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후·유동성·코로나…'제로 물가' 속 ‘3차 애그플레이션’ 올까

중앙일보

입력 2021.02.14 06:00

“물가 상승률이 0%대라니 헛웃음이 나온다."  

2일 오후 서울의 한 대형마트 채소코너에서 한 시민이 파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2일 오후 서울의 한 대형마트 채소코너에서 한 시민이 파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지난 2일 발표된 통계청의 ‘1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다룬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105.79)는 1년 전보다 0.6% 올랐다. 지난해 10월부터 4개월 연속 0%대 증가다. 정부 통계로는 ‘제로 물가’지만 '밥상 물가'와의 괴리는 크다. 지난해 태풍·장마로 수확량이 준 채소와 과일에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로 달걀값까지 모두 올랐다.

지난해 12월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 진열된 즉석밥 물품.[연합뉴스]

지난해 12월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 진열된 즉석밥 물품.[연합뉴스]

명절 이후가 더 걱정이다. 각종 식품 공산품 가격 인상이 기다리고 있다. ‘즉석밥’ 1·2위 업체 CJ제일제당과 오뚜기는 설 연휴 이후 제품 가격을 6~7% 올린다. 지난 몇 년간 가격을 동결해온 라면 업체도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쌀과 밀 등 곡물 가격 상승에 식품 관련 공산품 가격도 덩달아 오르는 양상이다.

'3차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의 전조로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애그플레이션은 ‘농업(agriculture)’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친 말이다. 농산물 등 식료품 가격 상승이 일반 물가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뜻한다.

조미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옥수수와 밀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재고를 소진한 음식료 업체로선 가격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곡물 가격 상승이 당초 예상보다 장기화하며 애그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이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세계 식량 가격지수 6년 만에 최고치

지난 2019년 2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한 농민이 수확을 하고 있다.[AP=연합뉴스]

지난 2019년 2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한 농민이 수확을 하고 있다.[AP=연합뉴스]

세계 곡물 시장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오른 가격이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지난 7일 발표한 세계 식량 가격지수(2014~16년 평균치=100)는 지난달 113.3으로 전달보다 4.3% 올랐다. 8개월 연속 상승하며 2014년 7월(116.4)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품목별로도 곡물(124.2)의 경우 7.2% 상승한 것을 비롯해 나머지 4개 품목군(유지류·육류·유제품·설탕) 모두 가격이 올랐다.

FAO는 식량 가격이 더 오를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압돌레자 압바시안 FAO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식량 인플레이션은 이제 현실”이라고 말했다.

급등하는 세계 식량 가격지수.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급등하는 세계 식량 가격지수.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2000년대 이후 애그플레이션은 2번 나타났다. 1차 애그플레이션(2006~2008년)은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의 곡물 수요가 늘어난 데다 기상 이변으로 식량 생산량이 들쑥날쑥하며 본격화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저금리·약달러 정책으로 풀린 돈이 곡물을 포함한 상품 시장으로 유입되며 가격을 끌어올렸다.

2차 애그플레이션(2011~12년) 때도 유럽발 재정 위기로 인한 세계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미국과 유럽이 통화량을 늘리며 곡물 등 상품 가격이 올랐다. 여기에 미국과 러시아 등 주요 곡물 생산 국가에서 극심한 가뭄이 발생하며 가격이 급등했다.

기상이변에 코로나 변수까지 악재 겹쳐

지난 2018년 중국 광시좡족 자치구의 한 돼지 사육 농장에서 새끼 돼지들이 어미에게서 젖을 먹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018년 중국 광시좡족 자치구의 한 돼지 사육 농장에서 새끼 돼지들이 어미에게서 젖을 먹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현재 상황은 1·2차 애그플레이션 때와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우선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의 식량 수요가 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해부터 중국에서 아프리카 돼지열병(ASF)이 한풀 꺾이면서 돼지 사육이 정상화되며 곡물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제어에 성공한 인도 역시 식량 소비가 늘고 있다.

기상이변도 있다. 지난해 미국·중국·유럽 등지에선 폭염과 집중호우, 가뭄 등이 나타나 작물 수확에 큰 타격을 입었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오는 5월까지 라니냐 현상이 지속하며 북미와 남미 등 주요 곡물 수출국의 생산과 수출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코로나19 변수까지 더해졌다. 국가 간 이동제한으로 비료·살충제 등의 공급과 농산물 파종과 수확 등에 필요한 노동력의 원활한 이동이 어려워졌다. 물류 마비에 따른 식량 공급망 혼란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16년 러시아 스타브로폴 지역의 밀밭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016년 러시아 스타브로폴 지역의 밀밭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각국이 식량 안보를 강화하며 농산물 수출 제한과 관세 등의 식량 보호주의 움직임도 농산물 가격을 들썩이게 하는 요인이다. FT는 “최근 밀 가격 상승에는 세계 최대 밀 수출국인 러시아가 자국의 밀 공급이 달리자 수출관세를 올려 해외 공급량을 줄인 탓이 크다”고 전했다.

조 바이든 정부의 바이오 연료 생산 확대 정책에 따른 바이오 연료 수요 증가도 옥수수와 대두 가격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기에 달러 약세 속 전 세계적으로 풀린 막대한 돈이 농산물에 유입되면서 식량 가격의 추가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김효진 KB증권 연구원은 “미 농무부는 밀 등 주요 곡물의 수요대비 재고가 앞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지만 작황 부진 등으로 가격이 추가 상승할 것이란 시각이 많아지고 있다”며 “물가 변동 요인으로 식료품 가격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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