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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가 '언택트 역설'…코로나 충격에도 1년만에 최고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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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난해 1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주유소 옆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AP=연합뉴스]

지난해 1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주유소 옆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AP=연합뉴스]

“재앙 속에 반전이 시작됐다.”

지난해 4월 첫 마이너스 굴욕 겪어 #비대면 배송·포장용기용 수요 증가 #중국·인도 경기 회복도 상승 부추겨 #백신으로 전염병 종식 기대감 반영 #OPEC 감산·이란 제재로 공급 조절 #골드만삭스 "7월 65달러까지 간다" #백신 지연·변이 바이러스는 변수

최근 블룸버그 통신이 세계 원유 시장을 이렇게 진단했다. 지난해 끝을 모르고 곤두박질쳤던 국제 유가가 기지개를 켜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유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을 딛고 어느새 팬데믹 발생 이전 수준 가격을 회복했다.

지난 5일(현지시간) 서부텍사스유(WTI) 3월 인도분은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배럴당 1.1%(0.62달러) 오른 56.8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으로 보면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지난해 1월 22일(56.74달러) 이후 최고치다. 이날 브렌트유(배럴당 59.34달러)와 중동 두바이유(배럴당 58.94달러)도 상승세를 보이며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60달러에 근접했다.

1년만에 코로나19 이전 수준 회복한 국제유가.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1년만에 코로나19 이전 수준 회복한 국제유가.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세계 원유 시장에 지난해는 악몽 같았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한 지난해 3월부터 국제 유가는 급락했다. WTI 가격은 배럴당 20달러 선으로 곤두박질쳤다.

지난해 4월 20일에는 배럴당 -37.63달러가 되며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원유를 팔려면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1배럴당 4만원 정도를 얹어주는 사상 초유의 일이 생긴 것이다. 전염병 공포 속 원유 수요가 급감하면서 각지의 원유 저장 시설이 포화상태에 이른 영향이었다.

국제 유가는 지난해 5월에야 배럴당 30달러를 회복했지만 이후 오랫동안 30~40달러 선을 오갔다. 지난해 11월부터 분위기가 달라지며 브렌트유는 지난해 12월, WTI는 지난달에 50달러 고지를 밟았다.

지난해 11월 프랑스 툴루즈의 한 배송센터에서 직원이 물품을 분류하고 있다.[AFP=연합뉴스]

지난해 11월 프랑스 툴루즈의 한 배송센터에서 직원이 물품을 분류하고 있다.[AFP=연합뉴스]

국제 유가가 제자리를 찾아온 원동력은 여러 가지다. 무엇보다 ‘언택트 역설’이 꼽힌다. 코로나19로 해외 이동이 사실상 막히며 항공 운항 수요가 급감했고 국제유가 하락으로 이어졌다. 항공산업의 회복세를 기대하기엔 요원하다.

하지만 새로운 수요가 등장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고 비대면 거래가 일상화되며 대세가 된 배송이다. 블룸버그는 “소비자들이 휴가나 외식 등에 쓰던 돈을 온라인 쇼핑으로 쓰고 있다”며 “배송에 필요한 선박과 화물열차, 트럭 등에 쓰이는 석유 연료 수요가 늘었다”고 분석했다.

배송 물품을 포장에 쓰는 플라스틱 용기 수요가 늘며 그 생산에 필요한 나프타와 같은 석유화합물 수요의 증가도 국제 유가 상승에 한몫했다. 다우케미칼과 바스프(BSF) 등 글로벌 화학기업의 지난해 실적은 코로나19의 충격 속에도 늘었다. 올겨울 북반구 지역에 불어닥친 급격한 한파로 난방용 석유 수요도 증가했다.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도 유가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국제유가를 배럴당 40달러대로 올려놓은 것은 중국이다. 코로나19에서 빠르게 회복하며 원유 수요가 늘어난 영향이다. 지난해 하반기에 코로나19 통제에 나서며 경기 부양에 힘을 쏟은 인도도 석유 소비 행렬에 합류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백신 보급으로 미국과 유럽의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도 반영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201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베이커스필드의 한 원유 생산시설 모습.[AP=연합뉴스]

201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베이커스필드의 한 원유 생산시설 모습.[AP=연합뉴스]

산유국의 감산도 유가 상승의 또 다른 요인으로 꼽힌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소속 13개국과 러시아 등 10개 주요 산유국 연합체인 OPEC+는 이달 기준으로 2018년 10월 대비 일평균 712만5000배럴을 감산하고 있다. 심수빈 키움증권 연구원은 “감산을 주도하는 사우디아라비아가 1분기 수요 불안을 고려해 일평균 100만 배럴의 추가 감산을 발표하며 과잉공급 가능성을 낮췄다”고 말했다.

OPEC+를 위협하는 미 정유업계의 셰일가스 원유 생산도 줄었다. 유가하락 등의 영향으로 채산성이 떨어진 영향이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코로나19 이전보다 약 17% 감소했다.

국제 유가 상승세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경기부양안이 상·하원을 통과하며 경기 회복의 마중물이 될 수 있어서다. 골드만삭스는 “유가 하락 요소인 이란 제재 역시 바이든 행정부가 당장 풀어줄 가능성이 크지 않다”며 “7월에 국제 유가는 배럴당 65달러까지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변수는 있다. 영국 컨설팅업체 에너지 애스팩츠의 암리타 센 창업자는 “(원유) 수요에 불확실성이 많다”고 말했다. 백신 접종 속도가 예상보다 늦은 데다 변이 바이러스 확산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경기 회복 등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코로나19 확산세가 크게 잦아들지 않을 경우 세계 에너지 수요 회복이 2025년까지 미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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