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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반도체 부족한데…북극 된 텍사스 삼성공장도 멈췄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가뜩이나 공급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반도체 시장에 악재가 겹쳤다. 한파‧지진 등 자연재해로 인한 대규모 정전 사태가 일어나면서 세계 곳곳의 반도체공장이 문을 닫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17일 삼성전자 등에 따르면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있는 삼성전자 오스틴공장이 16일 오후 3시(현지시간)부터 가동을 멈췄다. 지난 2주간 이어진 영하 17도에 이르는 한파, 12㎝ 넘게 쌓이는 폭설로 인한 전력 부족 때문이다. 주요한 전력 공급원인 풍력발전기도 상당수 고장 난 것으로 알려졌다. 전력이 부족해지자 오스틴시가 삼성전자와 인피니온·NXP·테슬라 등에 공장 가동을 멈춰달라고 요청했다.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에 운영 중인 삼성 오스틴 반도체공장. 고용 인력은 3000여 명이며, 지난해 상반기에 2조1400억원대 매출을 기록했다.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에 운영 중인 삼성 오스틴 반도체공장. 고용 인력은 3000여 명이며, 지난해 상반기에 2조1400억원대 매출을 기록했다. [사진 삼성전자]

오스틴시 측은 사흘 간 단전을 통보했지만 기상여건에 따라 이 기간은 연장될 수 있다. 삼성전자 측은 “주민의 안전을 위해 오스틴시의 전력공급 중단 요청을 받아들였다”며 “재가동 시점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삼성 측은 ‘예고된 정전’이라 피해액은 크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회사 안팎에선 최소 일주일치 생산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 전력이 다시 공급돼도 공조시설과 인프라 가동, 클리닝 등 준비작업이 필요하다.

삼성전자 오스틴공장은 122만1000㎡ 규모의 파운드리(위탁생산) 생산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근무 인력은 3000여 명, 주요 제품은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다. 현재까지 삼성전자는 이 공장에 18조8000억원 이상을 투입했고, 최근엔 170억 달러(약 19조원) 규모의 파운드리 라인 증설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전자 오스틴 공장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삼성전자 오스틴 공장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TSMC·르네사스 공장도 지진 피해

지난 13일엔 일본 후쿠시마현에서 규모 7.3의 지진이 발생해 일본 르네사스 이바라키공장 가동이 중단됐다. 이 공장은 르네사스의 주력 생산기지로, 유일하게 12인치 웨이퍼 조립라인이 있다. 현재 전력은 복구됐지만 제조장비와 제품 손상 등을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해 생산은 멈춘 상태다.

반도체 업계에선 적어도 한두 달은 르네사스 공장의 운영이 어려울 것으로 본다.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가동을 멈춘 르네사스의 나카공장은 재가동까지 3개월이 걸렸다. 르네사스는 차량용 반도체 세계 3위 업체다.

지난해 12월엔 대만 북동부 해역에서 6.7 규모의 지진이 발생해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 공장에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D램 업체인 마이크론의 대만 공장에도 전력이 끊겨 공장 가동이 멈췄다 재개됐다.

최재성 극동대 반도체장비공학과 교수는 “미세공정을 다루는 반도체공장은 생산라인이 멈추면 설비 재점검 등 환경 조성을 새로 해야 해 하루만 멈춰도 수백억~수천억원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8년 경기도 평택의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정전 사태 때 30분간 가동 중단으로 500억원대 손실이 생긴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이번 자연재해로 인한 셧다운(가동 중단)으로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이 더 장기화할 것으로 본다. 삼성 오스틴공장과 함께 가동을 중단한 NXP와 인피니언은 차량용 반도체 분야에서 각각 세계 1·2위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은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올 1분기에만 전 세계 자동차 100만 대가량이 생산 차질을 빚을 것으로 분석했다. 반도체 부족으로 제너럴모터스와 포드·폴크스바겐·도요타 등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생산에 차질을 겪고 있는 상태다.

커지는 세계 반도체 시장.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커지는 세계 반도체 시장.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향후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듯  

공급 부족이 반도체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미 르네사스는 올해 1월 1일을 기준으로 아날로그·전력 반도체 가격을 인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원자재 및 포장(기판) 비용 증가가 인상 이유다. TSMC도 가격 인상을 예고했다. 최근 일본 닛케이 보도에 따르면 TSMC는 이달 말부터 단계적으로 차량용 반도체 가격을 최대 15% 올릴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네덜란드 NXP도 가격 인상을 예고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파운드리 공급이 더 부족해지고 수요는 줄을 선 상황이라 추가로 가격 상승이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종호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은 “가동이 중단된 기간만큼 생산량이 줄어들면 가격 인상은 정해진 수순”이라고 말했다.

넘치는 수요 덕분에 반도체 시장은 덩치가 커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옴디아에 따르면 2016년 3547억8400만 달러(약 392조원)였던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는 5년 만인 올해 4890억100만 달러(약 541조원)로 커졌다. 내년에는 5423억1200만 달러(약 600조원)로 예상된다. 미국 반도체산업 기초지수로 불리는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3238.92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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