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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쁨 받는 며느리? 일종의 세뇌 같은 거죠"…설연휴 대박난 '며느라기' 수신지 작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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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화제 속에 종영한 웹드라마 '며느라기'의 동명 원작 웹툰 중 며느라기에 대해 설명한 부분. [사진 귤프레스]

화제 속에 종영한 웹드라마 '며느라기'의 동명 원작 웹툰 중 며느라기에 대해 설명한 부분. [사진 귤프레스]

직장인인 며느리 민사린(박하선)이 출장을 간다고 하자, 아들 구영(권율)이 밥 굶을 걱정부터 하는 시어머니(문희경), 사위 출장갈 땐 보양식을 챙겨준다. 시할아버지 제사 준비를 맡게 된 사린에게 남편 무구영은 “내가 빨리 가서 도와줄게”라고 말한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익히 봐온 ‘시월드’ 풍경이라면, 웹드라마 ‘며느라기’는 한국 사회가 당연시해온 이런 가부장적 인식들을 따끔하게 꼬집으며 문제 제기를 한다. “구영아, 나는 할아버지 얼굴도 본 적 없거든. 내가 너를 돕는거라고 생각되지 않니?” 주인공 사린의 대사다.

가부장제 시집살이 꼬집어 1700만뷰

카카오TV가 지난해 11월부터 방영한 이 12부작 웹드라마는 동갑내기 남편 구영과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나와 결혼 후 맞벌이 부부가 된 사린이 시집살이하며 겪는 이야기다. 현실적인 부조리에 사이다 대사를 매회 20분 안팎 에피소드에 버무려내 12주간 누적 조회수 1700만 뷰를 넘어섰다. 설연휴를 맞은 지난 13일 특별 편성한 전편 무료 스트리밍은 뜨거운 호응 속에 4시간반 만에 230만 뷰를 기록했다.

시집살이에 울컥…설연휴 4시간반 만에 230만뷰

'며느라기' 웹툰 주인공 민사린과 드라마 주연을 맡은 박하선.   [사진 귤프레스ㆍ카카오TV]

'며느라기' 웹툰 주인공 민사린과 드라마 주연을 맡은 박하선. [사진 귤프레스ㆍ카카오TV]

온라인엔 “속 터지는 며느라기” “우울해지고 화난다” 같은 댓글이 많다. 집집마다, 입장에 따라 갑론을박도 벌어진다. 울컥하면서도 보게 만드는 생활밀착형 일화들은 수신지 작가의 동명 원작 웹툰부터 검증된 바. 2017~2018년 인스타그램‧페이스북에 연재된 이 웹툰은 팔로워 수가 60만을 돌파하며 인기를 끌었다.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오늘의 우리만화상’도 받았다.
“이미 많은 독자를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드라마는 확실히 달라요. 실제 배우가 연기하다보니까 더 화도 나고 울었다는 분도 계시고, 실제 이야기처럼 받아들이셨던 것 같아요.”
10일 전화로 만난 수신지 작가의 말이다. 웹툰 연재 중 판권을 계약해 3년 만에 드라마가 나왔다. 지난 12월 그는 직접 운영하는 출판사 귤프레스를 통해 낙태죄를 다룬 새 웹툰 『곤』 1, 2권도 펴냈다. 오는 21일까지 경남웹툰캠퍼스가 홈페이지(www.gnwc.or.kr)에서 온라인 VR 방식으로 무료 진행 중인 웹툰 전시회 ‘티격태격 가족웹툰전’에도 ‘며느라기’로 참여하고 있다. “‘며느라기’ 이후 설‧추석 명절이 저한테 가장 바쁜 대목이 됐다”며 웃었다.

수신지란 필명으로 얼굴, 신분을 가린 채 활동 중인 작가가 참여 중인 온라인 무료 전시를 소개하는 자신의 캐릭커처를 직접 보내왔다. [사진 수신지]

수신지란 필명으로 얼굴, 신분을 가린 채 활동 중인 작가가 참여 중인 온라인 무료 전시를 소개하는 자신의 캐릭커처를 직접 보내왔다. [사진 수신지]

‘며느라기’ 드라마는 어떻게 봤나.  

“연재할 땐 바빠서 즐길 수가 없었는데 드라마는 제 손을 벗어난 일이라 시청자의 한 명으로 너무 재밌게 봤다.”

주연 박하선의 싱크로율도 화제가 됐다.  

“사린의 머리는 만화스럽게 그리려고 그냥 단발이나 파마가 아니라 ‘구름머리’라고 설정했는데 그걸 실제로 했더라. 원작을 살리려는 마음이 고마웠다. 이광영 PD에게 듣기로 박하선씨가 긴머리였는데 본인이 원작과 최대한 맞춰 자르겠다고 했다고 한다. 표정연기도 탁월했다. 드라마 초반에 시어머니가 사린에게 남은 키위를 ‘먹어치워라’ 하면서 줄 때 받아먹는 표정이, 뭐라 말하기 미묘한 상황을 다 보여줬다.”

드라마가 웹툰과 달라진 점도 있나.  

“만화는 두 사람이 어떻게 연애하고 결혼했는지 과거사를 중간중간 넣었는데 드라마는 매화 앞부분은 과거, 뒷부분은 현재 결혼생활을 배치해 이렇게 연애했던 부부가 왜 이렇게 됐을까를 계속 보여주는 게 좋았다. 만화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게 결말에서 주례 선생님이 주인공 사린에게 ‘며느라기’를 주는 (과거 결혼식) 장면인데, 드라마는 처음부터 중요한 자리에 넣고 비중도 늘린 점이 제 의도를 이해해주신 것 같았다.”

