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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으로 ‘공간체계’ 이동…IT 기업에 권력 집중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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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4호 26면

도시와 건축

도시와 건축 2/20

도시와 건축 2/20

인간의 눈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특징은 눈동자에서 흰자위가 많이 보인다는 점이다. 과학자들은 ‘다른 사람이 어디를 쳐다보는지 알기 위해서 점점 흰자위가 많이 드러나게 진화됐다’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다른 동물들의 눈동자는 검은색 부위만 보여서 어느 방향을 쳐다보는지 파악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인간은 눈동자를 움직이면 주변 흰자위의 모습으로 미루어 어느 방향을 쳐다보는지 파악할 수 있다.

코로나로 화상회의·온라인 수업 #오프라인 공간 시스템 무너져 #안전한 저밀도 공간 상류층 차지 #중산층 고려 공원·벤치 더 필요 #주중에 사용하지 않는 교회 공간 #공유오피스·위성학교로 개방을

건축공간 통해 권력 메커니즘 유지

이런 특징을 통해서 인간은 주변 사람들과 말없이도 상대방의 의사를 파악하기 쉬워졌다. 이로써 집단을 이루고 같이 사냥하는 데 유리해졌고 덕분에 사피엔스는 몸집이 작아도 집단을 키워서 다른 동물들을 압도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인간은 언어와 문자를 발달시켜 더 큰 집단을 만들 수 있었다.

눈동자, 언어, 문자 외에도 인간은 공간을 이용해서 사회적 소통과 공동체의식을 강화시켜 왔다. 인간은 공간을 도구로 사용한다.

모닥불이 그 대표적 사례다. 모닥불에 가까이 가면 뜨겁고 멀리 떨어지면 춥다. 따라서 사람들은 모닥불을 중심으로 불로부터 같은 거리를 두고 주변에 둥그렇게 앉는다. 이때 만들어진 원모양의 공간 내부는 밝고 따뜻하고 원 바깥은 사람들이 만드는 그림자로 어둡고 춥다. 밝기와 온도에 의해서 원형의 내부공간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때 모든 사람은 모닥불을 쳐다본다. 사회구성원이 모두 한곳을 바라본다는 것은 그 사회에 구심점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광성 동물인 인간은 과거에는 하늘의 불인 태양을 보거나 태양빛을 반사하는 달을 쳐다보며 섬겼다. 이 시기 사회의 구심점은 태양과 달이었다. 그런데 태양과 달은 먼 하늘에 있었다. 모닥불이 생겨나면서 인간은 사회의 구심점을 자신들이 생활하는 공간 안에 둘 수 있게 됐다. 그뿐 아니라 구심점을 밤낮으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만들 수 있게 됐다. 집단 결속력은 더 강해졌고 인간은 더 큰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집단이 커지자 무거운 돌로 건축물을 지을 수 있게 됐다. 처음에는 돌을 쌓아 벽을 세웠다. 모닥불이 만든 원형의 공간처럼 인간은 벽을 둥그렇게 세워서 괴베클리테페라는 신전건축을 지었다. 이 공간은 100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규모다. 괴베클리테페 신전은 인간사회의 구심력을 더 키웠고 이로써 사회가 더 커지고 견고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갇힌 생활을 많이 하는 중산층을 위해서라도 공원이나 벤치 같은 오프라인 공간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중앙포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갇힌 생활을 많이 하는 중산층을 위해서라도 공원이나 벤치 같은 오프라인 공간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중앙포토]

집단이 더 커지자 더 크고 높은 신전건축을 지을 수 있게 됐다. 인간은 벽돌을 만들고 쌓아 50m 높이의 지구라트 신전을 건축했다. 이들은 건축물이 만드는 높이의 차이로 권력의 위계를 만들어 냈다. 이때 높은 신전 꼭대기에 올라간 사람은 권력자가 된다. 과거 원시사회에서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는 곳에 불이 있었다. 이때는 불을 숭배하는 사회였다. 지구라트 신전을 짓자 시선이 모아지는 신전 꼭대기에 인간이 서 있을 수 있게 됐다. 이제는 인간이 가장 큰 권력을 가지게 됐다. 이처럼 건축공간을 통해서 권력을 만드는 메커니즘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유지된다. 예배당의 의자는 제단을 향해 놓여 있고 의자에 앉은 사람은 앞을 바라보고 그곳에 서 있는 종교지도자는 권력을 가지게 된다. 교단에 서 있는 선생님도 권력을 가지게 됐다. 사무실에서는 창문을 등지고 부하를 감시할 수 있는 상사가 권력을 가지게 됐다. 인간은 만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시간과 공간을 조정하면서 권력구조를 만들어 왔다.

