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서해와 한강 사이 18㎞에 배가 다니도록 물길을 낸 경인 아라뱃길. 지난 2일 오후 겨울바람에 수면에는 잔잔한 파도가 일었지만 지나가는 배는 보이지 않았다. 근처에 환경연구단지가 있어 2012년 5월 뱃길 개통 이후 20번 넘게 이곳을 지나쳤지만, 기자가 배가 지나가는 것을 본 것은 딱 한 차례였다. 경인 아라뱃길 공론화위원회가 지난달 “운하 기능을 축소하고 시민 여가 시설로 전환하라”는 내용의 최종 권고를 환경부에 전달한 이유도 짐작이 갔다. 위원회의 권고대로라면 운하 사업은 실패로 끝난 셈이다.
운하 물동량 계획 대비 8%에 그쳐 #공론화위 “여가 시설로 전환” 권고 #시화호·새만금 등 실패 이어져도 #예타 없는 가덕도 신공항 또 추진
경인 운하 사업이 검토되기 시작된 것은 1980년대 후반으로 굴포천 유역의 홍수 예방을 위해서였다. 홍수 때 한강이 아닌 인천 앞바다로 바로 물을 빼내는 방수로(防水路) 건설 방안이 제시됐고, 이왕이면 방수로 폭을 넓혀 운하로 만들자는 아이디어로 발전했다. 96년 건설교통부가 민자 사업으로 추진했지만, 환경부는 2001년까지 네 차례나 환경영향평가서에 퇴짜를 놨다. 수질이 나쁜 굴포천이나 한강 하류의 물로 운하 수로를 채우면 녹조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였다.

인천시 서구 오류동 경인아라뱃길(경인운하)에서는 오가는 화물선을 찾아보기 어렵다. 아라뱃길에는 교량이 있어 큰 배가 다니기 어렵다. 강찬수 기자
경제성 평가도 논란이 됐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편익-비용 비율(B/C)이 1이 넘어 경제성이 있다고 했으나, 2003년 1월 노무현 대통령 인수위원회는 B/C가 1보다 낮아 경제성이 없다며 사업 중단을 건의했다. 감사원도 건교부가 경제성 평가를 왜곡했다며 ‘사업 재검토’ 를 통보했다. 그러다 2006년 네덜란드 DHV사의 평가에서는 B/C가 1.7이라는 결과가 나왔고, 이명박 정권은 한국수자원공사가 직접 시행하는 방식으로 바꿔 추진했고 이름도 경인 아라뱃길로 고쳤다.
결과는 참담했다. 2009~2015년 2조6759억 원이 투입됐지만, 개통 이후 2019년 말까지 물동량은 계획대비 8.2%, 여객운송도 계획의 20.2%에 그쳤다. 운영비는 연간 80억 원 이상 들어갔지만 수입은 1억 원도 안 됐다. 서울까지 배로 실어나를 화물이 없었다. 4000톤급 이상의 선박은 이용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굴포천 홍수 방지에는 도움이 됐지만, 수질은 4~5등급에 머물렀다. 2018년 3월 국토부 관행 혁신위원회는 “물동량이 계획 대비 8% 수준에 불과한 것은 처음부터 사업의 타당성에 문제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8년 6월 물 관리 업무가 환경부로 통합되면서 수자원공사의 아라뱃길도 환경부 업무가 됐다. 환경부 관계자는 “연말까지 위원회 권고의 세부 이행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가항만 지정이 취소되면 화물선 운항 대신에 물길에 요트가 정박하고, 컨테이너 부두에는 숙박시설이 들어설 전망이다. 더는 운하가 아니라 수변 경치를 즐기는 곳이 될 모양이다.

경인 아라뱃길의 구조
이제 경인 운하는 시화호·새만금 등에 이어 또 하나의 실패한 대규모 국책사업이 됐다. 시화호는 담수호를 포기하고 바닷물이 드나드는 조력발전소로 바꾼 덕분에 ‘죽음의 호수’라는 굴레를 벗었다. 새만금 간척사업도 갈림길에 섰다. 1991년 이후 30년째 공사 중이지만, 담수호를 포기해야 할 상황이다. 지난달 국립환경과학원은 ‘새만금유역 2단계 수질 개선 종합대책에 대한 종합평가’에서 “해수 유통량을 지금보다 확대할 경우 목표 수질 달성이 가능하지만, 담수화될 경우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미 2001~2010년 1단계 수질 개선 사업에 1조4568억 원이,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2단계 사업에 2조9500억 원이 들어갔지만, 새만금호를 담수호로 만들기 위해서는 고강도 수질관리 대책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염된 강물이 내려오는 하구를 막아 담수호를 만들면 실패한다는 시화호의 교훈을 살리지 못한 탓이다.
경인 아라뱃길 공론화위원회 허재영 위원장(국가 물관리 위원장)은 “(대규모 국책사업의 경우) 경제성 평가를 KDI에만 맡기는 것보다 여러 곳에서 평가한 뒤 비교하는 경쟁 체제를 갖추는 게 바람직하고, 경제성 평가 외에 사전에 시민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것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다. 오는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모두 밀고 있는 가덕도 신공항 사업이 그 사례다. 예비타당성 검토를 면제한 특별법부터 만들고 밀어붙이면 새만금이나 경인 운하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홍종호 교수는 “우리 사회가 발전했는데도 정권이나 정치인들이 말도 안 되는 사업을 추진하고, 공무원들은 눈치만 보는 바람에 비극적인 일들이 반복된다”며 “가덕도 신공항처럼 바다를 매립하는 사업은 당초보다 훨씬 더 많은 예산이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신공항 특별법을 대표 발의한 더불어민주당의 한정애 의원은 지난달 환경부 장관에 취임했다. ‘사업자’가 환경영향평가를 맡게 됐다. 문재인 정권과 한 장관의 임기 내에 신공항 환경영향평가서가 환경부에 제출될 가능성은 크지는 않지만, 4대강 사업 때처럼 환경부가 심판 역할 대신 사업자 편에 서는 일이 벌어질까 걱정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