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부산 16분" "해상야구장" 부산 들쑤신 SF급 공약

중앙일보

입력 2021.02.10 05:00

업데이트 2021.02.14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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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퇴근 후 하이퍼루프(진공튜브 운송수단)를 타고 15분 만에 해상 야구장에 가서 프로야구를 보고 그날 안에 해저터널로 일본이나 고속철도로 북한에 도착할 수 있다. 4·7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겨냥해 여야가 내놓은 공약들이 모두 실현된다면 말이다.

4·7 보선 앞두고 개발공약 공세
‘부산 15분 생활권 조성’ 한목소리
해상 야구장·공연장 건설까지 등장
전문가 “재원 등 타당성 검증 없어”

여야를 막론하고 부산을 무대로 공상과학소설급 개발 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자들이 “신혼부부 1억1700만원 지원”(국민의힘 나경원) “주 4.5일제”(민주당 박영선) 등 분배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중심의 공약에 집중하는 것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정영태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서울과 달리 부산은 경제 성장 동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며 “경제 회생에 대한 주민들의 열망을 개발 공약으로 들쑤시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자들이 그린 미래 부산.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자들이 그린 미래 부산.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1986~1991년엔 연평균 8.6%에 달했던 부산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2%에 불과했다. 한국은행은 “IT기업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도소매업, 숙박업, 요식업 등만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5년간  25~39세 청년들이 연평균 1만명 이상 부산을 떠났다.

여야가 쏟아낸 매머드 개발 공약에 필요한 예산의 추정치는 100조원을 훌쩍 넘는다. 여야가 한목소리를 내는 가덕신공항 건설에만 약 10조7000억원이 필요하다. 이현출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어떻게 돈을 마련해서 추진할 건지, 비용 대비 사회적 이득이 큰지 등 타당성을 검증한 공약을 찾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이런데도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9일 부산을 찾아 가덕도 신공항을 위해 “사전 타당성 조사를 최대한 간소화하고 예비 타당성 조사는 면제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변창흠 국토부장관이 5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특별법이 통과되더라도 사전 타당성 조사 등 행정 절차는 진행돼야 한다”고 말한 뒤 부산 민심이 흔들리자 “(변 장관의 발언은) 원론적 수준”이라며 달래기에 나선 것이다.

한일 해저터널 vs 남북 고속철도

지난 1일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부산 가덕도와 일본 규슈를 잇는 한일 해저터널 건설을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지난 2010년 100조원 이상이 들지만 막대한 투자금을 회수할 만큼 통행량을 확보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분석했던 정책이다. 하지만 김 비대위원장은 “일본에 비해 재정 부담은 월등히 적고, 부가효과는 54조5000억원 수준, 고용유발 효과는 45만명에 달하는 엄청난 경제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부산발전연구원이 제안한 한일 해저터널 노선. [자료 부산발전연구원]

부산발전연구원이 제안한 한일 해저터널 노선. [자료 부산발전연구원]

한일 해저터널은 1930년대부터 주기적으로 떠오르는 아이디어지만 추진된 적은 없다. 김종구 부산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평소에는 관심도 없다가 선거철만 되면 살아나는 게 한일 해저터널”이라고 말했다. 경제성을 떠나 “양국 간 정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추진이 불가능하다”(서의택 한일터널연구회 공동대표)는 지적도 있다.

민주당은 4일 부산을 기점으로 한 남북 고속철도로 맞불을 놨다. 이날 ‘남북 고속철도 추진 특별위원회’를 출범한 여당은 “15조원을 투입해서 부산에서 북한, 중국, 러시아까지 고속철도로 연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위 위원장인 양기대 민주당 의원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서울-부산은 이미 고속철도가 연결돼 있기 때문에 도라산에서 신의주까지 철길을 놓는데 15조원이 필요하단 뜻”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 “서울-부산 16분 가능”, 김영춘 “10년 내 불가능”

가덕도 신공항 외에 부산에 도입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 최신 기술은 ‘하이퍼루프’도 있다. 하이퍼루프는 진공관에서 캡슐형 열차가 시속 1000㎞ 안팎의 초고속으로 달릴 수 있다는 차세대 이동수단이다. ‘어반루프’ ‘하이퍼튜브’ 등으로도 불린다.

