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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정하면 돌직구 날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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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염태정 기자 중앙일보
염태정 EYE 디렉터

염태정 EYE 디렉터

성과급은 적어도 내겐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다. 미디어업계 상황이 어렵기도 하지만, 여건이 괜찮을 때도 주면 좋고 안 줘도 할 말은 없는 거였다. 얼마인지, 어떤 계산으로 나오는지 궁금해도 대놓고 묻기는 어렵다. 직장생활 20~30년 한 40~50대는 비슷할 듯한데, 요즘 벌어지는 성과급 논란을 보면 앞으론 어떨지 모르겠다.

공정·투명에 민감한 MZ세대 #성과급 산정방식 공개 요구 #기업뿐 아니라 사회 각 분야 #공정· 투명은 아직도 먼 길

SK하이닉스의 젊은 직원이 성과급 산정 방식의 문제를 담은 메일을 사장을 포함한 조직 구성원에게 보냈다. 최태원 그룹 회장이 연봉 반납을 밝히고, 사장은 소통을 강화하겠다며 달래기에 나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신음하는 자영업자·기업이 많은데 배부른 고민, 행복한 싸움 한다는 비난도 있지만, 성과급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삼성·LG 같은 다른 기업으로 퍼지고 있다. 네이버 노조도 성과급 산정 기준의 투명한 공개를 요구했다.

성과급 논란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MZ세대의 특성이 주요인의 하나로 꼽힌다. 밀레니엄 또는 모바일에서 따온 M세대는 대체로 1980~90년대, Z세대는 1990년대 후반~새천년(Y2000) 이후 출생자를 말한다. 기준에 따라 국내 인구의 30~40%를 차지하는 것으로 본다. 2010년대 초반 출생자까지 포함해 2280만명(2019년 현재), 국내 인구의 44%를 차지한다는 분석도 있다(‘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주역 MZ세대 분석 및 제언’, 한국인터넷진흥원).

세대명은 시대상의 반영이다. ‘길 잃은 세대’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삶의 방향감각을 상실한 젊은이를 나타낸다. N포세대엔 취업·연예·결혼을 포기한 슬픔이 녹아있다. X세대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을 떠오르게 한다. 세대론은 허상이고, 상업적 상품일 뿐이란 얘기도 있지만, 경험을 공유하고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에서 공통점을 지니는 연령 집단은 있는 것이고 그에 기반을 둔 설명은 일정 부분 유효하다.

서소문 포럼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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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는 공정과 투명·실리·솔직함이 특징으로 꼽힌다. 어느 세대보다 투명·공정에 민감하다. 불공정하다 생각하면 돌직구를 날린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 세계화를 보고 자라 연결과 개방에 익숙하다. 성과급 산정 방식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자 기업들은 성과급 변경 계획을 밝히고, MZ세대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겠다고 하지만 아직 미흡하다.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공정과 투명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강조해 온 거다. 하지만 최근 펼쳐지는 모습은 그렇지 않다. 투명·공정보다는 불투명과 불공정이 판을 친다. 겉으론 그럴싸하게 보이지만 뒤에선 지저분한 거래와 계산을 하는 일이 상당하다. 누구보다 공정하고 투명해야 할 대법원장이 뒤로 정권의 눈치를 보며 판사의 사표를 막는다. 탄핵과 사표가 언급되는 녹취록은 녹음의 과정과 내용 모두 놀랍다. 대법원장이 고발당하고 여권 인사 입에서까지 물러나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블랙리스트는 그 단어 자체가 불투명·불공정을 표현한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은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청와대는 체크리스트일 뿐이지 블랙리스트는 없다고 반박한다. 내로남불이 따로 없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장의 절반, 임원의 열 명 가운데 한 명이 ‘캠코더(대선 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라는 분석도 있다.

『90년생이 온다』 저자 임홍택은 90년대생의 3대 특징으로 간단·재미와 함께 정직을 꼽았다. 이들은 정치·사회·경제 모든 분야에서 정직을 요구한다. 그러면서 가장 공정하고 정직하기에 공무원 시험을 많이 본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의 모습을 보면 공무원 조직의 상층부는 공정하지도 투명하지도 않다. 문재인 정부는 투명과 공정을 자랑한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최근 국제투명성기구(TI)의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에서 한국이 100점 만점에 61점을 받아 180개국 중 33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역대 가장 높은 점수라고 했다.

점수가 떨어진 것보단 낫지만, 자화자찬일 뿐이다. 61점은 낙제를 겨우 면한 수준이다. 33위라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가운데서는 23위에 불과하다.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다. 더 힘써야 한다. 공정·투명에 대한 요구를 힘으로 누르고, 꼼수로 감출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공정하지 않으면 바로 돌직구 날아온다.

염태정 EYE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