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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김명수 육성 폭로 임성근 "거짓말쟁이로 물러날순 없다"

중앙일보

입력

임성근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57·사법연수원 17기)가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날(지난 4일) 김명수 대법원장(62·연수원 15기)의 ‘탄핵’ 발언이 담긴 육성 녹음 파일을 공개한 배경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임 부장판사는 2017년 9월 김 대법원장의 국회 임명동의안 통과를 위해 인맥을 동원해 야당인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설득하는 데 발 벗고 나서기도 했다. 이후 3년 4개월간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사법부 전체를 뒤흔들 녹음파일 공개를 결심했을까.

"저로선 막다른 골목까지 몰렸다…참담한 심정"

"김명수 임명동의 이틀 전 '도와달라'에 성심껏 도와”

김 대법원장과 임 부장판사는 막역하진 않았어도 사시 두 기수 선후배로 친분이 있던 사이였다고 한다. 2011~2013년 3년간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함께 근무했고 법원 '산우회' 회장직도 김 대법원장이 맡은 2년 뒤 임 부장판사가 맡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9월 퇴임한 양승태 대법원장 후임으로 김명수 당시 춘천지법원장을 지명한 뒤 국회에 임명동의를 요청했다. 김 대법원장은 대법원장에 지명되고 나서 인준 표결 이틀 전인 같은 달 19일, 임 부장판사에게 전화를 걸어 "야당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찬성하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야당 의원들 가운데 아는 분들 여러 명과 고등학교 선배 등을 통해 성심껏 도왔다. 김 대법원장도 가결되고 나서 '고맙다. 소주 한잔하자'라고 인사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는 김 대법원장 취임 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및 사법부 블랙리스트 특별조사단이 꾸려지면서 멀어졌다.

"그 이후 행보를 보니까 특정 연구회 출신을 중용하면서 법원을 편 가르기 하는데 너무나 큰 실망을 느꼈다."

임 부장판사가 이른바 ‘세월호 7시간’ 재판 개입 사건으로 2019년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 대상이 됐을 뿐 아니라 김 대법원장에 의해 법관 징계위원회에도 회부됐기 때문이다. 임 부장판사는 세월호 침몰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일 행적에 관해 의혹을 제기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명예훼손 혐의 사건에 개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지난해 2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 선고 직후부터 임 부장판사는 건강 문제 등으로 수차례 사의를 밝혔으나 김 대법원장이 거부하면서 관계는 악화했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해 4월 말 신장결석 등 수술을 앞두고 사표를 내려고 하자 "수술을 하고 오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5월22일 청와대에서 열린 퇴임 대법관 훈장 수여식에 참석해 김명수 대법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5월22일 청와대에서 열린 퇴임 대법관 훈장 수여식에 참석해 김명수 대법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이후 5월 22일 법원행정처에 정식 사표를 낸 뒤 문제의 면담에서 김 대법원장은 “(여당에서)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를 수리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고 했다. "오늘 그냥 수리해버리면 탄핵 얘기를 못 하잖아. (내가) 그런 비난을 받는 것은 굉장히 적절하지 않아"라고도 했다.

"나로선 1심 법정에서 '법원을 떠나겠다'고 이미 얘기를 한 상황이었다. 1심 무죄 선고 후 부산을 내려가니 두 달 만에 몸이 극도로 나빠져 수술 일정을 잡아야 하는 상황에서 '몸이 이러니 재판도 못 하고 국민에게 도리가 아니다'라고 사표를 냈는데 느닷없이 탄핵 얘기를 꺼냈다. 대법원장이 이렇게 정치권 눈치를 보시나 해서 충격을 크게 받았다. 당시는 4·15 총선 직후였지만 21대 국회 원 구성도 안 된 상황이었다."

이에 올해 2월 초 단행된 정기인사를 앞두고 후임자 임명을 위해 자진 사임을 요청했지만 “2월 말 임기가 만료하면 자연 퇴직하라”고 거부 당했다고 한다.

김 대법원장 진실 공방에 녹음파일 공개 ‘초강수’

임 부장판사가 녹음파일 공개라는 초강수를 둔 결정적 계기는 3일 언론 보도로 탄핵 발언이 알려진 뒤 김 대법원장이 ‘탄핵 문제로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임성근 부장판사(왼쪽), 김명수 대법원장. [연합뉴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임성근 부장판사(왼쪽), 김명수 대법원장. [연합뉴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저로선 이제 막다른 골목에 몰린 것 아니냐. 거짓말쟁이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법원에 30년간 몸담고 법원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대법원장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상황이 저로서도 너무 참담한 심정이다. 사법부 수장이 국민에 거짓말을 하는 건 사법부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옳지 않기 때문에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

임성근 탄핵안 가결…헌정사 첫 법관 탄핵소추

녹음파일 공개에도 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는 이날 오후 본회의에서 임 판사 탄핵소추안을 무기명 표결에 부쳐 찬성 179표·반대 102표·기권 3표·무효 4표로 가결해 헌법재판소로 넘겼다.

임 부장판사의 변호인인 윤근수 변호사는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1심 판결문의 일부 표현만으로 사실상, 법률상 평가를 한 다음 국회 법사위 조사 절차도 생략한 채 탄핵소추를 의결한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고 심히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4일 국회 본회의에서 법관(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김명수 대법원장을 탄핵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오종택 기자

4일 국회 본회의에서 법관(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김명수 대법원장을 탄핵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오종택 기자

헌재가 28일까지 탄핵 결정을 내지 않으면 임 부장판사는 자연인 신분이 된다.

임 부장판사는 "개인적으로 이런 모습으로 법원을 떠나게 되고 30년 법관 생활의 모든 게 물거품이 돼 버린 데 착잡한 심정"이라며 "여하튼 저로 인해 법원에 여러 가지 부담을 주게 된 데 대해선 대단히 송구스럽다"라고 사과했다.

김수민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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