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취재일기]재활용 안 되는 텀블러…우리 환경정책의 현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코로나 트래시’ 취재를 위해 찾아간 경기도 소재 재활용 선별장에서 '가제트 손'을 만났다. 만화 주인공 '형사 가제트'가 아무리 어려운 일도 척척 해내던 손재주에 빗댄 직원들의 별명이다. 산처럼 쌓인 플라스틱 더미와 연결된 컨베이어벨트 옆에서 11명의 직원들들은 실제 그런 능력을 시전하고 있었다. "소리나 맨눈으로 플라스틱 종류를 구분한다"는 말이 허풍이 아니었다. 느낌만으로도 어떤 플라스틱 재질인지 파악해 재활용과 폐기물로 구분했다.

[취재일기]

재활용 선별장 안소연 대표는 "경력으로는 도사 같은 사람들"이라며 "현장에서 일일이 분리배출 표시를 볼 시간이 없어 느낌으로 선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엔 그런 '가제트 손'을 곤혹스럽게 하는 물품이 늘었다고 한다. 음식물이 묻은 코로나 트래시는 오류를 유발한다. '가제트 손'이 플라스틱 용기로 향하다가 남은 음식물이 보이면 멈칫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코로나19로 처리할 양도, 음식 묻은 용기도 늘었다고 한다.

환경 위기 시대의 필수품인 텀블러는 선별장에선 친환경적이지 않았다. 수많은 텀블러가 트럭에 실려 왔지만, 대부분 소각장 행이었다. 선별장 측은 "텀블러는 어떤 재질이라고 할 수도 없다"며 "예를 들어 생수병은 PET, 샴푸·린스·세재 통은 PE인데 텀블러는 소재에 대한 기준이 없고 어떤 텀블러는 분리배출 표시도 안 되어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오후 4시 45분, 퇴근까지 1시간 15분이 남았지만 이날 안양시 공동주택에서 수거해 온 플라스틱 쓰레기는 여전히 산더미였다. 정희윤 기자

지난 20일 오후 4시 45분, 퇴근까지 1시간 15분이 남았지만 이날 안양시 공동주택에서 수거해 온 플라스틱 쓰레기는 여전히 산더미였다. 정희윤 기자

선별장 취재를 하면서 환경을 걱정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플라스틱 용기에서) 스티커 안 떨어지는 것 좀 어떻게 해달라. 매번 칼로 긁고 선크림으로 닦고 별짓 다 한다” “즉석밥 용기가 재활용이 안 된다는 글 읽고 너무 황당했다” 며 어떻게든 환경에 도움이 되고자 했다. “정부가 기준을 정확하게 만들고 생산자는 한두 가지로 소재를 통일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기업들도 난감해 한다. 생산 설비를 바꾸고 시설을 갖추려면 돈과 시간이 필요한 상황에서, 스스로 환경을 위한 변신을 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해서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쓰레기는 시스템 전환의 문제”라고 말했다.

코로나19의 위기 상황 속에서 환경에 대한 염려는 더 커지고 있다. 힘겹게 진행되는 작은 변화의 모습은 소중하기만 하다. 일부 생수 업체는 페트병의 비닐 라벨을 없애고, 물병의 재질을 바꾸고 있다. “재활용 잘 되는 제품이 시장에서 잘 팔리는 구조로 가는 게 가장 좋다”는 홍수열 소장의 제언이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정부와 정치의 리더십이다. 길을 찾는 소비자와 생산자를 이끌어줘야 한다.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처럼 폐지됐다가 14년 만에 부활하는 식의 오락 가락은 이제 멈춰야 한다. 코로나19로 폭증한 마스크 사용량을 묻는 취재팀의 문의에 환경 당국조차 책임 있게 답하지 못한다면 곤란하다. 그러는 사이 버려진 마스크는 땅을 뒤덮고 플라스틱의 산은 높아지고 있다.

정희윤 기자 chung.heeyu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