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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충기의 펜톡]'시라소니 이후 최고 주먹' 방배추 뺨 때린 백기완의 일성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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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 1932~2021

백기완 1932~2021

내말 들어 보시게

압록강 대동강 예성강 한강 금강 영산강
모두 따로 흐르지만 서해에서 만나잖소

두만강 성천강 남대천 형산강은 동해에서 만나고

동해 서해 남해는 돌고 돌아 또 서로 섞이고요
본래 우리는 하나인데 헤어진 지 70년이 넘었오

나는 통일을 보지 못하고 가지만
남은 이들은 꼭 봤으면 좋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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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
반독재민주화·노동·통일운동에 평생을 바쳤다. 흔들림 없는 삶이었다. 순우리말 사용주의자이기도 했다. 선생이 제안한 새뚝이, 달동네, 새내기, 동아리, 모꼬지 같은 말은 이제 누구나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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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재단 최열 이사장은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백 선생님의 70년 동무 방동규 선배를 만났다. 방배추로 널리 알려진 시라소니이후 최고의 주먹이다. 주먹 한방에 안 넘어가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의 추억 한자락)

백기완을 처음 만난 건 6.25 전쟁이 끝난 1954년이다. 후암동에 사는 백기완이 나를 보더니 ‘너 주먹이 그렇게 세냐? 너가 방배추냐’하면서 순식간에 나의 빰을 갈겼다. 그러면서 ‘사나이가 10여명을 주먹으로 때려눕힌 게 뭐 그렇게 대단하냐’며 ‘사내자식이 한번 소리를 지르면 3천만을 울리고 웃겨야지’ 하는 거야. 그 소리를 듣고 어처구니가 없어 그냥 왔어. 잠 한숨 못 잤어. 그때부터 기완이와 단둘이 있을 때는 동무가 되었고, 여럿이 있을 때는 똘마니가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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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 방배추, 황석영을 대한민국 3대 구라라고 한다. 방 배추는 스케일 웅장하고 비장미 넘치는 백기완의 대륙형 구라를 제일로 친다. 유홍준은 이 대열에 후발로 합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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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황석영은 2017년 1월 오마이뉴스 기고에서 이렇게 말한다.

”백기완 선생이 농민운동을 하던 시기에 5.16이 일어났고 박정희가 대장 계급장을 스스로 달고 최고회의 의장을 하던 때였다. 제 정당 사회단체 대표와의 간담회에 '농민운동' 대장이었던 백기완도 초청을 받았다. 양복이 없어서 동료들이 남대문 시장에서 구해다 준 구제품 홈스펀 상의를 입고 갔는데 소매가 짧아서 와이셔츠 자락이 닷발이나 나왔다고 했다.그런 뒤 박정희가 무슨 일로 청와대 뜰에서 만나자고 했다. 아버지뻘 되는 박정희에게 인삿말 첫마디가 ‘박형!’ 그랬다고 한다. 이어서 ‘이 땅에서 혁명은 민주주의를 하자는 것이지 내가 권력자가 되자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곤 무슨 높은 자리를 준다고 하자 ‘박형, 나에게 당수자리를 주면 몰라도, 나는 봉황의 머리는 해도 꼬리는 안하는 사람’이라며 단박에 잘랐다고 한다. 어쨌든 청와대 뜰에서 얻어 마시고 온 양주는 도로 다 내놓고 간다며 박정희가 내준 관용차에다 그대로 다 쏟아내고 왔다는 일화도 있다. 이후 반 군사독재 투쟁의 전면에 나선 백기완은 박정희에겐 두고두고 눈엣가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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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대단한 인물 가셨네 으이구’

어떤 만화가가 백 선생을 두고 SNS에 올린 말이다. 그는 이전에 이런 말도 했다.

‘친일파 후손들이 저렇게 열심히 사는 동안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도대체 뭐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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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유리창을 방치해두면 결국 도둑까지 든다’

정철승 변호사가 이를 손봐주겠다며 칼을 뽑았다. 20~30년을 두고 꾸준히 응징하겠다며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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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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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 하나로 살아온 이의 죽음을 조롱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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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선생은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났다. 통일열차를 타고 고향에 가고 싶어 했다.

안충기 오피니언 비주얼 에디터·화가 newnew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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