하이퍼루프는 진공관에서 캡슐 열차가 초고속으로 이동하는 차세대 교통수단이다. [자료 버진 하이퍼루프]

하이퍼루프는 진공관에서 캡슐 열차가 초고속으로 이동하는 차세대 교통수단이다. [자료 버진 하이퍼루프]

박형준 국민의힘 전 의원은 지난해 12월 1호 공약으로 “‘어반루프’를 설치해 부산을 15분 생활권으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가덕신공항에서 동부산까지 부산 주요 지역을 어반루프로 잇겠단 구상이다. 박 후보는 “어반루프가 KTX보다 건설비가 54% 적어 경제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영춘 민주당 전 의원은 지난달 12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10년 이내에는 절대 성사되기 어려운 이야기인데 1년짜리 시장 선거에 나오면서 1호 공약으로 내세운 건 조금 한심하고 어처구니가 없다”고 지적했다.

김 전 의원의 비판은 이튿날 민주당 K뉴딜본부가 경기 의왕시에 있는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을 방문해 ‘하이퍼튜브’를 홍보하면서 어색하게 됐다. 민주당은 이날 “‘하이퍼튜브’로 서울-부산을 16분 내에 연결할 수 있다”면서 “출퇴근도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청한 철도기술연구원 핵심 연구원은 “현재는 10년 동안 국내 모든 연구진과 기술을 쏟아부어야 기술 개발을 간신히 마칠 수 있는 수준”이라면서 “상용화는 그 뒤에나 논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돔구장 vs 해상 야구장

야구장 관련 공약은 부산시장 선거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1985년 준공한 사직구장의 상태가 한계에 다다라 부산 야구팬들 사이에선 “야구장을 새로 지어주면 누구든 뽑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서울 구로구에 있는 고척 돔야구장.

서울 구로구에 있는 고척 돔야구장.

김영춘 전 의원은 개인방송에서 “부산에 돔 야구장 한번 만들자”면서 “시민 구단인 부산 자이언츠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도 있다”고 밝혔다. 변성완 전 부산 부시장은 “시장 권한대행으로 있을 때부터 돔구장의 필요성을 검토했다. 헛공약이 되지 않도록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에선 “호텔 등과 함께 돔구장을 바닷가에 지어 랜드마크를 만들자”(이광재 의원)는 제안도 나왔다.

물 위에 떠 있는 도시 '플로팅 시티' 예시. [자료 OCEANIX CITY]

물 위에 떠 있는 도시 '플로팅 시티' 예시. [자료 OCEANIX CITY]

이언주 국민의힘 전 의원은 아예 야구장을 바다 위에 짓자는 공약을 냈다. 이 전 의원은 “기장 앞바다 등 파도가 덜한 내항에 ‘플로팅(물에 뜨는) 시티’를 만들겠다”며 “이 위에 해상 야구장, 공연장 등을 만들어 랜드마크로 세우겠다”는 밝혔다. 이 전 의원 측 관계자는 “수요나 예산은 확정되지 않았다”면서 “앞으로 규모는 유연하게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 공장 1+1 유치?

박성훈 전 부산 경제부시장은 지난달 26일 1호 공약으로 “1+1 삼성 유치”를 내세웠다. “부산 기장 SiC 파워반도체 클러스터에 삼성전자와 삼성전기 공장을 유치하겠다”는 계획이다. 박 전 부시장은 “부산시에 근무할 때 삼성전자에 투자를 제안했다”고 말했다. 2호 공약은 “삼성 엔지니어링 공장을 영도에 유치하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같은 당 박형준 전 의원은 “특정 기업을 거론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김종구 교수는 “이 정도 규모의 공약은 국토교통부와 연구도 하고, 기획재정부와 예산도 협의해서 국가 정책으로 추진해야 한다”면서 “부산시 재정만으론 해결 못 할 공약만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타당성 조사 등을 제대로 거치지 않고 개발 공약에 천문학적 세금을 쓰면 결국 부담은 부산 시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송승환 기자, 김수현 인턴기자 song.se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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