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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주안 논설위원이 간다

코로나에 요양병원 갇힌 부모, 초등생 아이는 우울증 걸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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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강주안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남편 간호를 위해 요양병원에 있는 A씨가 방역 강화로 나가지 못하면서 집에 설치한 무인카메라로 두 아들이 지내는 모습을 지켜본다.  [A씨 제공]

남편 간호를 위해 요양병원에 있는 A씨가 방역 강화로 나가지 못하면서 집에 설치한 무인카메라로 두 아들이 지내는 모습을 지켜본다. [A씨 제공]

코로나19 사태 1년 비극의 현장

요양병원에 입원한 남편을 돌보는 A씨(47)는 틈날 때마다 휴대전화를 꺼낸다. 집에 설치한 무인카메라 영상을 보기 위해서다. 부모 없이 집에 남겨진 초등학생 쌍둥이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지 화면을 켤 때마다 떨린다.

외부인 출입통제에 극한 상황 몰려 #설 앞두고 병실 창가서 눈물의 인사 #서러운 동포 간병인 중국서도 냉대 #“3개월에 끝난다며 만든 정책 고집”

A씨는 지난 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며칠 전엔 집에 정전이 됐다고 아이들이 놀라서 전화했다”며 “내가 집에 갈 수 있다면 정전은 별문제 아니지만 두 아이가 해결하기엔 너무 어려운 일이라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관리사무실 등을 통해 아파트 단지 전체에 전기가 나갔고 몇 시간 뒤면 해결된다는 소리에 겨우 안도했다. A씨가 요양병원에 ‘격리’된 지 1년이 돼간다. 앞으로 얼마나 더 아이들을 방치할지 기약이 없다.

“제가 돌보지 못하는 사이에 애들 살이 10㎏ 가까이 빠졌대요. 도와주시는 분이 병원에 데려갔는데 아이들이 우울증 초기라는 거예요. 우리 아기들 가엾어서 어떻게 해.”

얘기 도중 자꾸 울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대화가 끊어졌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혼돈이 이어진 요양병원에서 요즘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비극의 한 장면이다. 지금 요양병원은 멀쩡한 사람까지 감금상태로 몰고 가는 감옥이 돼가고 있다. 병실에 묶인 대다수는 간병비 감당이 어려운 사회적 약자다.

#1. 환자와 함께 갇힌 보호자

A씨는 토목 일을 하는 남편이 5년 전 교통사고로 크게 다치며 병원 생활을 시작했다. 경제적 타격에 병원비 부담이 겹쳤다. 남편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린다. 주치의는 “바람만 스쳐도 심한 통증을 느끼는 상태”라고 설명한다. A씨는 요양병원과 집을 왔다 갔다 하며 두 아이를 챙기고 남편도 간호해왔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병원과 집 가운데 한 곳을 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섰다. 아이들 문제가 막막했지만 아픈 남편을 홀로 둘 순 없었다. 요양병원에 들어간 뒤 외출이 사실상 막혔다. 가슴이 미어지는 시간이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초등학생 두 아이가 세끼를 해결하고 집을 정돈하기란 불가능했다. 아이와 만나는 유일한 통로인 마루 무인카메라에 비친 일상은 A씨를 계속 울게 한다.

입원한 아버지를 간호하는 엄마 A씨가 요양병원에서 못 나오면서 초등생 형제는 생활이 엉망이 됐다. [사진 A씨]

입원한 아버지를 간호하는 엄마 A씨가 요양병원에서 못 나오면서 초등생 형제는 생활이 엉망이 됐다. [사진 A씨]

“언젠가 선생님께서 ‘아이가 학교에 안 왔다’고 연락하셔서 가슴이 철렁했어요. 애들한테 전화하고 주변 분들에게 요청해서 허겁지겁 등교를 시켰어요.”

설이 다가오면서 A씨의 가슴은 더 아프다. 주변의 온정으로 두 아이가 끼니는 해결하고 있지만, 친구들이 맛있는 명절 음식을 먹을 때 문 연 식당이 없어 굶는 건 아닐지 걱정이다. 그는 “가끔 집에 다녀올 수 있으면 이 지경이 되진 않을 텐데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혹시 아느냐”고 물었다.

울산에 사는 B씨(70)는 8년 전 갑자기 쓰러져 거동을 못 하는 큰아들(44)을 돌보기 위해 이손요양병원에 들어왔다. 병원 바닥에 자리를 깔고 살았다. 외출이라야 필요한 물품을 사고 친지들을 잠깐 만나는 정도였지만 이젠 그마저 어려워졌다. 몸이 아픈 남편도 요양병원에 있지만 찾아가 볼 수가 없다. B씨는 “자동차 회사에 다니던 아들의 직장 동료나 학창시절 친구들이 자주 병문안을 오곤 했다”며 “그런 게 유일한 위안이었는데 면회가 금지되면서 나라도 곁에 없으면 아들이 불쌍해서 어떻게 하느냐”고 했다.

B씨가 거동을 못하는 아들 간호를 위해 요양병원으로 들어왔다.[이손요양병원 제공]

B씨가 거동을 못하는 아들 간호를 위해 요양병원으로 들어왔다.[이손요양병원 제공]

한 요양병원 관계자는 “너무 오랫동안 병원을 못 나가는 보호자들이 안타깝지만, 감염 발생 시 구상권 청구 등을 강조하는 보건 당국의 지침 때문에 별도리가 없다”며 “밖에 나갔다 오면 검사비가 들고 외부 접촉을 금기시하니 대부분 외출을 포기하고 지낸다”고 설명한다.

