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마저 온라인으로 떠났다…한국 덮친 ‘리테일 아포칼립스’

중앙일보

입력 2021.02.09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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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코로나19 여파로 오프라인 유통업체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공실률이 급등한 서울 명동의 한 상가에서 임대 안내문을 붙인 모습. [뉴시스]

코로나19 여파로 오프라인 유통업체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공실률이 급등한 서울 명동의 한 상가에서 임대 안내문을 붙인 모습. [뉴시스]

주말마다 집 근처 전통시장에서 장을 보던 직장인 김모(38)씨는 지난해부터 온라인 쇼핑 구매를 늘렸다. 온라인으로 주문한 상품은 금세 집으로 배달해준다. 요즘은 시장에 가지 않고 온라인에서만 먹거리나 공산품을 사기도 한다. 김씨는 “출퇴근 시간 짬짬이 스마트폰 쇼핑 앱(애플리케이션)으로 옷·화장품 등을 사는 데 재미를 붙였다”고 말했다.

쇠락하는 오프라인, 유통 대변혁
온라인 매출 18.4% 늘어 사상 최대
롯데쇼핑 작년 114개 점포 폐쇄
명동 상가 공실률 22.3% 1년새 5배↑
미국 4년 전부터 소매업 몰락 시작

유통업계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대전환의 계기가 됐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온라인 쇼핑은 더욱 확산하고 오프라인 쇼핑은 위축했기 때문이다. 8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오프라인 쇼핑의 매출이 유통업계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3.5%였다. 1년 전(58.8%)과 비교하면 5.3%포인트 낮아졌다. 오프라인 쇼핑은 대형마트·백화점과 대형 슈퍼마켓(SSM) 등을 포함한다. 지난해 온라인 쇼핑의 매출 비중은 유통업계 전체의 46.5%였다. 쿠팡·위메프·티몬·11번가·인터파크·G마켓·옥션·이마트몰·신세계몰·롯데온 등이 온라인 쇼핑에 해당한다.

폭증하는 온라인 매출.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폭증하는 온라인 매출.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지난해 온라인 쇼핑의 매출액은 전년보다 18.4% 증가했다. 월별로 살펴보면 지난해 2월(증가율 34.3%)과 8월(20.1%), 12월(27.2%)에 온라인 쇼핑의 매출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지난해 오프라인 쇼핑의 매출액은 3.6% 줄면서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롯데·신세계·현대 등 백화점의 매출 감소 폭(-9.9%)이 상대적으로 컸다.

김호성 산업부 유통물류과장은 오프라인 매출 감소에 대해 “지난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하면서 (소비자들이) 외출을 자제하고 다중이용 시설을 기피한 영향”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매출 증가에 대해선 “즉시성·편의성을 중시하는 소비문화와 온라인·비대면 소비가 확산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시장조사업체인 컨슈머인사이트에 따르면 소비자가 오프라인 쇼핑에서 지출한 비중은 지난해 11월 37.8%였다. 2019년 7월(42%)과 비교하면 4.2%포인트 낮아졌다.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소비자의 지출 비중에서 온라인(62.2%)과 오프라인의 격차는 24.4%포인트로 벌어졌다.

문을 닫는 오프라인 매장도 늘고 있다. 롯데쇼핑은 최근 10개월간 114개 점포를 폐쇄했고 올해도 100곳을 폐쇄할 계획이다. 이마트·홈플러스 등도 매장 축소 작업에 들어갔다. 화장품·의류·외식 매장의 폐점도 이어진다.

서울 주요 상권 중대형 상가 공실률

서울 주요 상권 중대형 상가 공실률

서울 광화문의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지난해 4분기 15.3%였다. 1년 전(4%)보다 11.3%포인트 높아졌다.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있는 성신여대 부근 상가의 공실률은 지난해 4분기 14.5%로 1년 전(5.6%)보다 8.9%포인트 상승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상가 공실률도 같은 기간 7.2%에서 12.8%로 높아졌다. 일반적으로 창업이 활발한 인기 상권에선 폐업한 점포 자리에 금세 다른 점포가 들어선다. 하지만 코로나19에 따른 오프라인 소비 침체로 서울 주요 상권의 공실이 많아진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과거 대형마트·백화점 등 오프라인 매장에 의존했던 50~60대 중장년층은 코로나19를 계기로 온라인 쇼핑의 ‘큰 손’으로 떠올랐다. 주요 온라인 쇼핑몰에선 상품을 고른 뒤 스마트폰으로 결제하는 50~60대 고객의 비중이 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집을 옮긴 송모(62)씨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새집에 들여놓을 냉장고와 세탁기를 샀다. 그는 집 근처 오프라인 매장에서 상품을 살펴본 뒤 마음에 드는 모델을 골라 온라인에서 구매했다. 송씨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품의) 품질에는 차이가 없는 것 같다”며 “가격은 온라인이 싸다”고 말했다.

유통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선 오프라인 소매업의 몰락을 뜻하는 ‘리테일 아포칼립스’라는 말도 나온다. 아포칼립스는 기독교 신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요한묵시록)을 가리키는 단어다. 일부 미국 언론에서 대형 유통업체의 잇따른 파산보호(법정관리) 신청을 두고 이런 말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회계감사와 경영컨설팅을 하는 삼정KPMG는 ‘유통 대전환의 시작, 리테일 아포칼립스’란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선 2017년부터 대형 유통업체들이 오프라인 매장을 대규모로 폐쇄하고 법원에 연쇄적으로 파산보호를 신청하는 일이 발생했다. 장난감 유통업체인 토이저러스, 백화점 체인인 시어스·니만마커스·JC페니 등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리테일 아포칼립스는 크게 보면 2008년 4차 산업혁명이 시작한 뒤 나타나는 세계적 현상”이라며 “스마트폰 쇼핑에 익숙한 ‘디지털 네이티브’(원주민)들이 찾지 않는 오프라인 소매 매장의 쇠퇴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는 “아마존처럼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지배하는 배달업이 향후 소매업이 가야 할 방향”이라며 “식품·의류·헬스케어(건강관리)를 융합하고 개인 맞춤식 서비스를 제공하는 새로운 성공 방정식을 만들어가야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세종=손해용·김기환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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