며느라기? 일종의 세뇌 같은 거죠

 드라마 '며느라기'에서 며느리 사린(박하선)이 부엌일을 하는 동안 남편(권율)과 시댁 식구들은 TV를 보고 있다. [사진 카카오TV]

드라마 '며느라기'에서 며느리 사린(박하선)이 부엌일을 하는 동안 남편(권율)과 시댁 식구들은 TV를 보고 있다. [사진 카카오TV]

이 웹툰이 그리는 며느라기란 ‘사춘기, 갱년기처럼 며느라기가 되면 겪게 되는 시기’. 부연하면 시댁 식구들한테 예쁨 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어 자신을 과도하게 희생하며 무리하는 시기다. 웹툰과 드라마 모두 결혼식 날 사린이 “며느라기를 받으시겠습니까?” 하는 주례 선생님의 말에 얼떨결에 동의하며 마법에 걸리듯 시집살이에 뛰어들게 된다는 판타지적 설정을 가미했다. 이후 불합리한 현실에 부대끼며 ‘며느라기’에서 서서히 벗어나는 여정이 펼쳐진다.

“며느리가 되면 약간 ‘기(氣)’ 같은, 며느라기라는 걸 받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만화였어요. 일종의 세뇌같은 거죠. 미디어나 보고 자란 엄마의 모습 등을 통해서요.”

드라마 '며느라기'에서 시댁과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엇갈리는 큰며느리 혜린(백은혜, 왼쪽)과 둘째며느리 사린. [사진 카카오M]

드라마 '며느라기'에서 시댁과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엇갈리는 큰며느리 혜린(백은혜, 왼쪽)과 둘째며느리 사린. [사진 카카오M]

‘며느라기’에 대한 인상적이었던 반응은.

“웹툰을 SNS로 올렸기 때문에 DM(다이렉트 메시지)‧메일도 많이 받았다. 댓글 중엔 자신의 육아‧직장 이야기를 보내주신 분도 많았다. 스토리가 다 짜여있어서 넣을 순 없었지만. 한 외국분은 남편이 한국 사람인데 남편한테 이 책을 선물하겠다고, 자기 심정을 다 얘기하기엔 한국말이 아직 서툴렀는데 이 만화 안에 내 마음이 들어있다고도 하더라.”

세대별로 다른 반응도 있을까.  

“20대 여성들이 저에게 가장 호의적이다. 도서관 강연 땐 60대 이상까지 세대가 많이 섞여 있는데 오신 분들끼리 토론도 벌어진다. 연세 있으신 분들은 시어머니한테 감정 이입해서 명절에 가족끼리 음식 만들어 먹고 그런 게 왜 싫은지 모르겠다고 서운해하시기도 한다. ‘며느라기’가 대화를 이끌어내는 주제잖나.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재미있다.”

대만 출간 이어 일본·유럽 출시 논의

서양화를 전공한 뒤 동화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해온 그는 2012년 난소암 투병기를 다룬 자전적 작품 『3그램』으로 만화를 시작했다. 수신지란 필명으로 신분을 밝히지 않고 활동해왔다. 실제 아이 없는 맞벌이 부부란 정도만 밝힌 상태다. 시월드에 대해 솔직하게 그려낼 수 있었던 배경으로 “평소 시댁‧친정과 자주 만나는 편”이란 점을 꼽았다. “평소 왕래가 많지 않은 가정은 명절이 진지하고 큰 이슈일 수 있는데 저는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웹툰 연재를 시작하고 지난 4년간 “명절에 제사를 안 지내거나 외식을 하고 양가에 번갈아 간다거나 하는 식의 변화가 느껴진다. ‘며느리기’를 남편과 보고 명절 보내는 방법을 바꿨다는 피드백도 들었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저도 명절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은 없어졌다. 남편과 제가 각자 보내고 싶은 방향으로 보내고 있다”면서다. “‘며느라기’가 되게 구식의 이야기가 되길 바라는데, 여전히 공감한다는 게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슬퍼요.”

경남웹툰캠퍼스가 홈페이지(www.gnwc.or.kr)를 통해 온라인 VR 방식으로 무료 진행 중인 웹툰 전시회 ‘티격태격 가족웹툰전’에 참여한 ‘며느라기’ 포스터. [사진 경남웹툰캠퍼스]

경남웹툰캠퍼스가 홈페이지(www.gnwc.or.kr)를 통해 온라인 VR 방식으로 무료 진행 중인 웹툰 전시회 ‘티격태격 가족웹툰전’에 참여한 ‘며느라기’ 포스터. [사진 경남웹툰캠퍼스]

‘며느라기’ 웹툰은 이미 대만에 출간된 데 이어 일본‧유럽 출시도 논의 중이다. 향후 작품 활동에 대해선 “『곤』을 연재할 때 아이한테 남편 성을 쓸지 (아내 성을 쓸지) 혼인신고할 때부터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던 분들이 정말 많다는 걸 댓글 반응을 통해 느꼈고, 결혼한 저도 이런 항목을 잘 몰랐다가 작품을 준비하며 알게 됐다”고 돌이키며 “이전에 무엇을 했기 때문에 어떤 것을 해야 한다는 테두리 없이, 그때그때 관심 갖는 주제의 작업을 자유롭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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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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