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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 높이랬더니, 정책 재활용···14년 전 '컵 보증금' 또 등장

중앙일보

입력

일회용 커피컵. 천권필 기자

일회용 커피컵. 천권필 기자

'프랜차이즈 매장 안에서 먹는 고객에게는 빨간색 컵, 밖으로 가져가는 사람은 녹색 컵을 사용하도록 했다. 녹색 컵을 사용하는 사람에게서만 보증금을 받는다는 것이다. 매장 입구엔 ‘일회용 컵을 반납하면 100원을 되돌려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의 포스터를 붙였다.’

예고된 역습, '코로나 트래시' <하>

2003년 6월 중앙일보 기사의 일부분이다. 18년 전 도입한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는 한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에 빨간 컵, 녹색 컵을 탄생시켰다. 이 제도는 커피전문점 등에서 음료를 주문할 때 일회용 컵에 50~100원의 보증금을 부과하고 컵을 반납하면 동전으로 돌려주는 제도였다.

18년 전 빨간 컵, 녹색 컵 해프닝 

업계의 ‘자발적 협력’은 성과를 내진 못 했다. 국민 10명 중 1, 2명만 컵을 반납했고 환불받지 않은 돈이 2003년 1분기에만 10억원이 넘었다. 일부 프랜차이즈 업체는 컵을 반납하면 보증금 외에 컵을 재활용한 휴지를 선물했다. 미환불 보증금은 환경미화원 자녀에게 장학금으로 제공하는 업체도 등장했다.

5년 뒤 컵 보증금제는 폐지됐다. 이명박 정부의 규제 완화에 따른 조치였다. 그렇게 사라진 제도가 2022년 14년 만에 부활한다. 지난해 5월 컵 보증금제를 담은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다. ‘2022년 판 보증금’은 컵의 제조원가와 정책적 필요 등을 고려해 환경부령으로 정해지며 영수증에 금액만 찍히고 쿠폰 등으로 환불될 전망이다.

'빨대 금지법'도 오락가락

컵 보증금 제도가 겪은 ‘오락가락 20년’은 환경 정책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실행 가능성은 외면한 정책-국민과 기업 억지 참여-환경이라는 공익과 무관한 폐지-환경 위기 고조에 따른 부활의 패턴이다. 11년 전인 2010년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국정감사 정책자료엔 “규제 완화로 발생한 환경의 후퇴를 평가하고 필요한 제도가 불필요한 제도가 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 반성이 담겼다. 그렇게 ‘정부의 실패’는 반복되고 있다.

최근엔 '빨대 금지법'이 논란이 됐다. 지난해 10월 30일 환경부가 발표한 입법예고에는 음료 제품에 빨대 부착이 금지됐다. 하지만, 액체를 마시기 힘든 환자와 병원 등이 반발했다. 환경부는 “빨대를 요구하는 일부 소비자에게는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일회용품 감축 취지와 모순되며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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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률은 세계 최상위권

OECD 주요국 생활폐기물 재활용률 살펴보니.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OECD 주요국 생활폐기물 재활용률 살펴보니.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정부의 어설픈 환경 정책은 세계 최상위권인 국민 인식을 이끌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8년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쓰레기 재활용률은 독일에 이어 2위였다. 높은 시민의식과 기업의 역동성은 여전히 정부와 충돌하고 있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는 환경 규제 강화와 완화를 계속해서 반복해 왔다”며 “일관된 규제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일부 환경 관련 스타트업들은 크고 작은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에코인에너지'라는 업체는 열분해라는 기술을 이용해 플라스틱 폐기물을 연료유로 전환하는 설비를 개발했다. 1t의 폐플라스틱을 투입할 경우 0.4~0.7t의 연료유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오승훈 이사는 “법제화 돼 있지 않은 기술이라 소각 등의 방식으로 취급받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스타트업 이노버스가 개발한 '쓰샘'.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수거해 이물질을 비우고 헹구고 분리해서 자동으로 재활용해준다. [이노버스 제공]

스타트업 이노버스가 개발한 '쓰샘'.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수거해 이물질을 비우고 헹구고 분리해서 자동으로 재활용해준다. [이노버스 제공]

“정교한 정책 필요”

코로나19로 환경 위기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정부 전략 부재를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EU는 올해 1월부터 플라스틱세를 부과하는 정책을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EU 회원국은 재활용이 불가능한 플라스틱 1t당 800유로에 해당하는 세금을 내야 한다. 홍종호 교수는 "우리나라도 정책적으로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으면 산업 경쟁력 문제로 확대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이와 함께 국민의 높아진 경각심에 맞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정교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저부가가치로 재활용하는 ’다운사이클링‘ 체제의 시스템이 구축돼 버려서 새로운 구조조정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정부의 리더십과 투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 혼자서는 못 한다. 지자체와 생산업체가 유기적으로 시스템을 전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제로웨이스트 캠페인에 동참한 이재복씨는 카페와 음식점 등에서 구매할 경우 포장지 대신 다회용기에 넣어온다. [이재복씨 제공]

제로웨이스트 캠페인에 동참한 이재복씨는 카페와 음식점 등에서 구매할 경우 포장지 대신 다회용기에 넣어온다. [이재복씨 제공]

국민 참여 의식 활용해야

전문가들은 환경 문제에 대한 시민의 참여 의식을 활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시민들도 아쉬워하는 부분이다. ‘제로웨이스트’라는 캠페인에 참여한 이재복(42·여)씨는 지난해 상반기부터 일회용기 대신 다회용기를 사용해 플라스틱 사용량을 90% 줄였다. 그는 “번거롭기도 하고 일부 매장에서 거절해 어려움도 있다”고 했다.

한 기업은 버려진 폐플라스틱 병(PET)에서 섬유를 뽑아내 옷을 만드는 ‘보틀 니트(Bottle Knit)’를 만들어 판매한다. 니트 의류 하나에 약 20개의 페트병이 사용된다고 한다. 이 기업은 최근 서울환경운동연합 플라스틱 방앗간과 협업해 플라스틱 병뚜껑으로 키 링을 만든다. 병뚜껑을 40일간 모아 보내줄 경우 키링으로 제작해 주는 '프라임 피플’이라는 프로젝트다. 1000명의 시민을 모집했는데 총 2만4000명이 몰렸다.

‘성남자원순환가게 re100’는 지자체 차원에서 재활용품을 가져오면 유가보상을 해준다. 2021년 1월 기준(단위 kg)으로 PET는 105원, PP·PE·PS는 175원이 책정됐다. 2019년 6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참여한 3665세대가 받은 보상액은 1084만1667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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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성남자원순환가게에서 재활용 분리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성남자원순환가게 제공]

시민들이 성남자원순환가게에서 재활용 분리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성남자원순환가게 제공]

위문희·최연수·정희윤·함민정 기자 ham.minj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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