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영·동(강동·성동·영등포·동작구)은 2010년대 이후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에 고립된 국민의힘 입장에서, 더불어민주당의 강남 포위망을 뚫을 혈로(血路)로 여겨진다. 지난해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강남3구 외 지역에선 용산구를 제외하면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강남3구(59.5%)에서 몰표를 받은 뒤 인접구 3곳(강동·영등포·용산)을 뚫어 0.6%포인트 차로 신승했다. 이처럼 이번에도 강·성·영·동 중 최소 2곳 이상에서 역전을 노려야 승산이 있다는 계산이다. 반면 강남3구 바깥 지역을 장악하며 서울 우위를 굳건히 하고 있는 민주당 입장에서 강·성·영·동은 반드시 수성해야 할 보루다.
강동·성동·영등포·동작구가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핵심 승부처로 떠오르면서 이 지역 민심 향배에 관심이 쏠린다. 지표상으로도 강·성·영·동에선 쉽사리 승부 예측을 하기 어렵다. 지난해 총선 때 정당투표에서 범진보(더불어시민당·열린민주당·정의당)와 범보수(미래한국당·국민의당) 진영이 ‘5대4’ 정도로 비교적 접전을 벌인 곳이라서다.
당시 강동구에선 범보수(10만9965표)가 범진보(12만3716표)의 89%, 성동구에선 범보수(5만2037표)가 범진보(6만2738표)의 83%, 영등포구에선 범보수(9만1672표)가 범진보(10만5209표)의 87%, 동작구에선 범보수(9만6672표)가 범진보(11만9141표)의 81% 가량을 득표했다. 서울 전체의 정당 득표 역시 범보수(230만1023표)가 범진보(271만5594표)의 84%를 득표해 이들 4개구의 득표 양상과 거의 일치했다. 서울 민심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단 의미다.
“부동산 정책 실망. 세금 너무 올라” 성토
8일 만난 강동·성동·동작구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번 서울시장 선거의 키포인트는 부동산 문제”라고 강조했다. 동작구 흑석동에서 채소가게를 운영하는 박현용(74)씨는 “이번 선거는 부동산 문제 때문에 민주당에 불리할 것”이라며 “집값을 그렇게 올려놓고 세금만 올려받으려 해서 역효과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작구 사당동에 사는 임모(56)씨는 “나는 문 대통령 지지자라 이전 3주택을 매도해 현재는 1주택자”라며 “정부 부동산 정책에 실망했다. 여전히 문 대통령을 지지하지만 부동산 정책 하나만은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특히 민감하게 반응한 건 집값·공시가가 연쇄적으로 오르며 늘어난 세금 문제였다. 강동구 둔촌동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김모(52)씨는 ‘서울시장’이라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세금이 문제”라며 얼굴을 붉혔다. 김씨는 “많은 사람들이 집값은 올랐지만 손에 쥐는 것 없이 재산세·종부세·건보료만 감당이 안 될만큼 올랐다. 나도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을 찍었지만 민주당에서 누가 나와도 더 이상은 못 밀어준다”고 말했다. 동작구 사당동에 사는 김모(74)씨도 “여야 둘다 지지를 안 했지만 부동산 정책 때문에 야당을 찍으려 한다. 평생 돈 모아서 이제서야 세를 받아 형편에 조금 보태보려는데 세금이 너무 올라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장년층 이상에선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분노가 정권 견제심리로 이어질 것이라 보는 유권자들이 적지 않았다. 성동구 마장동에 사는 신모(50)씨는 “주택 정책이 마음에 안 들어서 야당을 뽑으려 한다”며 “야당이 규제를 다 풀겠다지만 다 풀기야 하겠나. 대책이 마음에 든다기보다 정권을 심판하는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못찍겠다는 여론도 상당
20~40대에선 부동산 정책을 두고 정부를 바라보는 시각이 엇갈렸다. “민주당이 내놓는 공공임대주택 확대 방안 보단 야당의 규제 푸는 공약이 바람직하다”(김모씨. 40세. 사당동)는 의견과 “공공주택을 확대하는 게 규제를 푸는 것보다 낫다”(최모씨. 24세. 사당동)는 주장이 충돌했다. 성동구 마장동에 거주하는 전모(33)씨는 “집값 못잡는다고 비판하는 건 비현실적”이라며 “그럼에도 임기 1년 뿐인 시장이니 정권 견제수단으로 야당을 뽑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부동산 심판론이 야당 지지세로 옮아가지 않을 거란 시각도 상당했다. 강동구 암사종합시장에서 40년째 두부가게를 운영 중인 한모(69)씨는 “이 지역은 과거 민주당 밭으로 통했는데 요즘 동네 여론을 보면 반반”이라며 “국민의힘 찍기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도 상당수 있다"고 말했다. 강동구 둔촌동 자가 주택에 거주하는 배모(65)씨는 “문재인 정부에서 투기를 잡으려고 노력은 무지하게 했지만 속도를 내다보니 역효과가 난 것 같다. 노력은 굉장하다고 생각한다”며 “민주당 후보를 지지할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투표를 하지 않겠다”며 보궐선거 자체에 냉소적 시선도 있었다. 강동구 암사동에서 닭강정을 판매하는 김진숙(64)씨는 “지난해 총선 때와 달리 누가 되든 기대감이 없어서인지 상인들끼리도 얘기를 잘 안한다”며 “그냥 투표하기가 싫다. 예전에는 지역구 의원이 시장 오면 반가워했는데 이제 그마저도 시큰둥하다”고 말했다. 성동구 행당동에 사는 김모(61)씨 역시 “부동산 문제가 심각한데 국민의힘은 서민들을 신경 안 쓰는 것 같다. 이번에 투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을 거론하며 책임론을 거론하는 목소리도 간간히 나왔다. 강동구 암사동에서 닭ㆍ오리를 판매하는 이학수(64)씨는 “박원순 전 시장이 서울시장 되면 안 되는 사람 낙선운동하고 다녔던 사람 아니냐. 자기는 그렇게 깨끗한 척 하더니…찍을 사람 하나도 없다. 투표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성동구 행당동에 사는 노모(46)씨 역시 “원래 민주당 지지자였지만, 민주당 쪽의 안 좋은 일로 보궐선거를 치르다보니 민주당을 뽑아줘도 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한영익·남수현 기자, 김수현 인턴기자 hany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