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인사이드]전투기 개발 속도 높이는 한국, 히틀러의 실패를 피하려면

중앙일보

입력 2021.02.13 11:00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KFX)와 같은 국산 무기 개발 사업은 서둘다 낭패를 보는 일이 없도록 천천히 가더라도 꼼꼼하게 진행해야 한다. [사진 한국항공우주산업]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KFX)와 같은 국산 무기 개발 사업은 서둘다 낭패를 보는 일이 없도록 천천히 가더라도 꼼꼼하게 진행해야 한다. [사진 한국항공우주산업]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의 서부전선은 4년 동안 젊은이 수백만 명이 고통 속에 죽어간 아비규환이었다. 이런 악몽 때문에 1939년 10월 폴란드를 점령한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가 곧바로 프랑스를 침공하라고 지시하자 군부가 반대하고 나섰다.

여기에 더해 프랑스와 섣부른 전쟁은 독일을 멸망시킬 행위라며 쿠데타 모의까지 있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히틀러의 의지를 꺾지 못하고 9차례 연기 끝에 1940년 5월 10일 독일군은 국경을 넘었다.

파리를 점령한 후 시가행진을 벌이는 독일군. 전투력은 연합군에 뒤졌음에도 독창적인 전략으로 예상치 못한 대승을 거두었다. [사진 Wikipedia]

파리를 점령한 후 시가행진을 벌이는 독일군. 전투력은 연합군에 뒤졌음에도 독창적인 전략으로 예상치 못한 대승을 거두었다. [사진 Wikipedia]

그리고 불과 6주 만에 프랑스는 항복했다. 독일 자신도 놀란 이런 기적을 연출할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전략 덕분이었다. 집단화한 기갑부대가 공군의 호위를 받으며 상대의 깊숙한 종심까지 순식간에 파고 들어가 저항 의지를 꺾어버린, 이른바 전격전을 실현했다.

독일은 프랑스보다 전차 보유 수량이 1000대나 적었지만, 분산 배치한 프랑스와 달리 전차 투입을 집중해 공격력을 극대화했다. 한마디로 선택과 집중을 적절히 구사했다.

이처럼 독일은 전차를 처음 만들지 않았지만, 전차를 이용한 새로운 전쟁 기법을 선도한 나라였다. 그런데 우려와 달리 너무 쉽게 승리하면서 문제점도 함께 잉태했다.

사실 재군비를 선언하기 전까지 독일은 전차의 개발과 보유를 금지당했기에 이 분야의 시작은 상당히 늦었다. 그래서 막연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제2차 세계대전 초기에 경쟁국 전차와 비교했을 때 독일제 전차 성능은 상당히 떨어졌다.

76mm 주포를 탑재한 초기형 T-34 전차. 독소전쟁 초기에 모든 독일제 전차를 압도하는 뛰어난 성능을 발휘했다. [사진 Wikipedia]

76mm 주포를 탑재한 초기형 T-34 전차. 독소전쟁 초기에 모든 독일제 전차를 압도하는 뛰어난 성능을 발휘했다. [사진 Wikipedia]

이는 독일 군부가 툭하면 재발하는 히틀러의 전쟁 개시 요구에 몸을 사렸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러나 프랑스를 쉽게 꺾어 버리자 이런 문제를 망각했다. 그런 상황에서 1941년 소련을 침공해 6개월 동안 소련군 약 500만명을 소탕하고 약 2000㎞를 진격하는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소련이 항복하지 않고 독일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자 종전은 대책 없이 미뤄졌다.

승승장군 독일, 소련 전차에 막혀 

이때 독일을 당황하게 한 것 중 하나가 소련 전차였다. 특히 T-34 전차는 독일 전차로는 상대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했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결국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초기의 연이은 승리에 안주하면서 잠시 주춤하던 중(重)전차 개발 프로젝트에 속도를 붙였다. 그 결과 1942년 ‘6호 전차 티거(Tiger)’가 전선에 등장했다. 하지만 당대 최강인 티거는 너무 비싸고 제작이 어려워 전선에 충분히 공급하기 어려웠다.

이때 독일이 선택한 방법은 어느덧 그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버린 T-34를 벤치 마킹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1943년 탄생한 중형(中型) 전차가 종전 직전까지 독일의 주력으로 맹활약했을 만큼 뛰어난 성능을 자랑했다. 바로 ‘5호 전차 판터(Panther)’다.

T-34 전차의 경사 장갑 등을 참조해 개발된 ‘5호 전차 판터’. 전쟁 말기에 독일의 주력 전차였으나 히틀러의 조급함 때문에 서둘러 등장해 망신을 겪기도 했다. [사진 Wikipedia]

T-34 전차의 경사 장갑 등을 참조해 개발된 ‘5호 전차 판터’. 전쟁 말기에 독일의 주력 전차였으나 히틀러의 조급함 때문에 서둘러 등장해 망신을 겪기도 했다. [사진 Wikipedia]

하지만 처음부터 맹위를 떨쳤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 모습을 드러낸 1943년 7월, 쿠르스크 전투에서 판터는 한마디로 망신의 주인공이었다.

이때 아직 성능 시험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던 판터가 전투에 동원된 것은 신무기를 사용하고 싶어 하는 히틀러의 조급증 때문이었다. 결국 투입된 전차 184대 중 대다수가 동력과 연료 공급 계통에 발생한 심각한 결함으로 전선을 이탈하면서 겨우 40대만 전투를 벌일 수 있었다.

서둘다 낭패 본 독일의 교훈 살펴야 

이처럼 판터의 첫 실전 결과는 너무 참혹했고 결국 이후 문제점을 해결한 뒤 전투에 투입될 수 있게 되기까지 6개월 정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무기는 적시에 공급이 이루어지면 좋다. 하지만 그것이 판터의 예처럼 검증이 완료되지 않았는데도 배치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현재 한국은 차세대 전투기(KFX), 차세대 구축함(KDDX)처럼 굵직한 여러 사업을 진행 중이다. 엄청난 국력을 투입하는 야심 찬 계획인 만큼 드러난 문제점은 시간이 걸려도 반드시 해결하고 진행하기를 바란다. 서둘다 낭패를 보는 것보다 경우에 따라서는 늦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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