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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판사PC 강제로 열어본 김명수…중앙지검은 "괜찮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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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불법적인 방법을 썼다는 이유로 김명수 대법원장이 고발당한 사건에 대해 검찰이 각하 결정을 내린 것으로 18일 확인됐다.

김, 법원행정처 PC 강제열람 지시 #검찰 ‘무혐의’ 처리하자 야당 반발 #“공무원 PC 동의없이 다 봐도 되나”

법원 추가조사위는 2017년 말 블랙리스트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 법원행정처 컴퓨터를 사용자 동의 없이 강제로 열어 열람했다. 이에 주광덕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은 이를 승인한 김 대법원장 등을 직권남용 등으로 고발했다.

국민의힘과 검찰 등에 따르면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10월 28일 “범죄 혐의가 없다”며 고발을 각하했다. 검찰은 먼저 “추가조사위가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사용자(판사 3인)의 동의 없이 법원행정처로부터 제출받아 물적 조사를 진행한 것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도 “당사자들에게 조사예정 2~3일 전 조사일정을 알리고 참여 여부를 문의했다”며 “컴퓨터 하드디스크는 원래 대한민국의 소유로, 사용자들에게 공적 업무를 위해 제공한 것”이라고 적시했다. 또 “법원행정처장이 하드디스크를 관리·운영하고 있다. 특히 이 사건 하드디스크는 담긴 정보가 공적인 목적으로 작성된 것인바, 사용자들에게 따로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음이 명백하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탄핵거래 진상조사단’ 단장인 김기현 의원은 지난 2월 15일 직권남용, 허위 공문서작성 및 행사ㆍ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ㆍ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위반 등 4개 혐의로 김명수 대법원장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중앙포토

국민의힘 ‘탄핵거래 진상조사단’ 단장인 김기현 의원은 지난 2월 15일 직권남용, 허위 공문서작성 및 행사ㆍ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ㆍ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위반 등 4개 혐의로 김명수 대법원장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중앙포토

각하 결정 이유를 접한 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발했다. 당 ‘탄핵거래 진상조사단’ 단장인 김기현 의원은 중앙일보에 “사건의 본질은 PC의 국가 소유 여부가 아니라 강제 조사권이 없는 사람들이 당사자 동의 없이 PC 속 보관문서를 열어본 것”이라며 “검찰 논리대로라면 국회의원과 공무원들도 국회의장과 부처 장관, 대통령이 열어보자고 하면 다 까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사 출신인 같은 당 김웅 의원도 “이런 식이면 공무원에게 지급하는 업무용 휴대폰의 메시지도 듣거나 볼 수 있고, 회사 용지에 메모를 해도 강제로 뜯어서 봐도 무방하게 된다”고 가세했다.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도 통화에서 “앞으로 판결 형량 계산이나 업무 아이디어는 개인용 노트북에서만 작성해야 할 판”이라고 우려했다.

반면 반론도 있다. 공적인 업무에 사용되던 국가 소유 PC이고 조사 목적 역시 공적 영역(사법부 블랙리스트 존재 여부 확인)에 국한한 것이라면 사용자들의 동의 없이도 조사할 수 있다는 취지다. 실제로 서울중앙지법은 2019년 10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컴퓨터에 있던 문건파일을 검찰에 제출한 과정에 대한 판단에서 '공무상 목적으로 작성된 문건 파일은 국가 소유이기에 제출 과정에 작성자의 동의나 참여가 필요하지는 않다'고 봤다. 서울중앙지검도 이번 각하 결정을 내리면서 이 같은 법원 판단을 인용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2017년 불거진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은 인사 개혁 등을 주장하는 판사들의 블랙리스트를 대법원장 직속 법원행정처가 컴퓨터에 수집·보관하고 있다는 게 골자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1차 진상조사원회는 사실무근이라고 결론 냈다. 하지만 김 대법원장이 취임 직후 재조사를 결정하며 다시 조사위가 꾸려졌고, 추가조사위는 해당 컴퓨터를 사용한 판사들의 동의 없이 의혹 규명에 필요한 일부 컴퓨터 자료를 개봉해 불법 논란이 일었다. 이후 3차 조사 끝에 “사찰 문건은 발견됐지만 인사상 불이익 주는 블랙리스트 문건은 발견하지 못했다”는 최종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탄핵거래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국회 법제사법위 소속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이 “임성근 부장판사의 탄핵을 놓고 더불어민주당과 사전에 교감했던 게 아니냐”고 묻자, 대법원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 의견을 밝히기 어려움을 양해해 달라”고 서면 답변했다. 국민의힘은 지난 15일 임 부장판사의 사직서를 반려해 탄핵소추의 대상이 되도록 한 게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며 김 대법원장을 고발했다. 이 고발 사건도 서울중앙지검에 배당됐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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