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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임재준의 의학노트

백신 개발의 최종 관문, 임상시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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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임재준 서울대 의대교수 의학교육실장

임재준 서울대 의대교수 의학교육실장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코로나19 때문에 인류는 최악의 겨울을 보내고 있다. 다행히 예상보다 빨리 백신들이 개발되어 일부 국가에서는 이미 접종이 시작되었다. 새로 개발된 백신들은 mRNA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모더나) 혹은 아데노바이러스 (옥스포드-아스트라제네카, 존슨앤존슨)를 이용해서 우리 몸에 코로나19 항원을 전달하여 면역력을 갖추도록 한다. 그런데 이런 방식의 백신을 인류가 대규모로 사용해보는 것은 처음이다. 어떻게 이 백신들의 효과가 분명하고 충분히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했을까?

백신·치료제 효과와 부작용은 #3상 임상시험 통해 알 수 있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논란은 #고령자 참여 적었던 것이 원인

그건 바로 ‘임상시험’을 통해서다. 임상시험의 시작은 19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스틴 브래드퍼드 힐 경이 이끄는 영국의 연구자들은 최초의 결핵약인 ‘스트렙토마이신’의 효과를 과학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고심했다. 결국 폐결핵 환자 107명을 연구에 초대한 후 추첨을 통해 반으로 나누어 절반에게만 스트렙토마이신을 투여했다. 다른 절반에게는 당시의 결핵 치료법대로 종일 침대에 누워 푹 쉬도록 했다. 연구자들은 6개월 후 스트렙토마이신 주사를 맞은 환자들이 훨씬 많이 회복되었다는 것을 확인했고, 이로써 약효는 객관적으로 증명되었다. 이런 방식의 연구를 임상시험이라고 부르며, 이후 신약 개발의 최종 관문으로 자리 잡았다.

임상시험은 4단계로 나뉘는데, 단계는 ‘상(相)’이라고 표현한다. 각 단계마다 주어진 역할이 있는데, 백신이나 치료제가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3상 임상시험이다. 1상이나 2상 임상시험은 3상을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3상 임상시험을 통해 새로 개발한 약제의 단 하나, 많아야 두 개의 효과를 확인하는데 이를 ‘1차 평가지표’라고 부른다. 물론 대개 몇 년이 걸리는 3상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김에 몇 가지 다른 효과를 파악하기도 한다. 이들은 ‘2차 평가지표’라고 부른다. 그러나 혹시 이것들 중 하나가 긍정적인 결과를 보이더라도 확실한 효과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의학노트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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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상 임상시험을 통해 ‘1차 평가지표’로 정한 효과가 증명되었다고 해서 덜컥 믿으면 안 된다. 백신이나 치료제의 개발이 시급한 상황이라면 연구가 반쯤 진행되었을 때 ‘중간분석’을 진행하기도 한다. 최종 결과가 달라지는 경우도 드물게 있기 때문에, 중간분석 결과는 신중히 받아들여야 한다. 또 임상시험 결과가 어떤 학술지에 출판되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대개 권위 있는 학술지에 출판된 것이 더 믿을 만하다. 연구 결과를 담은 원고들은 익명으로 진행되는 ‘동료 심사’를 통과해야 출판될 수 있다. 학술지에 따라 동료 심사에 참여하는 전문가들의 수준이 천차만별이다. 최고의 의학 학술지인 ‘뉴 잉글랜드 의학저널’이나 ‘랜싯’에 투고한 연구자들은 세계 최고 전문가들로부터 송곳 같은 지적과 질문을 100개 가까이 감당해야 한다.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과 모더나 백신의 효과를 검증한 3상 임상시험 결과는 모두 ‘뉴 잉글랜드 의학저널’에 출판되었고, 1차 평가지표인 ‘코로나19 발생’을 현저히 줄였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옥스포드-아스트라제네카 백신과 러시아 의학자들이 개발한 백신에 대한 3차 임상시험의 긍정적인 중간분석 결과는 ‘랜싯’에 출판된 상태다. 존슨앤존슨과 노바백스는 자사 백신의 3차 임상시험 중간분석 결과가 긍정적이라고 발표했지만, 아직 정식 논문으로 출판되지는 않았다.

3상 임상시험이라는 관문을 통과한 백신과 치료제는 대개 사용 승인을 받는다. 그렇지만 임상시험에 참여한 환자들의 특성에 따라 사용 범위가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사용이 승인된 코로나 백신들의 임상시험에는 성인들만 참여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접종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고령층에 대한 옥스포드-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효과에 대한 논란이 생긴 이유도 다른 백신들에 비해 임상시험에 참여했던 고령 환자가 적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떤 백신이나 치료제의 효과가 증명되었다고 언론에 떠들썩하게 보도되더라도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3상 임상시험인지, 1차 평가지표로 효과가 확인되었는지, 최종 분석인지, 어떤 부작용이 있었는지, 어떤 사람들이 참여했는지, 믿을만한 학술지에 출판되었는지를 꼼꼼히 따져보아야 한다. 그래야 자신에게 유리하게 결과를 과장하는 사람들이나 어쭙잖은 음모론으로 과학적으로 증명된 효과를 폄하하는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임재준 서울대 의대 교수 의학교육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