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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선 노인 접종 미룬 정부…WHO "아스트라 연령 상관없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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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15일 충북 청주시 오송읍 질병관리청 브리핑실에서 코로나19 예방접종 시행 관련 내용을 설명 하고 있다.뉴스1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15일 충북 청주시 오송읍 질병관리청 브리핑실에서 코로나19 예방접종 시행 관련 내용을 설명 하고 있다.뉴스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국내 접종을 앞두고 정부가 코로나19 감염에 가장 취약한 고령층의 접종 시기를 미뤄 논란이 예상된다. 당초 접종 최우선 순위에 올랐던 요양병원 65세 이상 노인 접종은 이르면 4월에야 가능할 전망이다.

정은경 코로나19 예방접종 대응 추진단장(질병관리청장)은 15일 브리핑을 열고 “우선 요양병원, 요양시설 등 고령층 집단시설의 만 65세 미만 입원ㆍ입소자와 종사자를 대상으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예방접종을 시작하고, 만 65세 이상 연령층에 대해서는 백신의 유효성에 대한 추가적인 임상정보를 확인한 후에 예방접종전문위원회 심의를 거쳐 접종방안을 확정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정부는 최우선 접종 대상이라고 이야기해온 고령층의 접종 시기를 미뤘다. 유럽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고령층 효과성 논란이 이어지자 추가 임상 자료를 확인한 뒤 접종하겠다는 것이다. 정 단장은 “만 65세 이상 연령층에 대해서는 백신의 유효성에 대한 추가 임상 정보를 확인한 후(3월 말 예상) 예방접종전문위원회 심의를 거쳐 접종 방안을 확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예방접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접종률을 높이는 게 중요한데 효과 논란이 있는 고령층 접종을 예정대로 강행할 경우 신뢰성에 문제가 생겨 접종률을 떨어뜨릴 수 있단 점도 언급했다.

정 단장은 “안전성과 면역원성은 이미 확인돼서 중증(진행)과 사망을 예방할 효과가 있다는 판단이 있었지만, 더 명확한 효과에 대한 근거를 확인한 후에 접종을 순차적으로 하자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정부는 3월말 추가 임상 자료를 토대로 고령층에 대한 접종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정부 계획대로 임상 자료가 오지 않을 경우 고령층 접종은 다른 백신이 도입되는 5월 이후까지 연기될 수 있다. 국내 고령층의 코로나19 사망률(80대 20.89%, 70대 6.41%)을 고려하면 접종이 늦어질수록 사망자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봄철 4차 대유행이 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어 더욱 우려된다.

오락가락 정부 발표, 의료진에 책임 떠넘기기 

정부는 이번 발표 전까지 고령층 접종 여부를 놓고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1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아스트라제네카 허가 심사 첫 관문인 ‘백신 안전성ㆍ효과성 검증 자문단’ 회의 결과 “고령층에 접종해도 된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했다. 자문단 다수 의견은 “임상 참여 대상자 중 고령자 수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고령자 투여를 배제할 수 없다”로 기울었다고 한다. 자문단 분석 결과 고령자 660명을 대상으로 한 예방 효과 평가에서 접종 후 감염 사례는 경증 환자 1명에 그쳤다.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성질(면역원성)도 성인 집단과 큰 차이가 없었다. 또 고령자 2109명을 대상으로 한 안전성 시험에서도 고령자의 접종 후 이상반응 발생률은 65세 미만 성인과 비슷하거나 낮은 수준이었다고 자문단은 밝혔다. 중대한 이상 사례도 보고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안전성에 문제가 없고, 효과성 입증 자료가 다소 부족하지만 접종에 문제 없다는 결론이었다.

그래놓고 사흘뒤에 열린 중앙약사심의위원회(중앙약심)에서는 ‘18세 이상에게 접종할 수 있다’는 허가 권고를 내놨다. 그러면서 65세 이상에 대해서는 질병관리청 예방접종전문위원회에서 추가 논의해야 한다고 조건을 달았다.

이후 정부 입장은 또 달라졌다. 지난 8일 질병청이 전문가들을 초청해 연 코로나19백신 접종 관련 시민참여형 특집 브리핑에서는 “65세 이상이라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는게 좋다”는 메시지를 냈다. 이날 브리핑에 나선 남재환 가톨릭의대 교수는 “80대 어머님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을 받게 할 거냐 묻는다면, 저는 당연히 맞으시라고 권유해드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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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식약처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국내 사용을 허가하면서 ‘사용상 주의사항’에 “65세 이상의 고령자에 대한 사용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문구를 달았다. 김강립 식약처장은 “의사가 접종 대상자의 상태에 따라 백신 접종으로 인한 유익성을 충분히 따져 결정하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허가를 내주면서 책임은 의료진에게 떠넘긴 셈이다. 그러다 접종하라는 거냐 말라는 거냐는 의료 현장의 반발이 커지자 끝내 65세 이상 접종을 미뤄버렸다. 정부의 이런 태도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국민 신뢰에 흠집을 낼 수밖에 없다. 그새 고령층 근거를 제한해야 한다는 새로운 과학적 근거가 나온 것도 아니다.

영국 브라이언 핀커(82)가 지난달 4일 세계 최초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고 있다. AP=연합뉴스

영국 브라이언 핀커(82)가 지난달 4일 세계 최초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고 있다. AP=연합뉴스

WHO 전문가 그룹 "65세 이상 접종 가능" 

오히려 세계보건기구(WHO)의 전문가 자문단인 SAGE(The WHO Strategic Advisory Group of Experts on Immunization)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65세 이상 고령층에 접종해도 관계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WHO는 조만간 아스트라제케나 백신의 긴급사용승인 여부를 결정할 전망이다. WHO SAGE를 이끄는 알레한드로 크라비오토는 “긴급성을 가장 먼저 생각했다. 환자들의 중증화와 사망을 막아야 한다는 얘기다. 매일 전 세계에서 코로나19로 사망하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앞서 유럽의약품청(EMA)는 만 18세 이상 연령에 관련 없이 접종 가능하다는 권고를 내놨다. 아스트라제네카 종주국인 영국은 만18세 이상 성인에 대해 연령제한 없이 이미 접종하고 있다. 300만명이 접종했다. 반면 고령층에 대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제한한 나라도 있다. 고령층에 대한 백신 효과를 입증할만한 임상시험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독일ㆍ프랑스 등은 65세 미만에만 접종하도록 했다. 다만 이들 나라에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사용 연령을 제한하더라도 화이자ㆍ모더나 등 대안이 있다. 한국과 상황이 다르다.

백신별 접종 계획.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백신별 접종 계획.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은 "만약 백신 접종 전 4차 유행 시작돼 요양 병원 등에서 집단 확산되면 억울하게 사망하는 분들이 생긴다"라고 우려했다. 정 교수는  "식약처가 허가를 내주면서 의사들에게 책임을 떠넘긴 것부터 문제다. 우리는 아스트라제네카 외에 다른 백신이 하나도 없는데 그런 권고사항을 집어넣어선 안 되는 거였다. 의사한테 판단을 미루니 의사단체가 접종을 반대할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김신우 경북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항체 생성에 대한 자료를 보면 노인에게도 유효한 효과가 나올 거라고 기대된다. 정부의 이런 신중한 태도는 아마 근거가 부족한데 진행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 때문일 것 같다. 정책 결정하는 데 대한 비난을 의식해서 결정한 거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이에스더ㆍ이우림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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