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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언론의 권력 감시 막겠다는 징벌적 손해배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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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더불어민주당이 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에 기성 언론사도 포함하겠다는 입장을 정해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은 2018년 7월 안철수 당시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를 상대로, 기자들이 열띤 취재를 하는 모습. [중앙포토]

더불어민주당이 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에 기성 언론사도 포함하겠다는 입장을 정해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은 2018년 7월 안철수 당시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를 상대로, 기자들이 열띤 취재를 하는 모습. [중앙포토]

더불어민주당이 언론 보도에도 최대 3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리는 법안을 3월 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했다. 당 ‘미디어·언론 상생’ 태스크포스(TF)가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에 기성 언론사도 포함하기로 결정한 것을 어제 최고위원회의가 추인했다. 며칠 전만 해도 “언론은 대상이 아니다”고 했다가 친문 강성 지지자들이 반발하자 입장을 번복한 것이다.

정권 말기 여권, 언론에 재갈 물릴 심산 #기자실 폐쇄한 노무현 정부 되풀이하나

이낙연 대표는 이 법안을 두고 “피해자 구제를 위한 미디어 민생법이자 국민의 권리와 명예, 사회의 안정과 신뢰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치”라고 주장했다. TF 단장인 노웅래 최고위원도 “배상금을 올려 실질적인 피해액 구제를 하고 명예훼손을 억제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정작 민주당이 허위·왜곡의 본산이란 질타를 받아왔다는 점에서 ‘내로남불’의 행보다. 더욱이 여권은 최근 정권에 불리한 보도들을 다 허위 또는 왜곡 보도로 몰아세우고 있지 않나. 정권 말에 강해지고 있는 언론의 권력 감시를 막아보겠다는 노림수로 보인다. 게다가 ‘사회의 안정과 신뢰’ ‘국민의 권리와 명예’라니 권위주의 시절에나 통용되던 기괴한 문구 아닌가. 민주당의 비민주성만 두드러질 뿐이다.

이미 관련법의 문제는 충분히 지적돼 왔다.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단체들이 “언론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악법”이라고 비판했고, 진보 성향의 언론단체(언론개혁시민연대)도 “고위 공직자나 공인·기업인들이 징벌적 손배를 악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회 상임위의 검토보고서도 “민법상 손해배상이나 형사처벌 제도와 중첩돼 헌법상 과잉 금지 원칙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고 적시했다. 실제 현재 언론중재위, 방송통신심의위, 형사 고발, 민사상 손해배상 등이 작동 중으로 일각에선 정부나 정치세력이 이들 제도를 남용하고 있다고 지적할 정도다.

민주당은 그런데도 완력을 또 쓸 태세다. 그렇다면 13년여 전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몇몇 기자가 기자실에서 딱 죽치고 앉아 기사 흐름을 주도하고 담합한다”고 한 뒤 시작된 ‘취재 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 말이다. 사실상 기자실을 폐쇄해 결과적으로 언론의 자유를 막는 방안이어서 반발이 거셌다. 그 무렵 여권 인사들은 사석에서 “불필요한 소모전”이라고 후회하곤 했다. 당시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그걸 목격한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선후보 시절 “언론과 권력은 건강한 긴장관계여야 한다. 언론이 계속 권력이 저지르는 잘못을 외면하거나 비호하면 그 순간은 서로에게 이득일지 모르지만 결국은 차곡차곡 쌓였다가 한꺼번에 터진다”고 말한 일이 있다. 당시 언론을 두곤 “지금 언론이 얼마나 잘하냐. 아름답지 않으냐”고도 했다. 언론의 본령은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 민주당은 당장 악법을 거둬들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