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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그 누구보다 빠르게 봄을 맞이하려는 식물의 전략

중앙일보

입력

아무리 춥다 춥다 해도 시간은 흐르고 계절은 점차 변하지요. 이러한 계절의 변화는 어떻게 해서 생겨났을까요. 바로 지구가 자전하는 축이 기울었기 때문인데요. 지구 자전축은 23.5도 기울어 있습니다. 이에 따라 태양의 고도가 달라지고, 태양 광선이 지표면을 비추는 일조시간에 햇볕이 얼마나 세게 얼마나 오래 내리쬐는지에 따라 계절의 변화가 생기는 거예요.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11 로제트

우리나라에선 일 년을 24절기로 나눠 한 달에 두 번씩 절기가 찾아옵니다. 2월에는 입춘과 우수가 있죠. 올해의 경우 2월에 설날도 있습니다. 설날은 달의 움직임을 따른 음력의 1월 1일이죠. 이와 달리 절기는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도는 길인 황도상에서 태양의 위치에 따라 구분한 것이에요. 태양이 황도를 따라 15도씩 돌 때마다 하나씩 해서 한 해를 스물넷으로 나눠 기준을 세웠죠. 그래서 설날은 절기는 아닙니다.

로제트 식물

로제트 식물

우리는 음력이든 양력이든 모두 달력을 보고 알지만 자연에 사는 생명체들은 달력 없이도 기가 막히게 시간의 흐름을 알고 저마다 계절에 맞게 적응해 살아가요. 봄을 알리는 입춘이 지나 '슬슬 봄맞이를 준비하는 동식물들이 있을까' 하고 나들이를 나서다 보면 땅속에서 조그맣게 솟아 나올 준비를 하는 새싹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작고 여린 새싹의 모습이 아니라 이미 꽤 자라 큰 모습의 풀을 만나게 되기도 해요. 도심에서도 공원이나 화단을 보면 살아있는 풀을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 심지어 시장에 가면 벌써 냉이가 나와 있죠. 그걸 보고 “와, 벌써 냉이가 나왔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냉이의 비밀을 알면 아마 깜짝 놀랄 겁니다.

봄 식재료 냉이의 비밀
사실 봄나물 냉이는 지난해 가을에 이미 돋아나 있었습니다. 가을에 싹이 돋아서 겨울을 견디고 봄에 자라나 꽃을 피우는 거예요. 이런 풀들을 살펴보니 장미를 닮았다고 해서 ‘로제트 식물(rosette plant·방석식물·근생엽)’이라고 부릅니다. 냉이를 비롯해 민들레·개망초·달맞이꽃·뽀리뱅이·꽃마리 같은 풀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로제트 식물

로제트 식물

로제트 식물은 풀인데 어떻게 추운 겨울을 견디는 걸까요? 풀임에도 추위를 이기기 위해 몇 가지 멋진 작전을 세운답니다. 첫 번째는 키를 낮추고 바닥에 바짝 엎드리는 작전입니다. 줄기가 짧고 잎을 땅에 붙은 듯이 내보내 엎드려서 겨울의 추운 바람을 피하는 거죠. 이때 잎을 넓게 사방으로 뻗어서 적은 양의 햇빛이라도 최대한 받는 게 두 번째 작전입니다. 세 번째는 땅에 바짝 붙은 만큼 땅에서 올라오는 지열을 이용하는 거예요. 건강한 숲속 땅이라면 낙엽이나 다양한 미생물들에 의해서 온도가 조금 더 높거든요. 꽤 많은 종류의 로제트 식물은 몸에 잘게 솜털이 나는데, 이 털도 추운 겨울을 견디는 데 활용하죠.

로제트 식물

로제트 식물

그렇다면 로제트 식물은 왜 가을에 싹을 내서 힘든 겨울을 견디는 걸까요? 다른 식물이 싹을 내기 전에 미리 싹을 내고 있다가 봄이 되어 곤충들이 활동을 시작할 때 누구보다 먼저 꽃을 피워서 꽃가루받이를 하기 위함입니다. 로제트 식물 대부분은 1년에 두 번 이상 번식하는데요. 아마도 다른 식물보다 더 많이 번식하고자 하는 의도겠지요? 키도 작고 땅에 붙어 대단해 보이지 않았던 풀들에도 이렇듯 놀라운 삶의 전략이 숨어 있습니다.

로제트 식물

로제트 식물

그런데 만약 춥고 힘든 겨울이 없다면 로제트 식물은 어떻게 될까요? 겨울이 없다면 다른 풀들도 얼어 죽지 않고 이 시간을 지나겠지요. 그러면 애초에 경쟁을 피해 누구보다 빨리 꽃가루받이를 하려던 로제트 식물들은 유리함을 잃어버립니다. 추운 겨울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풀은 죽게 되고 로제트 식물만 살아남는 것이거든요. 자신을 괴롭히는 시련이지만 이 시련을 기회로 삼아버린 로제트 식물. 우리의 삶 또한 이와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고자 한다면 그 사람에겐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준비만 잘해 둔다면 다른 사람의 삶과 다른 멋진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글·그림=황경택 작가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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