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돌아가신 엄마의 자필 유언장이 무효라고요?

중앙일보

입력 2021.02.18 07:00

[더,오래] 배인구의 이상가족(107) 

엄마가 돌아가신 뒤 보게 된 유언장. 자필증서 유언이 유효하려면 유언자가 전문을 작성해야 하고 작성연월일과 주소, 성명을 기재한 후 날인해야 한다. [사진 pxhere]

엄마가 돌아가신 뒤 보게 된 유언장. 자필증서 유언이 유효하려면 유언자가 전문을 작성해야 하고 작성연월일과 주소, 성명을 기재한 후 날인해야 한다. [사진 pxhere]

엄마는 치매에 걸리지 않고 정신이 온전한 상태로 지내셨고, 갑자기 폐렴이 생겨 입원하셨다가 돌아가셨어요. 엄마의 상속인은 저와 오빠입니다. 오빠는 엄마의 자랑스러운 자식이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뛰어나게 잘했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에 입학해서는 경제적으로 독립해 부모님께 돈 달라고 하지 않는 착한 아들이었죠. 부모님은 큰 부자는 아니었지만 저희가 결혼할 때 모두 집을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습니다. 오빠가 결혼하고 강남에 살면서 지나가는 말로 과외비가 많이 든다고 하자 오빠 부부에게 흔쾌히 손자녀의 교육비를 보태주셨어요. 엄마는 오빠를 편애했고, 아버지 돌아가시고 혼자 사시게 되자 오빠네와 같이 살거나 적어도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살기를 원하셨죠.

그런데 오빠 부부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차일피일 미루었고, 결국 이혼한 내가 엄마와 같이 살게 되었어요. 내가 엄마와 같이 살면서 오빠 부부는 안심했는지 엄마를 찾아보지 않았고, 제가 여러 번 오빠에게 전화해야 겨우 한 번 다녀가곤 했어요. 엄마는 차츰 오빠에게 서운함이 생겼어요. 사실 나도 이혼하면서 작은 평수 아파트를 재산분할로 받아 굳이 엄마와 동거할 필요는 없었는데, 외로워하는 엄마를 생각하면서 엄마 집에 들어갔어요. 엄마와 사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엄마는 내가 친구와 만나 시간을 보내거나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엄마와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고 엄마와 여행하기를 바라셨죠.

그렇게 10여년이 지나 엄마는 같이 살아줘서 너무 고맙고, 남은 재산을 모두 제게 주시겠다며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와 2개의 상가를 정확하게 적어달라고 하셨어요. 나는 악필이라 적어드리면 혹시 알아보지 못하실까봐 컴퓨터로 작성하고 인쇄하여 드렸어요. 그런데 엄마는 내가 드린 종이에다 유언장을 작성하셨어요. 아파트나 상가 전체를 적는 것이 너무 힘이 드셨나 봐요. 돌아가신 뒤에 비로소 유언장을 보게 되었는데, 이렇게 엄마가 작성한 부분과 컴퓨터로 작성된 부분이 같이 있는 유언장도 문제가 없는지요.

배인구 변호사가 답합니다
사례자의 엄마가 정신이 온전하셨다니 유언장을 작성할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가 문제 되지는 않겠군요. 그런데 엄마가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장을 작성하신 거라면 무효가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예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민법은 유언의 방식을 엄격하게 정하고 있고, 자필증서 유언이 유효하려면 유언자가 전문을 작성하여야 하고 작성연월일과 주소, 성명을 기재한 후 날인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서울고등법원이 판결한 사안(2020나2021150)에서 “민법 제1066조가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에 전문 등의 자서(自書)를 요구하는 취지는 유언자로 하여금 자서를 통한 의사의 독립성과 의사표시의 진정성을 증명하도록 하는 데에 있으므로, 컴퓨터 등을 이용해 작성된 유언은 자필증서가 아니어서 효력이 없습니다. 다만 컴퓨터 등을 이용해 작성한 부분이 부수적인 부분에 그치고, 그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유언의 취지가 충분히 표현된 경우에는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만약 엄마가 유언장에 “내가 가진 부동산 전부를 000에게 준다”라고 자필로 기재하고 작성 일자와 주소, 성명을 기재한 후 날인한 뒤에 사례자가 제공한 부동산의 표시를 첨부하였다면 유효한 자필증서 유언이 되겠지만, 사례자가 제공한 종이 윗부분에 엄마가 유언장이라고 적고 “아래 부동산을 000에게 준다”라고 적었다면 무효가 될 수도 있답니다. 또 유언장의 존재만으로는 사례자 앞으로 등기를 할 수 없습니다. 가정법원에서 검인절차를 거쳐야 하고 다른 상속인이 엄마의 자필이라는 점 등 유언장을 인정해야만 비로소 등기절차에 나아갈 수 있답니다.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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