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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혜란 “저같은 사람이 주인공…라미란 선배랑 시대 잘 만났다 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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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빛과 철'. [사진 찬란]

영화 '빛과 철'. [사진 찬란]

“시대적 변화도 있는 것 같아요. 저같이 생긴 사람이 항상 ‘아줌마’만 하는 게 아니고 지적인 역할도 하고요. 요즘은 평범하게 생긴 능력자들 많잖아요. 라미란 선배와 우리가 시대를 잘 만나서 주인공도 한다고 그랬죠.”
요즘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바쁜 배우 염혜란(45)의 말이다. 2019년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2019)의 배포 큰 변호사 역할로 오정세와 KBS 연기대상 베스트 커플상, 중편드라마부문 여자 조연상 2관왕을 차지한 데 이어 올해까지 출연작이 10편이 넘는다. 드라마 ‘초콜릿’(JTBC), 영화 ‘야구소녀’ ‘이웃사촌’ 등에 더해 치유 능력자로 변신, 악귀를 소탕한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은 지난달 OCN 자체 최고 시청률(11%)로 종영했다. 현재 극장에 걸린 영화만도 3편이다. 술집 사장이 되어 류현경‧김향기와 호흡 맞춘 ‘아이’, 중국인 시누이와 이심전심 통하는 카페 주인이 된 ‘새해전야’가 10일, 18일엔 첫 스크린 주연작 ‘빛과 철’이 개봉했다.

18일 개봉 영화 '빛과 철' 주연 #'경이로운 소문' 차기작 잇달아 #조연작 '아이' '새해전야'도 개봉

21년만에 주연 "대학생이 사회 나온 느낌" 

18일 개봉하는 영화 '빛과 철' 주연 배우 염혜란을 개봉 전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사진 찬란]

18일 개봉하는 영화 '빛과 철' 주연 배우 염혜란을 개봉 전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사진 찬란]

연극 ‘최선생’(2000)으로 연기를 시작한 뒤 21년 만의 영화 주연이다. 10일 화상 인터뷰로 만난 그는 그 소감을 “대학생이 사회에 나온 느낌”에 빗댔다. “이제 명함 달고 직책 받은 느낌이죠. 곳간은 채워지는데 걱정은 늘고, 책임감이 무겁게 다가와요.”
신예 배종대 감독의 장편 데뷔작 ‘빛과 철’은 남편들의 교통사고로 얽힌 영남(염혜란)과 희주(김시은)의 이야기다. 2년째 의식불명인 남편을 돌보며 남편이 다니던 공장에서 식당일을 하던 영남은 갑자기 찾아온 희주로 인해 외면해온 진실을 마주한다. 염혜란은 이 영화로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돼 배우상을 받았다.
“사건을 따라가면서 이야기를 끄집어냈더니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강렬한 내용들이 끌려 나왔어요. 여자들이 풀어가는 얘기인 것도, 처음부터 끝까지 존재하는 입체적인 인물인 것도 좋았죠. 모든 고민을 거친 감독님의 자신감도 믿음이 갔어요.”

“작품 할 때 의미를 많이 생각한다”는 그는 영남이 “슬픔에만 갇힌 게 아니라 삶을 사는 사람”이고, 또 남편이라는 “타인과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부분이 좋았다”고 했다. “내가 타인을 안들 뭘 얼마만큼 안다는 건가. 과거 사건으로 죄의식을 너무 많이 가진 이들이 다르게 생각하고, 좀 털어내고 가길 바랐다”면서 “저는 조금 희망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배 감독이 이번 영화 속 그의 다른 모습으로 ‘날카롭고 서늘한 면모’를 짚은 데 대해 염혜란은 기분 좋게 웃었다. “‘다른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 말이 되게 멋있잖아요. 저한테 그런 모습이 있나, 더 하고 싶어지죠.”

연극은 발가벗겨진 느낌…좋은 근육 생겼죠

배 감독은 배우들이 사전 대본 리딩은커녕, 촬영 전에 만나지도 못하게 했다. 사고 2년 만에 처음 만나는 영남과 희주의 감정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다. 현장에서 곧장 몰입할 수 있었던 비결로 염혜란은 20년 가까이 쌓은 연극 경험을 들었다. “연극은 길면 두 시간 동안 머리부터 발끝까지 발가벗겨져서 스캔당하는 느낌을 받아요. 매체(영화‧드라마)에선 카메라가 원하는 것만 보여드리는 것과 달리 무대에선 다 보시잖아요. 무대에 오래 있는 연기를 많이 하면서 좋은 근육이 많이 생겼죠.”

영화 '빛과 철'. [사진 찬란]

영화 '빛과 철'. [사진 찬란]

아픈 남편을 간병하는 역할은 지난해 웨이브‧MBC 합작 옴니버스 ‘SF8-간호중’의 인간 아내와 똑 닮은 간병로봇 1인 2역 때도 경험한 바. “병상에 오래 계신 분들의 다큐멘터리를 많이 봤다”고 했다. 희주와 갈등이 폭발하며 몸싸움까지 벌이는 클라이맥스 장면은 어떤 말이 영남을 가장 가슴 아프게 할지, 배 감독, 상대 배우와 계속 대사를 바꿔가며 찍었다. “주인공을 하고 싶었던 이유가 (각자 준비해온 것을 하는 조연과 달리) 대본에 대해 의견 나누고 같이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면서다.

