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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때린 걔가 스타?"…배구계 '학폭 미투' 연이어 터진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학폭(학교 폭력) 미투'가 배구계를 흔들고 있다. 일부 선수, 배구를 뛰어넘어 체육계 전체로 번질 가능성도 높다.

흥국생명 이재영·다영(25) 쌍둥이 자매는 지난 10일 소셜미디어에 자필 사과문을 올렸다. 같은 날 온라인 커뮤니티에 "중학생 시절 함께 배구를 하던 두 사람에게 학교 폭력을 당했다"는 글이 올라온 뒤였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두 사람을 처벌해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피해자는 "최근 소셜 미디어에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은 정말 힘들다'는 글을 올린 걸 보고, 자신을 돌아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고 했다. 이재영과 다영 자매는 피해자에게 직접 사과의 뜻을 전했다. 두 선수는 11일 도로공사전에 결장했고, 현재도 팀에 합류하지 못했다. 다른 피해자의 글이 추가로 올라오기도 했다.

13일엔 남자배구에서 비슷한 폭로가 이어졌다. OK금융그룹 송명근(28)과 심경섭(30)에게 학창 시절 가혹 행위를 당한 후배가 커뮤니티를 통해 이를 알렸다. OK금융그룹은 두 선수의 사과문을 밝혔다. 피해자는 "진심 어린 사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구단 관계자는 "두 선수 모두 자숙하겠다는 뜻을 밝혀 당분간 출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쌍둥이는 V리그를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다. 송명근 역시 국가대표를 거친 팀의 간판 선수다. 그만큼 충격파는 크다. 구단들은 자체 징계를 고민 중이다. 한국배구연맹은 "구단 징계 이후 상벌위원회를 열 계획"이라고 했다.

폭력 문제는 일부 종목만의 차원은 아니다. 프로야구도 '학폭' 문제로 곤욕을 치렀다. NC 다이노스가 드래프트에서 지명한 김해고 투수 김유성도 학폭 논란에 휩싸였고, 결국 NC가 지명을 철회했다. 2018년 입단한 키움 히어로즈 투수 안우진도 입단 이후 구단 자체 징계(50경기 출장 금지) 및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국가대표 자격 3년 정지) 징계를 받았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트라이애슬론 선수 고 최숙현 역시 배경이 학교가 아닐 뿐 폭력의 피해자였다. '학폭 미투'는 스포츠계에서 만연된 폭력적이고 위압적인 분위기가 드러난 사례일 뿐이다. 다른 스포츠에서도 '학폭 미투'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프로축구, 농구단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체육 철학자인 김정효 서울대 외래교수는 "과거라면 학교 폭력은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젊은 세대는 도덕성에 대한 잣대가 강해졌다. 조국, 윤미향 사태 등 정치권에서도 도덕성 시비가 끊임없이 일어난다. '학창시절 날 때린 애가 스타가 된 걸 보면, 제대로 된 사회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했다.

김유겸 서울대 체육학과 교수는 "쌍둥이 자매는 배구를 잘하는 데다, 어머니가 선수 출신이라 학창시절 특권을 누리는 삶을 살았을 가능성이 높다. 자신이 혜택을 받았는지 최근까지 몰랐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이어 "한국 교육은 아이들에게 체계적인 훈육을 하지 않는다. 그런 삶이 반영됐을 수 있다"고 했다.

지난해 8월 '최숙현법'이 통과됐지만, 여전히 체육계엔 폭력을 포함한 부조리가 남아 있다. 김정효 교수는 "스타일수록 징계는 강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요구를 이해하고, 피해자가 납득할 징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유겸 교수는 "일벌백계했을 때 분노가 해소되겠지만, 그동안 효과가 있었던 적이 있었나.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먼저"라고 했다.

성적 위주의 현재 스포츠계를 재편하기 위한 방편은 무엇일까. 대한체육회가 중점사업을 두는 '학교 운동부가 아닌 스포츠 클럽 강화'와 '공부하는 학생 선수'가 모범 답안으로 꼽힌다. 그러기 위해선 체육계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 김유겸 교수는 "(지도자와 부모가 원하더라도)비정상적인 합숙훈련을 철폐하고, 학생답게 수업을 받고 학교생활을 해야 한다. 좁은 운동부 조직에서만 경쟁하다 보면 인권 사각지대에 몰린다"고 지적했다.

김효경·박린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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