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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서태지? 과찬이자 부담···이승윤으로 남고 싶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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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워우워우워 사랑해 아니면/ 난 너무 예뻐 너를 사랑해 아니면/ Put your hands up everybody check it out/ 하는 것만 노래인건 아니잖아(…)우리의 목소리를 멈출 수는 없을걸”(‘없을 걸’)

JTBC ‘싱어게인’ 우승자 인터뷰 #운 좋으면 3라운드 정도 예상 #죽기 전에 명곡 꼭 한번 써서 #노래가 이름 앞에 오게 됐으면

2011년 11월 MBC ‘대학가요제’에 출전한 한 대학생이 부른 노랫말은 꼭 10년 만에 현실이 됐다. ‘무명가수’를 대상으로 한 JTBC 오디션 ‘싱어게인’에서 이승윤(32)이 우승을 차지하면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덕분이다. 박진영의 ‘허니’부터 이효리의 ‘치티치티 뱅뱅’, 산울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곡을 자기 방식대로 소화한 그는 ‘장르가 30호’라는 수식어와 함께 ‘유명가수’로 거듭났다. 심사를 맡은 유희열은 “경계선에서 태어난 한명의 스타가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고 신을 이끈다”고 극찬했다.

JTBC ‘싱어게인’ 우승자 이승윤은 “승자와 패자가 정해지는 경쟁이 힘들어서 벗어나 살아왔던 사람인데 우승을 하다니 기분이 이상하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JTBC ‘싱어게인’ 우승자 이승윤은 “승자와 패자가 정해지는 경쟁이 힘들어서 벗어나 살아왔던 사람인데 우승을 하다니 기분이 이상하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포기할 때 하더라도 다 한번 해보자”

노래를 청하자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이백서른두번째 다짐’을 꺼내들었다. “일상은 숱한 다짐으로 채워진다”며 “설사 그 다짐이 어그러진다 해도 담담히 또 다짐을 한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노래를 청하자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이백서른두번째 다짐’을 꺼내들었다. “일상은 숱한 다짐으로 채워진다”며 “설사 그 다짐이 어그러진다 해도 담담히 또 다짐을 한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정작 이승윤 본인은 어리둥절했다고. 16일 서울 상암동에서 만난 그는 “실은 2020년 12월 31일까지만 음악을 하고 그만둘 생각이었다”고 밝혔다. “그동안 창작자로 살면서 주변에 폐를 너무 많이 끼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에서 요구되는 기본적인 역할을 못 해도 봐주는 게 있거든요. 어렸을 땐 즐겼는데 나이가 들수록 이기적인 것 같더라고요. 음악을 너무너무 사랑해서 차마 취미로 할 순 없는데, 그렇다면 차라리 그냥 음악을 하지 말자 싶었죠.” ‘싱어게인’은 “포기할 때 하더라도 2020년에 할 수 있는 건 다해보자”는 배수의 진이었던 셈이다.

스스로 ‘방구석 음악인’이라 칭해온 그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문밖으로 나오기를 망설였다”고 말했다. “100% 자기만족을 위해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면 작품을 방안에 걸어두기만 해도 되겠죠. 하지만 내가 만든 이 노래가 누군가에게 닿았으면 좋겠다는 욕망도 있잖아요. 친구들조차 제 음악을 안 들어주는데 누가 들어줄까, 아무래도 나는 대중성은 없나보다 하며 스스로 한계를 지었던 거죠.” 그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처음 나온 거로 아는 분들이 많은데 ‘대학가요제’ 외에도 두 번 더 있다. 모두 예선 탈락해서 밝히기는 부끄럽다”며 웃었다.

