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헌 "신호 위반 교통경찰 책임아냐"…펀드 판매사만 때리는 금감원

중앙일보

입력 2021.02.17 19:03

업데이트 2021.02.17 19:41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17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17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호 위반했다고 교통경찰이 다 책임질 순 없다.”

[현장에서] '금융사 임원 책임제' 예고한 금감원

17일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 참석한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의 말이다. 라임과 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사태에 대한 금융당국의 관리소홀을 지적한 김희곤 의원(국민의힘)의 질의에 신호위반에 대한 교통경찰의 책임을 비유해 답변한 것이다. 윤 원장은 “(사모펀드 사태는) 저희(금감원) 책임이 가장 크다고 볼 수는 없다. 소비자에게 판매한 판매사의 잘못이 크다”고 했다.

사모펀드 책임론에서 발을 뺀 금감원이 꺼낸 든 것은 '제재의 칼날'이다. 대규모 환매 사태를 일으킨 라임·옵티머스 등 사모펀드를 판매한 금융사 최고경영진에게 미흡한 내부통제를 이유로 줄줄이 중징계를 내렸다. 라임펀드 판매 당시 우리은행장이었던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에게 직무 정지(상당), 진옥동 신한은행장에게는 문책 경고를 사전 통보했다.

지난해 11월에는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를 거쳐 윤경은 전 KB증권 대표와 김형진 전 신한금융투자 대표, 나재철 전 대신증권 대표(현 금융투자협회장)에게 ‘직무정지’, 박정림 KB증권 대표에게 ‘문책경고’의 중징계를 결정했다. 제재 수위는 금융위원회 심의ㆍ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지난해 11월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리는 '라임 사모펀드 사태' 관련 판매사 제재심의위원회에 증권사 임직원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리는 '라임 사모펀드 사태' 관련 판매사 제재심의위원회에 증권사 임직원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금감원은 ‘금융사 임원 책임제’ 도입을 예고하고 있다. 사모펀드처럼 소비자 피해가 잦은 업무의 경우 담당 임원의 책임 범위를 사전에 명확히 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예컨대 상품을 판매하고 개발하는 업무의 책임자가 누구인지를 정해 금융당국에 보고하는 식이다.

금융업계에서는 벌써부터 볼멘소리가 나온다. 감독 당국으로 부실 감독에 대한 반성 없이 사고 발생에 대한 책임을 금융사에 더 지우는 방향으로 감독체계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금융사가 다 잘한 것은 아니지만 금융당국이 부실 관리에 책임을 오롯이 금융사에게만 넘기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금융사 고위 관계자는 “결국 사고를 책임질 임원이 있어야만 신규 사업을 할 수 있다”며 “규제가 지나치면 금융사는 위축돼 혁신사업에서 뒤처질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금융사 최고 경영진에 대한 금감원의 중징계가 이어지며 후계 구도에도 지장이 생기고 있다.

이런 목소리에 대해 금감원은 “(금융사 임원 책임제는) 영국과 호주 등 해외 감독 당국에서 이미 시행하는 제도”라며 “금융사의 경영진 관리 사각지대를 방지해 소비자 피해를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소비자 피해를 막고 내부통제 미비 등의 이유로 금융사를 징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면 감독 당국은 법인 제재를 하고, 이사회에서 최고경영진 등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넘겨주면 된다"며 "그렇게 되면 금융사 경영진이 감독 당국의 제재나 법률 리스크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호 위반의 책임을 교통경찰이 다 질 수는 없다. 하지만 교통경찰이 남발한 범칙금 고지서 때문에 운전대를 잡을 사람도 없는 게 현재 금융회사들이 처한 형국이다. 교통질서가 범칙금 고지서만 마구 발급한다고 잡히지는 않는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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