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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양승태 대 김명수 : 법률가들의 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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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지금 일부 법률가들은 심각하게 정도(正道)를 잃었다. 그 결과 법치는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인류역사에서 거의 완벽한 법률체계를 통한 지배체제를 만든 바 있는 제국의 한 유명한 법언은 “법이 많을수록 정의는 줄어든다”였다. ‘법이 정의’라는 관념에 익숙한 우리에게 법이 많으면 정의가 사라진다니 대체 무슨 뜻인가?

‘일회성’ 사람·권력·사건들이 #‘근본적’ 법·원칙·제도를 압도 #민주주의, 견제와 균형 위해 #법과 양심, 사법독립의 회복 절실

그것은 법의 본질과 관련된다. 일단 자연상태를 벗어나면 모든 정치상태, 곧 문명국가는 법을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통치가 가장 좋다. 개인 역시 가능한 한 법과 만나지 않는 인생이 가장 자유로운 삶이다. 그리하여 근대를 낳은 한 법철학적 지혜는 “자유는 법의 침묵에 달려있다”고 언명한다. 따라서 법률가(출신)들의 발언과 개입이 많다는 것은 좋은 정치가 아니라는 말과 같다.

특별히 오늘날 법치에 관한 한 ‘일회성’ 사람과 권력, 사건은 중시되나, ‘근본’ 원칙과 법과 제도는 무너지고 있다. 민주공화국 이론에서 제일 우려하던 현실이다. 사법농단을 사법농단으로, 거래를 거래로, 적폐를 적폐로, 사람을 사람으로 청산하려다 보니 법도 원칙도 양심도 다 사라졌다.

특정 인물 때문에, 특정 사건을 위해, 특정 상황으로 인해, 똑같은 원칙과 법률과 기준의 적용은 자의로 뭉개지고 유예된다. ‘법의 지배’가 ‘법률가에 의한 지배’를 거쳐 끝내 ‘법률가의 지배’로 넘어가면서 나타나는 법치 파괴를 말한다. 법률가들의 권력과의 거리, 이념과 진영, 인간관계와 사조직에 따라, 법률 적용은 춤을 춘다. 이제 유무죄는 법이 아니라 법률가들, 행위가 아니라 사건 배당에 달려있다. ‘법대로’(법치)가 아니라 ‘맘대로’(인치)로 인 것이다.

민주공화국에서 민주주의와 헌정주의, 다수의 지배와 법의 지배는 반드시 균형을 이루지 않으면 안된다. 법을 바로 세울 때다. 아니, 바른 법률가들이 권력과 진영을 넘어 오직 법과 양심에 따라 수사·기소·판결·처결하여, 견제와 균형의 원칙을 다시 회복할 때다. 권력분립의 제일 목표는 견제와 균형이다. 입법·사법·행정이 상호 견제하지 않고, 권력 정점을 중심으로 위로부터 줄을 설 때 법치와 민주주의는 파괴된다.

따라서 공통 준거로서의 법이 부재할 때, 일부 이론이 말하듯 그것은 ‘개싸움’이 된다. 개싸움은 힘과 근육 투쟁, 이해관계, 저질 거래, 당파싸움, 게릴라전처럼 어떤 규범도 규칙도 없다. 게다가 개싸움은 판돈으로 이익을 보는 주인이 따로 있다. 주구(走狗)라는 모멸적인 말이 생긴 연유다. 어떤 권력의 불법비리에 대해서는 적폐청산을, 어떤 권력의 불법비리에 대해서는 검찰개혁을 적용할 때 법의 보편성은 사라진다. 전자에서는 행위를, 후자에서는 주체를 문제 삼기 때문이다. 그것은 법이 아니다. 법치에서 엄금하는 이중 잣대다.

법의 문턱을 넘은 사건에서 법률가들은 유죄와 무죄, 합법과 불법을 판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기소와 변호, 정의와 불의, 선과 악의 이분법에 직결된다. 때문에 법률가들은 민주주의, 즉 대화와 타협의 원칙과 자주 충돌한다. 따라서 법률가들이 공공담론과 대표·민주주의의 영역으로 넘어오면 자기 정의와 이념, 권력과 진영 논리의 사도로 돌변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유죄와 무죄, 합법과 불법, 선과 악의 분리와 독점에 근거하여 민주주의 영역에서조차 승패판정과 양자택일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에서 오랫동안 국회개혁의 핵심으로서 법제사법위원회로부터 법률가 출신들을 배제하려 추진해온 연유다. 민주정부와 대표기구에 법률가 출신들의 역할과 숫자가 많을수록 대화와 타협은 흑백논리와 진영독식에 의해 차단된다. 이는 유신체제와 오늘의 사례가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가 늘 보여주듯 일부 법률가(출신)들과 법률전문가들은 자신의 위법·탈법·불법·편법 행위에는 오불관언이다. “법에게 스스로 말하게 하면, 법률가들을 가장 먼저 비판할 것”이라는 오랜 지혜는 결코 허언이 아니다.

서양 철학의 비조로 불리는 현자가 법률가들을 왜 ‘내키지 않는 비장품’이라고 규정하였는지 반면 성찰이 절실하다. 법률가들은 긴요하지만 항상 필수품일 필요는 없다. 그들은 문제를 자주 진영화·양극화·독점화·극단화한다. 민주적 이성적 윤리적 공동체에게 법이 최소한의 요건인 이유다.

오늘과 훗날 진실의 드러남과 함께 헌법 원칙, 사법독립, 법관의 양심, 거짓말, 권력과의 불법거래라는 측면에서 양승태 사법부와 김명수 사법부는 엄정한 윤리적 법률적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개싸움과 난동에 휩쓸리지 않고, 오늘도 국민의 안녕과 자유를 위해 법과 양심, 진리와 정의에 충실한 법률가들에게 최고의 존경과 경의를 표한다. 김명수 최고 법관(chief justice)은 스스로 법관들에게 늘 강조하였을 헌법 제 7조 ①항·②항과 제103조와 제106조 ①항·②항, 그리고 ‘법관 윤리강령’ 제1조, 제2조, 제3조 ①항, 제4조 ⑤항, 제7조 ①항을 숙독하길 권면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