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MB·朴 블랙리스트서 화이트로…정권 바뀌자 한자리씩 꿰찼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1월 7일 서울 용산에서 열린 블랙리스트 피해 문화예술인 간담회에서 배우 김규리씨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1월 7일 서울 용산에서 열린 블랙리스트 피해 문화예술인 간담회에서 배우 김규리씨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한동안 뜸했던 ‘블랙리스트’라는 단어가 또다시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김여진, ‘변호인’ 제작 최재원 등 #영진위 비상임이사로 대거 진출 #김규리·이은미 TBS 라디오 진행 #김미화는 안산문화재단 대표에

지난 9일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던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면서다. 야권은 입을 모아 “문재인 대통령이 사과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 청와대는 지난 10일 “이 사건을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규정하는 것은 유감”이라며 “문재인 정부에 ‘블랙리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달 26일에는 문재인 정부에 비판적인 발언을 해오던 가수 JK김동욱이 10년 가까이 자신이 진행하던 음악 방송에서 하차하면서 블랙리스트 논란이 불거졌다. 그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나 싶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도 못하냐”고 말했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은 지난 2일 페이스북에 이 일을 거론하면서 “개인 SNS를 통해 정권 비판의 목소리를 몇 차례 낸 것이 결국 찍어내기로 이어진 것”이라며 “‘친문 블랙리스트’는 무섭게 작동한다”고 썼다.

가수 JK 김동욱 [중앙포토]

가수 JK 김동욱 [중앙포토]

이처럼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는 블랙리스트는 국정농단 사건 때 비중있게 다뤄졌다. 2016년 10월 9000여명에 이르는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처음 폭로된 이래 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에서도 문화예술계 인사에 대한 조직적인 배제 정황이 드러났다. 2019년 2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가 펴낸 백서에 따르면 피해인사는 8931명, 피해단체는 342개에 달했다.

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최초 폭로 이후 4년 4개월의 시간이 흘렀지만 박근혜 정부 당시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재판이 진행 중이다.

블랙리스트에 올라 고통을 받았던 피해자들의 현재는 어떨까.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가 한창일 때 “광우병에 감염된 소고기를 먹느니 차라리 청산가리를 먹는 게 낫겠다”라는 취지의 글을 올려 이명박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배우 김규리씨는 2017년 9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와 아픈 기억을 회고했다. 그는 “(사람들이) ‘너 아직도 안 죽었어? 안 죽었어?’ 그래서 시도도 했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아픈 기억을 되새기며 눈물을 흘렸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족쇄가 풀린 그는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서울시 산하 서울미디어재단 TBS에서 2019년 2월부터 라디오 프로그램 ‘김규리의 퐁당퐁당’을 진행하고 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제에서 노래를 부르고,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도왔다는 이유 등으로 역시 블랙리스트로 분류된 가수 이은미씨는 본인의 정치 성향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맹렬히 활동 중이다. 그는 2019년 5월 노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시민문화제 콘서트에서 “친노였다가 친문으로 갈아타고, 문재인 정권의 어용음악가로 활동 중인, 그러다가 친유(시민)로 갈아타야 하나 고민 중인 이은미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 역시 TBS에서 2019년 5월부터 라디오 프로그램 ‘이은미와 함께라면’을 진행하고 있다.

라디오 DJ로 활동하며 시사 문제에 목소리를 내온 개그맨 김미화씨는 2017년 9월 블랙리스트 문제로 검찰에 출석해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당시 김씨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부끄러움 없이 백주대낮에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는 현실이 정말 어이상실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런 그는 지난해 9월부터 안산문화재단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임기 2년에 연봉은 약 8000만원이다.

서울미디어재단 TBS와 안산문화재단은 각각 서울시와 안산시 산하 기관이다.

이밖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피해자의 상당수는 중앙정부 산하의 공공기관의 임원으로 활동 중이다.

블랙리스트 피해자 상당수, 공공기관에서 역할 

블랙리스트 피해자의 현재 모습.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블랙리스트 피해자의 현재 모습.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배우 김여진씨는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국가정보원 심리전단이 배우 문성근씨와의 합성사진을 작성해 유포하는 바람에 피해를 입었다. 2017년 9월 사건이 드러나며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다. 그는 그 즈음 검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기도 했다. 그랬던 김씨는 지난해 1월 영화진흥위원회 비상임이사로 임명됐다. 임기는 2년이다.

영화진흥위에는 블랙리스트 피해자 여럿이 중책을 맡았다. (사)한국영상위원회 사무총장 등을 지낸 영화인 유창서씨와 영화 ‘놈놈놈’, ‘변호인’, ‘밀정’ 등을 제작한 영화인 최재원씨는 김여진씨와 같은 날 비상임이사가 됐다. 최씨는 2017년 5월 서울환경영화제에서 ‘블랙리스트 대표 영화인 변호인을 제작했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 어워드’를 받았다.

세월호 참사 관련 문화예술인 선언에 이름을 올린 영화감독 이미연씨도 블랙리스트 피해자였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6월 영화진흥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활동했던 그는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2월부터 임기 3년의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 등에서 사회를 맡았다는 이유 등으로 블랙리스트에 오른 배우 권해효씨는 2018년 8월 한국영상자료원 비상임이사가 됐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제도개선 위원장을 맡았던 이원재씨는 지난해 5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비상임이사가 됐다. 그는 진상조사위의 대변인도 맡으며 언론을 상대로 브리핑하는 역할을 했다.

연예기획사 ‘다음기획’(현 디컴퍼니)은 박근혜 정부에서 블랙리스트 단체로 지목됐다. 소위 ‘좌파 연예인’으로 분류된 가수 윤도현씨와 개그맨 김제동씨의 소속사였고,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과 2011년에는 두 번이나 세무조사를 받았다.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2002년부터 2007년까지 뮤직컨텐츠 사업본부장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다음기획의 대표였던 김영준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은 2017년 임기 3년의 원장직에 임명됐다. 그는 지난해 연말 임기가 1년 연장돼 지금도 현직이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