“매 무대 목적 분명…메시지 중심 선곡”

4라운드 톱 10 결정전에서 산울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를 부르는 이승윤. [사진 JTBC]

4라운드 톱 10 결정전에서 산울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를 부르는 이승윤. [사진 JTBC]

이승윤은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은 72호 가수”로 밴드 알라리깡숑을 꼽았다. [사진 알라리깡숑 유튜브]

이승윤은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은 72호 가수”로 밴드 알라리깡숑을 꼽았다. [사진 알라리깡숑 유튜브]

하여 선곡할 때도 메시지를 가장 중심에 뒀다. “운이 좋으면 3라운드 정도까지”라 생각했던 그는 “매 무대에 목적성이 필요했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잘 담을 수 있는 곡 위주로 선택했다”고 밝혔다. 톱10 결정전에서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를 선곡한 것도 그 때문이다. TV 밖에서 무대를 지켜보고 있을 수많은 ‘72호 가수들’을 주단을 깔고 기다린다는 의미를 담았다. 또 번호가 아닌 이름을 밝히는 명명식에서는 솔로곡이 아닌 밴드 알라리깡숑의 ‘게인 주의’를 골랐다. “제 노래가 ‘싱어게인’을 통해 누군가에게 닿았다면 정말 많은 가수의 노래가 그럴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은 72호이기도 했고요.”

2012년 대학가요제에서 만난 윤현준ㆍ정승헌과 함께 ‘따밴(따로 노는 밴드)’으로 시작해 솔로 활동을 병행한 그는 2019년 조희원ㆍ랑세ㆍ지용희와 함께 알라리깡숑을 결성했다. 스페인어로 ‘날개 모양의 노래’란 뜻. 그는 “각자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싱어송라이터인데 혼자서 하기 쉽지 않은 음악을 같이 하기 위해 모인 팀”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싱어게인’에 팀으로 출전하지 않은 이유는 “짧은 시간 안에 네 사람의 음악을 다 보여주기 쉽지 않을뿐더러 같은 팀이라 해도 2020년까지만 도전해보겠다는 내 생각을 멤버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었다”고 밝혔다.

“명성이 없으면 이름도 없는 걸까” 고민

세미파이널에서 방탄소년단의 ‘소우주’를 부른 이승윤. [사진 JTBC]

세미파이널에서 방탄소년단의 ‘소우주’를 부른 이승윤. [사진 JTBC]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로는 세미 파이널에서 부른 방탄소년단의 ‘소우주’를 꼽았다. “애초에 저는 파격적으로 무대를 꾸밀 생각이 없었어요. 제 색깔을 파격적으로 받아들여 주신 것 같은데 그 자체가 제 장르가 되어버리는 것 같아서 깨야겠다 싶더라고요. 저는 가늘고 길게 음악 하고 싶은데 ‘파격’이라는 꼬리표를 계속 달면 앞으로 실망하게 해드릴 일밖에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한번은 브레이크를 걸어야겠다 싶었죠. 일부러 문법이나 형식을 바꾸는 대신 음악적 색깔만 예쁘게 담아내는 데 집중했는데 제 음악 인생을 길게 보면 정말 중요한 무대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자작곡 ‘무명성 지구인’(2018)처럼 우주에 대한 비유도 즐겨 사용하는 편이다. “안녕 난 무명성 지구인이야/내 이름은 아무개” “이름이 있는데 없다고 해/명성이 없으면 이름도 없는 걸까” 등 노랫말은 ‘싱어게인’에서 밝힌 무명가수에 대한 생각과도 이어진다. “사람은 누구나 이름이 있잖아요. 어떤 사람은 더 많이 불려서 빛이 나고 대부분의 사람은 덜 불리는 것뿐이지. 나라도 내 이름을 되뇌며 살아야겠다, 아직 명성이 없을 뿐이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는 “평소 생각나는 대로 메모하는 편”이라며 “그나마 작사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싱어게인’을 통해 편곡에도 재능이 있다는 걸 발견하게 돼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보컬도 작곡도 따로 배운 적은 없고, 중학교 때 『이정선의 기타교실』로 독학한 걸로 버티고 있어요. 하하.”

