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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진보, 분배 외면이 문제였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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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4호 21면

낡은 것은 가고 새것은 아직 오지 않은

낡은 것은 가고 새것은 아직 오지 않은

낡은 것은 가고
새것은 아직 오지 않은
낸시 프레이저 지음
김성준 옮김
책세상

도널드 트럼프는 가고 조 바이든이 왔다. 미국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세상이 달라질까? 미국 정치철학자 낸시 프레이저가 지은 『낡은 것은 가고 새것은 아직 오지 않은』은 21세기 전후 미국 정치의 사조를 분석하고 ‘위기 탈출’의 방향을 모색했다.

트럼프가 아직 현직 대통령으로 있을 때 미국판이 출간돼 현재와의 정치적 배경이 약간 다르긴 하다. 하지만 트럼프와 트럼프주의의 등장 과정을 짚어 보면서 포스트 트럼프 시대의 미국 정치를 전망했다는 점에서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이후인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책 내용은 ‘신자유주의 헤게모니의 위기 그리고 새로운 전망’이라는 부제가 잘 말해 준다. 프레이저는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기 이전 미국 정치를 지배하던 헤게모니 블록은 ‘진보적 신자유주의’였다고 규정한다.

서로 잘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진보와 신자유주의 두 세력의 ‘위험한 동맹’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여기서 진보는 차별철폐와 사회 다양성 추구 등 매력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는 새로운 사회운동의 주류인 자유주의적 분파(페미니즘, 반인종주의, 다문화주의, 환경주의 등)를 일컫는다. 신자유주의 세력은 미국 경제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고급스러우며 상징적이고 부유한 부문(월스트리트, 실리콘밸리, 할리우드)이 대표한다.

지난달 6일 미국 워싱턴의 국회의사당을 공격하는 트럼프 지지자들. 불평등 완화가 바이든 행정부의 과제다. [AFP=연합뉴스]

지난달 6일 미국 워싱턴의 국회의사당을 공격하는 트럼프 지지자들. 불평등 완화가 바이든 행정부의 과제다. [AFP=연합뉴스]

신자유주의에 진보적 인정(recognition)정치라는 필수 재료를 추가하는 과제는 신(新)민주당원에게 돌아갔다. 민주당의 빌 클린턴파는 노동자와 이민자, 아프리카계 미국인, 도시 중산계급과 거대 산업자본의 일부 분파를 성공적으로 통합해온 역사적인 블록의 자리에 기업가, 은행주, 교외 거주자, 신사회운동가, 라틴계 미국인 그리고 청년들의 새로운 동맹을 대신 구축했다.

공화당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이어 집권한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통령마저 신자유주의를 유지하면서 러스트벨트와 남부의 새로운 산업중심지 지역공동체는 황폐화했다. 미국 사회의 부의 불평등은 점점 더 심화되고 노동계급과 중산계급의 삶의 수준 역시 계속 하락했다.

금융화와 친기업 세계화의 희생자들인 상당수 미국 유권자는 본래의 정치적인 본거지를 잃은 채 방치됐으며 미국의 ‘정치적 우주’에는 큰 틈새가 생겼다. 트럼프는 기존의 정치가 자신들의 삶을 더 낫게 이끌어 주리라는 기대가 완전히 붕괴한 상황에서 등장했다.

‘반동적 포퓰리즘’을 내세웠던 트럼프와 ‘진보적 포퓰리즘’을 표방했던 민주당 버니 샌더스는 신자유주의적 분배 정치를 맹비난한 공통점이 있었다. 대선에서 승리한 트럼프는 그러나 취임 후 자신의 공약이었던 포퓰리즘적 분배 정책을 폐기하고 ‘초반동적 신자유주의’로 재빨리 갈아탔다. 그 결과는 2020년 대선에서의 패배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과연 바이든의 선택은 무엇일까. 빌 클린턴과 오바마 시대의 진보적 신자유주의 부활일까.

프레이저는 평등주의적 재분배와 비위계적인 인정을 합친 ‘진보적 포퓰리즘’을 유력한 ‘대항 헤게모니 블록’으로 보고 있다. 매우 좌파적 대안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진보적 포퓰리즘 또한 모종의 새로운 탈자본주의 사회 형태로 나아가기 전에 거치는 중간역으로서 과도기적인 기획으로 끝날 수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선택지를 추구하지 않으면 현재의 헤게모니 공백 사태가 연장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바이든이 미국 정치를 어디로 끌고 갈지 지켜볼 일이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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