#2. 만남을 갈망하는 가족

C씨(67·여)는 8년 전 맹장 수술을 받은 직후부터 움직일 수 없게 된 아들(39)과 생이별 중이다. 아들의 요양병원 입원을 준비하다 넘어져 손목이 부러지는 바람에 직접 병시중을 못 하고 간병인 도움을 받아왔다. 움직임이 위축돼가는 아들을 매주 찾아가 얼굴과 손발을 닦아주고 손톱·발톱을 깎아주던 일상이 사라졌다. 그는 “즐거운 기억을 얘기하면 표정 변화가 생기곤 했는데 면회가 금지되면서 곁에 갈 수가 없다”고 했다. 병원에서 설치한 화면을 통해 영상통화로 “빨리 나아서 제주도 가자”고 웃으며 말한다. 통화가 끝나면 1년 가까이 혼자 남겨진 아들 생각에 눈물이 솟는다.

코로나19 방역 조치로 요양병원에 입원한 아들을 만나지 못하는 C씨가 대형화면을 통해 아들에게 영상으로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다.[이손요양병원 제공]

코로나19 방역 조치로 요양병원에 입원한 아들을 만나지 못하는 C씨가 대형화면을 통해 아들에게 영상으로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다.[이손요양병원 제공]

대장암을 앓는 남편(70) 곁을 지키려 요양병원에 들어온 D씨(65)는 아들·딸·손주들을 창 너머로 봐야 하는 현실이 마음 아프다. 지난 6일 오후 3시 50분쯤 아들 가족이 찾아와 병실 창이 보이는 주차장에서 전화를 걸었다. D씨는 남편과 창가에 서서 통화를 하며 손을 흔들었다. D씨는 “이렇게 보고 돌아서면 남편이 많이 운다”고 말했다.

암 투병 남편을 간병하려 요양병원에 들어온 D씨가 설을 앞두고 병원 주차장으로 온 아들의 가족과 병원 창너머로 마주보며 인사한다. D씨가 아들 가족을 휴대전화로 찍었다.[사진 D씨]

암 투병 남편을 간병하려 요양병원에 들어온 D씨가 설을 앞두고 병원 주차장으로 온 아들의 가족과 병원 창너머로 마주보며 인사한다. D씨가 아들 가족을 휴대전화로 찍었다.[사진 D씨]

면회금지 기간이 길어지면서 요양병원 마당에 찾아와 병실 창을 사이에 두고 상봉하는 풍경이 늘어난다. 한 간병인은 “환자분 부탁으로 창가에 가보면 너무 멀어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며 “그렇게라도 보려고 애쓰는데 가족들이 떠나고 나면 너무 많이들 우신다”고 말했다.

#3. 서로 생각이 다른 그들

어느새 1500곳을 넘어선 요양병원의 모순이 코로나19 사태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대책 없는 코호트 격리로 사망자와 확진자가 쏟아졌다. 통제는 더 강화됐다. 요양병원 사람은 매주 두 차례씩 코를 찔러 검사를 받는다. 너무 자주 찌르다 보니 코피가 나기도 한다. 어느새 또 다른 비극이 자라났다.

외출을 못 하는 보호자와 간병인들은 “감옥이나 매한가지”라고 말한다. 언제 ‘출소’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 한 요양병원 의사는 “코로나19 초기에 석 달이면 끝난다는 예측으로 만든 정책을 고집하고 있다”며 “이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건 당국에서 관심을 갖고 관찰했다면 이렇게 방치했을 리 없다”고 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정부가 간병인이나 보호자의 외출을 금지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병원이나 지방자치단체가 과도하게 제한한 탓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요양병원들은 “보건복지부 장관과 질병관리청장 등이 여러 차례 공문을 보내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라고 했다”며 “감염 확산에 따른 손실 보상과 추가 방역 조치에 따른 손해배상을 운운하며 경고해왔다”고 말했다. 요양병원협회에서도 일부 지자체가 ‘외출·외박 금지’ 행정명령을 내렸다는 내용을 전파했다. 병원은 통제 강화가 불가피하고, 간병인과 보호자는 병원 분위기를 따라간다는 것이다.

김철준 대전웰니스병원장은 “파괴돼가는 보호자들의 삶이 이어질 수 있도록 외출 지침이나 간병 지원 등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손덕현 대한요양병원협회장은 “비용 부담 때문에 직접 간병에 나선 가족들이 가장 힘들어한다”며 “저소득층부터라도 간병비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4. 덩달아 갇힌 중국 동포

간병인의 다수를 차지하는 중국 동포들 역시 한계 상황에 이르렀다. 이들이 무너지면 요양병원도 못 버틴다. 간병사 E씨는 “면회 금지로 우울감이 심해진 환자들이 우리에게 화풀이한다”면서 “예전엔 가끔 외박을 나가 친지들과 집밥을 먹으며 스트레스를 풀었지만, 그마저 막혔다”고 말했다. 그는 “남편이 그리워 통곡하고 싶지만, 환자들 깰까 봐 이불을 뒤집어쓰고 운다”고 했다. 여기에 비자 문제까지 삼중고가 닥쳤다. 기한이 만료되면 중국에 돌아가 다시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격리 기간이 길어지고 비행깃값이 치솟아 출혈이 크다. E씨는 “특히 한국의 요양병원에서 왔다고 하면 중국에서 엄하게 단속한다”며 “코로나19 기간만이라도 법무부에서 배려해주면 좋겠다”고 말한다. 제천시립 청풍호노인사랑병원 오경록 부원장은 “중국 동포 간병인이 빠져나가면서 요양병원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고 말한다. 법무부 측은 “관련 법령을 만들 때 팬데믹 상황까지 고려하진 못했다”며 “고용노동부 등과 보완책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강주안 논설위원

강주안 논설위원 202012

강주안 논설위원 20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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