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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상연의 시시각각

던바의 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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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상연
최상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던바의 법칙이 있다. 제아무리 마당발이라도 진정한 인맥은 150명 정도란 주장이다. 예나 지금이나, 누구나 그렇다는 것이다. 영국 문화인류학자 로빈 던바가 원시 부족 형태 마을의 구성원이 평균 150명 안팎이란 사실을 근거로 제시했다. 던바는 이 숫자를 찾기 위해 고생깨나 했던 모양이다. 원숭이나 침팬지 같은 영장류의 사교성을 살폈고, 뉴기니와 그린란드의 원시 부족도 샅샅이 뒤졌다. 친구들에게 성탄 카드를 몇 명에게 보내는지 적어 달라고 부탁했다.

블랙리스트 맹공하던 문 정부 #김은경 유죄에도 ‘우린 달라’ #노 정부도 무오류 집착 안 했다

그가 만약 20세기 런던이 아닌 지금 서울에 산다면 수고를 꽤 덜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줄줄이 장관으로 가는 ‘부엉이 모임’이나 혹은 ‘달빛 기사단’을 벗기면 금세 어떤 숫자가 나올 테니 그렇다. ‘내 편만 내 곁에’ 쓰는 일정한 패턴이어서 헤아리는 게 복잡할 까닭도 없다. 29번째 야당 패싱 장관과 그 와중에 튕겨 나온 청와대 민정수석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직위가 높든 낮든 던바의 수에 못 끼이면 그냥 겉도는 모양이다.

던바는 그중에서도 12~15명 정도를 ‘공감 집단’으로 불렀다. 누군가에게 변고가 생기면 망연자실할 정도로 상심하는 관계란 뜻이다. 예수를 따르던 제자, 스포츠팀이 모두 이런 규모에 속한다. 궁금한 건 그런 수의 ‘친문 공감 집단’은 자신들을 정말로 무오류로 생각하는지 여부다. 부동산이든, 인사 검증이든 잘못이 드러나도 책임이라곤 인정하지 않는 정권이다. 당연히 사과도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자주 잘못을 시인하고, 도덕성 의혹이 확산되면 낙마시키곤 했는데 말이다.

얼마 전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유죄 판결을 받자 청와대는 ‘블랙리스트 사건이 아니다’고 우겼다. 1년 전에 ‘문재인 정부에 사찰 DNA가 없다’더니 이젠 ‘판결문에 블랙리스트 단어가 없다’고 눈 가리고 아웅이다. 전 정권은 블랙리스트 대상자에게 정부 지원을 하지 않았다. 이 정권은 블랙리스트 대상자의 일자리를 빼앗았다. 그래도 다르다는 건데 사실 왜곡이다. 법원은 ‘표적 감사로 사표를 받았다’고 판시했다. 잡아떼고 말을 뒤집으며 버티는 대법원장이 있고, 그런 거짓말쟁이 대법원장을 ‘묻지마 싸고도는’ 거대 여당도 있다.

다들 뭔가 잘못됐다는 걸 몰라서 딴청을 부리고, 심지어 화를 내는 건 아닐 것이다. 남다른 기억력과 판단력, 언변으로 나라를 경영하는 높은 벼슬에 오른 분들이다. 그래도 억지와 궤변을 매일 쏟아내야 하는 건 ‘던바의 공감 집단 분위기’에 맞추다 보니 그러는 걸 텐데, 공감 집단은 왜 오류를 수정하지 않느냐는 물음이다. 물론 앞선 정권을 모조리 적폐 정권으로 몰고 도덕적 무결점을 내걸었기에 자신들의 행동은 무조건 옳다는 무오류 코스프레가 필요하긴 할 것 같다.

숭명대의(崇明大義)를 명분으로 쿠데타를 일으킨 인조와 서인 정권이 청나라에 매번 끌려다니면서도 그렇지 않다고 외쳤던 자기 부정과 다를 바 없다. 그게 바로 유체이탈이고 불통이다. 그런데 변하지 않는 청와대는 심지어 이마저도 부인한다. 자신들을 소통 정부란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 정부 때 “블랙리스트는 국가 폭력”이라고 했다. 그럼 현 정부도 마찬가지다. ‘블랙리스트 사건이 아니다’고 떼를 쓸 게 아니다. 탈원전 반대 시민단체 보고서를 ‘동향보고 수준’이라고 둘러댈 것만도 아니다.

무오류의 오류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차제에 월성 원전, 울산시장 선거 개입 등 다른 권력형 사건에 집중된 의혹도 탈탈 털어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고 바로잡을 수 있다는 믿음이 진보 정치의 출발점이다. 그게 ‘진보 정당에 가장 부족한 건 진보’라던 노회찬이 말한 ‘진보의 세속화’다. 세상을 진보시키려면 자신이 먼저 진보해야 한다. 언행일치다. 안 그러면 ‘우린 거짓말을 안 한다’는 말을 과연 누가 믿겠나.

최상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