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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만에 다시 듣는 ‘워낭소리’, 그 긴 여운의 현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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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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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 ‘워낭소리 공원’의 조각상. 영화에서 봤던 할아버지와 소를 빼닮았다. 손민호 기자

경북 봉화 ‘워낭소리 공원’의 조각상. 영화에서 봤던 할아버지와 소를 빼닮았다. 손민호 기자

경북 봉화군 상운면 하눌리 722번지.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운 ‘워낭소리’의 현장이다. 벌써 12년 전 영화여서 무슨 흔적이 남았을까 싶지만, 나란히 놓인 농부 부부의 묘와 바로 아래 놓인 소 무덤만 보고 있어도 가슴이 저린다.

이충렬(55) 감독의 ‘워낭소리’는 2009년 1월 개봉했다. 관객 약 300만 명을 동원했고, 여러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했다. 순수 제작비는 1억 원이 안 되는데, 극장 매출만 190억 원이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는 고(故) 최원균(1929~2013)·이삼순(1938~2019)씨 부부가 산골 마을에서 늙은 소와 농사짓고 사는 모습을 담담히 보여준다. 소가 죽으면서 영화도 끝난다. 평범한 이야기인듯싶지만, 그렇지 않다. 소 평균 수명이 15년이라는데, 팔순 노인이 키우던 소는 마흔 살이다. 지난주 찾아간 소 무덤 앞 비석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누렁이(1967~2008). 평생 땅을 지키며 살아온 농부 최 노인이 30년을 부려온 소.’

최 노인의 옛집 어귀에 ‘워낭소리 공원’이 있다. 봉화군청이 2011년 5억8700만원을 들여 지었다. 공원 한복판에 소와 수레에 탄 할아버지 조각상이 보인다. 영화에서 봤던 예의 그 모습이다. 영화에서 봤던 ‘고물 라디오’도 보인다. 할아버지가 웃고 있어서 좋다.

소는 2008년 겨울 죽었다. 할아버지는 2013년 한여름에, 할머니는 2019년 초여름에 돌아갔다. 하나씩 헤어졌다가 할머니가 돌아가고서 다시 만났다. 워낭소리 공원에서 자동차로 2분 거리, 야트막한 산 아래 사람 두 명과 소 한 마리가 누워 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묘가 나란히 있고, 바로 아래 소 무덤이 있다. 영락없는 가족묘다.

Old Partner. 영화의 영어 제목이다. ‘워낭소리’라는 한국어 제목에선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읽히고, ‘오래된 벗’이란 뜻의 영어 제목에선 소처럼 일만 한 아버지가 떠오른다. 마침 올해는 소의 해다. ‘워낭소리’가 개봉했던 2009년도 소의 해였다.

손민호 레저팀장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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