾았다.

이제 내 주위엔 동물들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우리는 반려동물을 위한 새로운 정보를 공유하고, 때때로 서로의 반려동물을 소개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길을 걷다가 만나는 개와 고양이들에게 다정한 인사를 건네고, 아프다는 소식을 들으면 더 나은 치유책은 없는지 함께 고민한다. 왜냐면 우리는 호두, 여름, 나무, 달래, 밤이가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고 우리 모두의 친구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가끔 홍시를 불러본다. 어쩌면 나는 여전히 홍시를 잃은 상실을 통과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충분한 애도를 통해서 상실을 감당할 힘을 키우라”는 저자의 말은 우리가 겪는 모든 만남과 헤어짐에도 반드시 필요한 조언이다. 아무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하나의 존재를 모두가 사랑하는 세상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으니 저자가 당부한 대로 슬픔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날도 머지않으리라, 기대해본다.

황현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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