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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팩이 뭐길래…루이뷔통 회장도 샤킬오닐도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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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지난해 미국 증시에 상장한 스팩의 자금조달 규모는 832억 달러로 사상 최고액을 기록했다. 사진은 뉴욕증권거래소 내부 모습. [EPA=연합뉴스]

지난해 미국 증시에 상장한 스팩의 자금조달 규모는 832억 달러로 사상 최고액을 기록했다. 사진은 뉴욕증권거래소 내부 모습. [EPA=연합뉴스]

“유럽 최고 부자가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열풍에 동참했다.”

M&A 위한 페이퍼컴퍼니 열풍 #비상장 우량기업 합병해 투자 수익 #월가 작년 92조원 모여 677% 폭증 #IPO보다 시간·절차 단축해 인기 #기업가치 과대평가 위험 따져야

베르나르 아르노

베르나르 아르노

미국 CNN방송은 15일(현지시간)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 그룹 회장이 스팩 설립에 나선다며 이렇게 보도했다. 아르노가 이끄는 LVMH는 루이뷔통·불가리 등 명품 브랜드를 보유한 회사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아르노 회장의 자산은 1140억 달러(약 126조원)로 세계 4위, 유럽 1위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아르노는 ‘페가수스 유럽’이란 이름의 스팩을 준비 중이다. 아르노가 소유한 ‘그룹 아르노’의 자금을 바탕으로 스팩을 설립한 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증시에 상장해 수억 유로의 자금을 확보할 계획이다.

샤킬 오닐

샤킬 오닐

미국 뉴욕 월가에선 대형 헤지펀드부터 정치인과 스포츠계 인사까지 잇따라 스팩 설립에 뛰어들고 있다. 미국의 행동주의 헤지펀드 운용사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스팩 설립 자금 10억 달러를 마련하려고 은행과 접촉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폴 라이언 전 미국 하원의장과 영화 ‘머니볼’의 실제 주인공인 빌리 빈도 스팩 설립에 나섰다. 미 프로농구(NBA) 스타였던 샤킬 오닐은 지난해 10월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아들 마틴 루서 킹 3세와 함께 미디어·정보기술(IT) 기업을 인수하는 목적의 스팩을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미국 증시에 상장한 스팩의 자금조달 규모는 832억 달러로 사상 최고액을 기록했다. 2018년(107억 달러)과 비교하면 677% 늘어났다. 올해 들어선 지난달 17일까지 157억 달러 규모의 스팩 상장이 이뤄졌다.

스팩은 투자자를 공개 모집한 뒤 주식시장에 상장하고 그 자금으로 비상장사를 인수·합병(M&A)하는 게 유일한 목적인 ‘서류상 회사’(페이퍼컴퍼니)다. 스팩은 일반적인 기업공개(IPO)와는 반대 방식으로 작동한다. 스팩은 자금을 먼저 조달한 뒤 인수합병 기업을 물색하기 때문에 ‘백지수표 회사’로도 불린다.

스팩(SPAC) 상장 구조.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스팩(SPAC) 상장 구조.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만일 스팩이 유망한 기업을 잘 골라 M&A에 성공한다면 스팩 투자자는 상당한 투자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반면 스팩이 M&A한 기업이 증시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면 스팩 투자자는 원금도 제대로 건지지 못할 수 있다. 미국에선 스팩 상장 후 2년, 한국은 3년 안에 M&A를 성사시키지 못하면 투자자에게 원금과 약간의 이자를 돌려준다.

일반적으로 비상장 기업이 증시에 상장하려면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롭다. 상장까지 2~3년이 걸리기도 한다. 하지만 비상장 기업이 스팩과 M&A를 하면 상장에 필요한 시간과 절차를 단축할 수 있다. 지난해 ‘사기 논란’이 불거졌던 수소차 업체 니콜라도 스팩과 M&A를 통해 증시에 상장했다. 니콜라는 2014년 설립 이후 단 한 대의 차를 팔지도 않았지만 지난해 6월 ‘벡토 IQ’라는 스팩과 합병했다. 스팩으로 조달한 금액은 7억 달러 규모다.

미국 거래소 상장 스팩(SPAC) 추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미국 거래소 상장 스팩(SPAC) 추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국내 증시에도 다양한 스팩이 상장돼 있다.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업 M&A를 완료한 스팩은 17곳이었다. 2017년(21곳) 이후 가장 많았다. 2009년 국내에 스팩 제도를 도입한 이후 지난해까지 증시에 상장한 스팩은 189개(코스피 3개, 코스닥 189개)다. 이 중 94개가 3년 안에 M&A에 성공했다.

스팩에 돈을 맡긴다면 투자 위험도 따져봐야 한다. 스팩이 비상장 기업을 합병하는 과정에서 꼼꼼하게 검증하지 못하면 기업 가치를 과대평가할 위험이 있다. 박종선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스팩을 통한 합병 상장 때는 IPO보다 체계적으로 기업을 들여다보기 힘들다”며 “스팩 투자자는 인수 기업의 재무제표, 회사의 사업 내용, 기술 평가 등을 깊이 있게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호·윤상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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