다작 촬영 최대한 시간 분배 "열심히 허덕이고 있죠"

다작을 하다 보니 여러 작품의 촬영이 겹치는 일도 있다. ‘빛과 철’은 2018년 12월에 촬영했는데 ‘야구소녀’랑 겹쳤단다. “작품이 겹칠 때 ‘채널’ 바꾸는 일이 처음엔 정말 힘들었어요. 작품에 누가 되는 것 같고. 최대한 시간 분배를 잘하려고 하는데, 과부하가 걸리면 분명 조금 쉬거나, 결단의 순간은 있을 것 같아요. 비결까진 없고 지금도 열심히 허덕이고 있죠.”

영화 '야구소녀'에서 염혜란은 고교 야구부의 유일한 여자 선수인 딸의 꿈을 말리는 현실적인 엄마를 연기했다. [사진 싸이더스]

영화 '야구소녀'에서 염혜란은 고교 야구부의 유일한 여자 선수인 딸의 꿈을 말리는 현실적인 엄마를 연기했다. [사진 싸이더스]

국어국문학을 전공하며 교사가 되려고 교생실습까지 갔던 그다. 대학 연극동아리에서 처음 연기에 눈뜨고도 출판사에 취직했다가 결국 대학로로 향했다. “동아리에서 전혀 몰랐던 내 안의 꿈들을 발견하게 됐죠. 연기가 재밌으면서도 무서웠어요. 저는 당장 탤런트도 못 할 것 같고, 어디서 돈이 되는 연기를 보여주지도 못할 것 같고. 근데 출판사 다니면서 제가 그 일을 얼마나 소망하고 있는지 알겠더라고요.”

'경이로운 소문' 안석환 선배와 러브라인 생길 줄야

이젠 “꿈을 이뤘다”고 했다. “지나간 일기를 보면 어마어마하게 고통스러운 얘기가 많은데 그중 하나가 연기만 하고 싶다는 것이더라. 눈물 나려고 한다. 옛날을 돌아보면 하고 싶었던 것 다 하고 있는데 (연기에 대한) 두려움은 더 커진다”면서다. “한편으론 제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돈 받고 칭찬받는다는 게 어떨 땐 날로 먹는 것 같아요. 경찰관, 소방관처럼 남을 위해 봉사하는 일이 칭찬받을 일이지 저는 그냥 제 일을 한 건데 저를 좋아해 주시고…. 그런 직업은 배우뿐인 것 같아요.”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 [사진 OCN]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 [사진 OCN]

작품마다 연기폭도 넓다. ‘경이로운 소문’에선 장성한 아들을 둔 초로의 엄마가 됐다. “돌아가신 장민호 선생님의 연극 연기처럼 자기 안에 존재하는 연기가 가장 훌륭하다고 보는데 저보다 나이 많은 역할은 나이 든 분의 자연스러운 연륜이나 마음가짐이 안 나오니까 제가 자꾸 연기하려는 부분이 부담은 된다”고도 털어놨다. “(17살 위인) 안석환 선배님과 러브라인까지 생길 줄은 몰랐어요. 가모탁(유준상)이랑 생길 줄 알았어요. 20대 때부터 연극에서 엄마 역할을 했고 저보다 나이 많은 선배님의 이모 역할도 했지만, 영상 매체까지…. 아쉬움은 있었지만, 재밌었죠.”

좋은 엄마 어려워…연기가 저를 어른스럽게 만들죠 

현실에선 초등학생 아이를 둔 엄마다. “아이가 아직 어린데 ‘경이로운 소문’은 무서운 장면이 많이 나와서 같이 보진 못했다. 아이가 천천히 컸으면, 해서 TV를 많이 안 보여준다”고 했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게 좋은 엄마인데 저는 좋은 엄마는 아닌 것 같다. ‘날 닮아서 왜 성격이 저럴까’ ‘왜 그렇게 하니’가 더 많이 나온다”고 솔직한 고민도 밝혔다.
“작품에서 약자를 대변하고 연대하는 역할이 행복하지만, 실제 그렇게 못 살고 있을 땐 괴리감에서 괴롭기도 하다”면서 “연기를 통해 세상을 보면서 성장한다. 배우란 직업이 저를 조금 더 어른스럽게 만든다”고 했다.
차기작인 애니메이션 ‘태일이’에선 노동 열사 전태일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그는 배우를 “나를 찾아가는 직업” “평생 할 일”이라 거듭 말했다.
“저는 오래 연기하는 게 목표에요. 나문희 선생님이 왜 오래 하시지, 생각하면 오랫동안 잘 사신 것 같아요. 대중을 실망하게 하면 오래 연기 못 하거든요. 좋은 삶, 좋은 연기하는 게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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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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