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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시포드와 선한 영향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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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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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청년 얘기다. 그는 1997년생, 올해 24살이다. 그를 만난 건 인공지능(AI) 덕분이다. 유튜브 추천 동영상 중에 그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호기심에 열어봤다.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해 12월 21일 영국 BBC가 방송했다. 제목이 ‘마커스 래시포드: 영국 아이들을 먹이다(Marcus Rashford: Feeding Britain’s Children)’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잉글랜드 축구대표팀 공격수인 그 래시포드다. 제목처럼 그는 수많은 아이를 굶주림에서 구했다. 많이 번 돈을 좀 내놓은 걸까. 아니. 더 소중한 걸 내놨다. 그가 내놓은 건 자신의 과거와 현재다.

다큐멘터리는 한 중년여성이 차를 타고 맨유 캐링턴 훈련장에 들어서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멜라니 메이너드, 래시포드의 어머니다. 그는 남편 없이 혼자서 다섯 아이를 키웠다. 판매·청소 등 닥치는 대로 일해 가족을 부양했다. 그래도 생활은 쪼들렸다. 자신은 굶어도 아이들은 먹였다. 축구에 재능을 보인 래시포드는 허기졌다. 그럴 때면 집중할 수 없었다. 다행히 학교에서 결식아동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하는 ‘조식 클럽(Breakfast club)’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래시포드는 무료급식의 소중함을 그 누구보다 잘 알았다.

지난해 10월 봉사활동에 나선 래시포드. [AP=연합뉴스]

지난해 10월 봉사활동에 나선 래시포드. [AP=연합뉴스]

지난해 3월 영국 정부는 코로나19 확신을 막기 위해 긴급 봉쇄를 했다. 학교가 문을 닫자 무료급식도 멈췄다. 래시포드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모금에 나섰다. 당초 맨체스터 지역 40만 명의 아이들을 도울 계획이었다. 모금액이 2000만 파운드(약 300억원)를 넘었다. 대상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7월까지 400만명(누적)이 도움을 받았다. 6월 영국 정부가 재정난을 이유로 여름방학 무료급식 바우처 사업을 중단키로 했다. 그는 이를 제고해 달라고 정부에 공개편지를 썼다. 요구를 무시했던 정부는 소셜미디어를 통한 그의 여론전에 백기를 들었다. 결식아동 130만명이 바우처를 받아 방학 중에도 굶지 않았다. 9월 그는 결식아동 문제에 좀 더 체계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식료품 업체, 유통업체 등과 태스크포스를 결성했다. 또 자선기관과 손잡고 활동을 확대했다.

소셜미디어. 래시포드가 영향력을 실현한 수단이다. 그의 팔로워 수는 트위터 420만명, 인스타그램 972만명, 페이스북 826만명이다. 지난해 11월에는 알렉스 퍼거슨 전 맨유 감독이 200만 파운드(약 30억원)를 기부하며 동참했다. “소셜미디어는 인생 낭비”라고 했던 퍼거슨 감독마저 움직이게 한 건 그의 선한 영향력이다.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그가 말했다. “사람들은 교육이 빈곤을 퇴치하는 최선의 수단이라고 한다. 그건 아이들이 학습에 참여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 어떤 아이라도 배가 고프면 집중할 수 없다.”

장혜수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