“이무진·정홍일 너무 잘해서 배 아파”

1라운드 조별 생존전에서 박진영의 ‘허니’를 부른 이승윤. 그는 “처음 들어보는 심사위원들의 칭찬에 1라운드에서 떨어지진 않겠구나. 방송에 5분은 나갈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진 JTBC]

1라운드 조별 생존전에서 박진영의 ‘허니’를 부른 이승윤. 그는 “처음 들어보는 심사위원들의 칭찬에 1라운드에서 떨어지진 않겠구나. 방송에 5분은 나갈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진 JTBC]

“서태지와 아이들, 국카스텐이 처음 등장했을 때의 느낌”이라는 유희열의 칭찬에 대해선 “과찬이자 부담”이라고 했다. ‘제2의 누군가’가 될 자신은 없고 그냥 이승윤으로 남고 싶다고. 스스로 ‘배 아픈 가수’라 소개했던 그는 “요즘도 배가 아프다. 이무진이나 정홍일 형님 보면 너무 잘해서 배 아프다. 방송에서 잘 포장해주셔서 그렇지 사실 ‘쪼잔뱅이’”라고 말했다. “브릿팝부터 힙합까지 다양하게 듣는 편인데 이적 노래를 정말 많이 들었어요. 행사 가서 남성 싱어송라이터라고 하면 무조건 이적 노래를 시키거든요. 이 계보의 ‘끝판왕’ 같은 느낌이니까. 그분의 음악 세계를 정말 사랑하는데도 일부러 안 불렀어요. 자존심 상해서. 이번 파이널 무대에서는 제 이름으로 스스로 선택해서 이적의 ‘물’을 부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경연 도중 그의 이름이 밝혀지면서 가족사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100주년기념교회 이재철 전 담임목사가 그의 아버지이고, 유튜브 채널 ‘천재 이승국’ 등으로 활동 중인 크리에이터가 둘째 형이다. “자식은 직선이 아닌 원에서 키워야 한다”는 이 목사의 교육관도 주목받았다. 이승윤은 “가족 이야기는 부담스럽다”며 말을 아꼈다. “삶은 원일까/ 아니면 구일까/ 구하고 원하다 보면/ 구원 속에 속한다 그래/ 근데 나는 마름모야/ 심지어 삐뚜루 서 있지”(‘우주 like 섬띵 투 드링크’), “뚜렷한 글씨 안에 갇힌 투명한 말/ 언제나 보여 주기란 어렵지/ 우린 검증 받지 않은 번역가들”(‘반역가들’) 등 노랫말에서 밝힌 '아웃사이더’다운 답변이다.

“1집 아끼는 마음에 내려달라 요청”

이승윤은 “제 이름으로 부르긴 했지만 많은 선배님들이 불렀던 노래를 빌려와 무대를 꾸몄다. 기성 가수분들과 명곡의 주인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승윤은 “제 이름으로 부르긴 했지만 많은 선배님들이 불렀던 노래를 빌려와 무대를 꾸몄다. 기성 가수분들과 명곡의 주인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다음 달 19~21일 서울을 시작으로 5개월간 14개 도시에서 진행되는 ‘싱어게인’ 톱 10 콘서트 등 향후 일정도 빽빽하게 차 있다. 지난해 10월 발표하려다 미뤄둔 정규 2집 준비와 함께 “너무 아끼는 마음에 감춰둔” 정규 1집 ‘무얼 훔치지’(2016) 재정비 작업도 계획하고 있다. “‘싱어게인’ 1라운드 방송 직전 음원 사이트에 1집을 내려달라고 요청했어요. 무척 아끼는 곡들인데 너무 미완성인 것 같아 제대로 만들어 들려드리고 싶더라고요. 모두에게 필요한 음악은 없다는 생각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지만 이제 제 음악이 닿는 범위가 조금 더 넓어졌잖아요. 죽기 전 명곡을 꼭 한번 써서 노래가 이름 앞에 오는 가수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영상=김한솔ㆍ김은지, 그래픽=이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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