공간시스템을 통해서 종교, 학교, 회사 등의 권력구조가 만들어졌고 이것들이 상호견제 및 보완하면서 사회가 유지됐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서 건축공간에 모일 수 없게 됐고 비대면 소비를 하게 됐다. 오프라인 공간을 통해서 유지되던 사회시스템이 붕괴된 것이다. 그 빈자리를 온라인 화상회의와 온라인 수업이 대체했다. 오래된 오프라인 공간권력 체계를 온라인 공간체계가 대체했다. 과거 여러 종류의 오프라인 공간 시스템으로 분산됐던 권력이 지금은 IT기업으로 집중되게 됐다.

최근 미국 의회의사당의 무력점거사태가 발생하자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은 시위를 선동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계정을 삭제했다. 트위터로 소통과 정치를 해 오던 트럼프는 SNS공간을 통한 정치권력시스템을 박탈당한 것이다. 이 사건은 과거에 종교지도자, 교육자, 정치가가 가지고 있던 공간 권력이 이 시대에는 IT기업으로 집중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코로나사태를 통해서 비대면 사회가 될수록 공간을 통한 권력은 IT기업으로 집중된다. 또 다른 형태의 독재 시대가 시작됐다.

이탈리아가 통일되면서 교황은 바티칸의 조그마한 땅을 빼놓고는 나머지 토지를 몰수당했다. 커다란 위기였지만 교황은 그 당시 신기술인 라디오를 이용해서 전 유럽과 남미까지 주파수가 닿는 땅끝까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다. 라디오 전파가 만드는 새로운 공간체계가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교황을 만들었다.

부자는 백화점, 중산층은 온라인 쇼핑

20세기의 미국 대통령은 TV방송을 이용함으로써 막강해졌다. TV전파가 송출되는 곳까지 정치적 영향력을 끼쳤다. 우리나라에서도 정권이 교체되면 KBS와 MBC를 장악하려 한다. 지금은 인터넷이 만드는 SNS공간이 가장 보편적인 공간시스템이다. 그 공간을 장악한 자는 IT기업이다. 이들의 유일한 약점은 IT기업이라 해도 정부가 설치한 광케이블 네트워크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일론 머스크는 1만2000개의 인공위성을 띄워서 그만의 인터넷 네트워크를 가지려 하는 것이다. 인공위성 우주 인터넷망을 가지게 되면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완전하게 가상공간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100년 전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은 태어나서 평생 직경 10㎞의 마을을 벗어나지 못하고 살았다. 이런 시대에는 지역 공동체가 강하다. 우리나라의 학연과 지연이 문제가 되는 사회는 이에 기반한다. 지금은 고속도로와 KTX로 어디나 갈 수 있고 어디서나 살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교통수단의 발달은 시공간의 경계를 와해시켰고 지연이라는 개념을 해체하고 있다.

학연은 같은 캠퍼스에 등교하고 생활하면서 만들어지는 공동체 의식이다. 온라인 수업만 하게 되면 학교가 가지는 학연의 힘은 사라질 것이다. 대학교의 온라인 수업 비중이 커질수록 학연은 약해질 것이다. 대학 간의 교차 온라인 수강신청이 늘어날수록 학교 간의 서열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과거 서열이 낮은 학교들이 좋아할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전 세계 몇몇 명문대가 주도하는 방송통신대학의 시대가 열릴 수도 있다. 인도·중국·프랑스·미국의 수십만 공대생들이 모두 MIT나 스탠퍼드대의 수업을 수강할 수도 있다. 마치 요즘 우리나라 입시생들이 1년에 50여만원으로 메가스터디의 모든 대입 온라인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처럼 말이다. 공간을 통한 권력이 몇몇 IT기업에 집중됐던 것처럼 지식과 교육을 통한 권력이 몇몇 대학에 집중되는 현상을 야기할 수도 있다.

지금은 점차 중산층 이하는 주로 온라인 공간에서 생활하고 오프라인 공간은 상류층의 전유물이 되어 간다. 전염병이 돌수록 밀도가 낮은 공간이 안전하다. 더 안전한 공간에 고소득 소비자가 모여든다. 백화점은 점점 명품 소비자를 위한 공간이 된다. 반면 중산층은 온라인 쇼핑을 한다.

이럴수록 정부는 오프라인 공간에서 공짜로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줘야 한다. 공원이나 벤치 같은 것들을 말한다. 좁은 집에서는 재택근무나 온라인 수업을 하기 힘들다.

이런 공간 부족의 문제는 교회가 어느 정도는 해결해 줄 수 있다. 교회는 주중에는 사용하지 않는 공간이 많다. 주중 낮 시간에 교회 일부 공간을 공유오피스나 위성학교로 사용하면 좋을 것이다. 교회의 공간을 일반 시민에게 제공한다면 교회의 문턱은 낮아질 것이다. 그렇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를 교회로 초대할 수 있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하버드·MIT에서 건축 공부를 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 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30여 개의 국내외 건축가상을 수상했고 『어디서 살 것인가』『공간이 만든 공간』등 저술활동도 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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