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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찬호의 시선

추미애도 안한 시위금지 끌어낸 김명수 대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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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김명수 거짓말쟁이” “대법원장 사퇴하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앞에 10일 이런 문구들이 적힌 ‘근조’ 화환이 140여개 늘어섰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정치 중립 위반과 거짓말 논란을 규탄하는 의미로 시민들이 보낸 것이다.

서초서에 ‘김명수 규탄집회’ 우려 #법무부도 허한 집회 이례적 재갈 #‘법관 독립 훼손’이 이유, 적반하장

관리를 맡은 시민단체 ‘자유연대’에 따르면 이 화환들은 일요일인 지난 7일부터 대법원 청사 앞에 놓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8일에는 진열이 멈췄다가 9일부터 재개돼 사흘 만에 140개로 늘어났다. 8일 화환 진열이 ‘멈칫’한 데는 사연이 있다. 관할서인 서초경찰서가  “법관의 직무상 독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규탄 집회를 금지하고, 화환 진열도 “법원의 진·출입을 방해해 법원 기능을 침해할 것이 우려된다”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화환 시위는 문재인 정부 들어 권력의 전횡을 비판하는 민심의 표출 수단으로 정착했다. 지난해 10월 대검찰청 앞에 윤석열 검찰총장 격려 화환이 350여개 놓이고, 11월엔 과천 법무부 청사 앞에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을 비난하는 근조 화환이 340여개 놓였다. 시민단체들은 그 화환 앞에서 정권을 규탄하는 시위를 매일 벌였다. ‘추·윤 전쟁’에 대한 민심이 적나라하게 표출된 현장이었다. 당시 대검은 물론이고 추미애 법무부 장관조차 시민단체의 규탄 시위와 근조 화환 진열을 막지 않았다. 오히려 법무부 청사 관할서인 과천경찰서는 경찰관들이 정기적으로 화환 주변을 순찰하면서 화환이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해줬다고 한다.

그런데 유독 김명수 대법원장 규탄 시위와 화환진열은 경찰이 막겠다고 나서니 배경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화환 진열은 경찰 아닌 구청 소관인 데다 대법원 출입문과 충분히 떨어진 지점에 화환을 진열했는데도 문제로 삼으니 과잉단속이란 비난을 받기 충분하다. 경찰의 이례적인 ‘오버’의 이유는 뭘까. 서초서가 자유 연대에 보낸 집회 금지 통고서에서 실마리가 보였다. “대법원(법원행정처)도 지난 5일 우리 서초서에 ‘규탄 시위가 법관의 독립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귀 단체의 집회시위에 대해 우려를 표한 바 있습니다”란 구절이 그것이다. 대법원은 “경찰이 문의해왔기에 법규에 따라 우려를 표한 것이지 금지를 요구한 적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최고 사법기관이 ‘우려’를 표했다면 경찰이 할 일은 뻔한 것 아닌가.

대법원의 이런 행태는 비겁하기 짝이 없다. 대법원 앞에서 시위는 흔한 일이었다. 자유연대만 해도 2019년~20년에 11차례나 대법원과 서울중앙지법 청사 앞에서 사법개혁 촉구 집회를 개최한 바 있다. 법규를 지키는 한 대법원이 막을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자유연대는 코로나 방역 수칙에 따라 참가 인원을 9인 이내로 제한하고, 시위 주제도 ‘김 대법원장의 정치 중립 위반과 거짓말 규탄’에 한정했다. 따라서 법관 개인이나 개별 재판에 영향을 미칠 사안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사법부가 권력의 전횡에서 독립하는 걸 독려하는 시위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경찰은 “대법원 앞에서 대법원장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 경우 법관의 직무상 독립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했다. 법관의 직무상 독립에 영향을 미친 사람은 “국회에서 무슨 얘기 듣겠나”는 이유로 고등법원 부장판사의 사표를 수리를 거부해 사법부의 독립성을 땅에 떨어뜨린 김명수 대법원장이다. 그 김 대법원장의 잘못을 지적하는 시위를 ‘법관의 독립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막는 대법원과 경찰의 행태는 그야말로 적반하장이다.

더욱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건 집회가 싫으면 싫다고 직접 밝히지 않고 경찰에 ‘우려’를 표해 결과적으로 집회를 막은 발상이다. 법조 출입 기자들에 따르면 김명수 대법원장이 일하는 방식은 늘 이런 식이라고 한다. 그는 인사를 하면서 난처한 사안은 본인 대신 당사자의 직속 상관 등 간접적인 경로를 통해 뜻을 전달하곤 했다고 한다. 지난해 12월 임성근 부장판사가 세 번째 사의 표명을 하자 법원행정처 관계자가 “CJ(Chief Justice)의 뜻이다. 가만있으라”고 한 것이 전형적이다.

2017년 9월 본인의 대법원장 임명 동의를 앞두고 일선 판사들을 동원해 야당 의원 설득에 나서도록 한 의혹도 마찬가지다. 당시 야당 의원들은 “수많은 판사로부터 ‘김명수 밀어달라’는 청을 받았다. 김 대법원장이 뒤에서 지시하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이렇게 자신과 관련된 사안을 직접 다루지 않고 은밀히 부하나 외부 기관을 움직여 처리하는 대법원장이라면 사법부의 독립은 고사하고 판사가 갖는 최소한의 권위도 기대할 수 없다.

강찬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